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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안리 불꽃축제 2

부산에서 한 달 살기 11월 4일

by memory 최호인


“엄마, 잘 보여요? 너무 예쁘다.”


내 앞에 서 있는 30대 딸이 내 나이쯤 되어 보이는 엄마 뒤에서 양팔로 엄마를 껴안은 채 말했다. 딸의 키는 나만 했다. 다행히 건물에 기대어 서 있는 내 발아래 바닥은 그녀가 발을 딛고 있는 바닥보다 살짝 더 높았다. 게다가 그녀는 자기 뒤에 있는 나를 고려해서 내 앞에서 살짝 비켜서 있었으므로 내가 불꽃놀이를 바라보는 데는 아무 지장도 없었다.


딸은 엄마의 어깨를 감싸 안고 계속 불꽃이 잘 보이는지 또 얼마나 예쁜지 말을 붙였다. 그럴 때마다 그녀의 엄마는 “잘 보여.”라거나 “진짜 예쁘다. 오길 잘했네.”라고 대답하곤 했다. 나는 모녀가 다정하게 껴안고 즐거워하는 모습이 부러웠다. 그들이 내 앞에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키 큰 남성들이 내 앞에 섰다면 얼마나 답답했을까.



하여간 내 그럴 줄 알았다. 예상했던 대로 딸의 남편은 불꽃놀이가 시작되었는데도 돌아오지 않았다. 그는 필경 장인어른을 찾겠다고 어딘가로 가서 더 이상 움직이지 못하고 그냥 혼자서 불꽃놀이를 보는 것이 분명했다. 폭죽이 터지기 시작했으므로 사람들은 더 이상 오가지 않고 공중에서 터지는 불꽃을 바라보았다.


내 앞에 있는 모녀는 자신들의 남편들을 모두 다른 곳에 둔 채 불꽃축제를 보게 되었지만 개의치 않는 모습이었다. 남편이 돌아오지 않는다고 안달하지 않았고 전화도 하지 않았다. 그래서 두 부부는 남녀로 갈라져서 불꽃놀이를 서로 다른 곳에서 보게 되었는데, 어쩌면 거기에는 모녀의 무의식적 의도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엄마, 괜찮아? 잘 보여?”


딸은 자주 두 손을 높이 들어 핸드폰으로 사진이나 비디오를 찍다가 때때로 다시 엄마의 어깨를 껴안으면서 말했다. 엄마는 딸보다 키가 훨씬 작았지만, 그녀 앞은 통행로라 사람들이 오갔을 뿐 바로 앞에는 아무도 서지 않았다. 그래서 엄마도 불꽃놀이를 보기에 큰 지장이 없었던 듯하다. 두 모녀는 자주 대화하면서 아주 즐겁게 불꽃놀이를 즐겼다. 불꽃이 끊임없이 터지는 가운데 해변도로의 스피커에서는 쉼 없이 음악을 들려주었다. 엄마는 아주 신이 난 듯 어린애처럼 음악에 맞춰 다리를 약간 접었다 폈다 하면서 율동까지 했다.



어머니…


그들의 다정한 모습에 문득 돌아가신 어머니가 생각났다. 어머니도 이런 불꽃을 보았다면 “아이고 예뻐라!” 하면서 무척 감동했을 것이다. 아이들처럼 두 손을 모아서 가끔 박수를 치면서 좋아했을 것이다. 광안리불꽃축제에 와서 폭죽이 터지는 모습은 점차 아련하게 보였다. 폭죽이 터지는 축제 현장에서 엉뚱하게도 갑자기 돌아가신 어머니 얼굴이 떠올라서 가슴이 시렸다. 어머니도 내 앞에 선 여인의 엄마만큼 키가 작았다. 어머니와 같이 왔다면 나도 저 딸처럼 “엄마, 잘 보여? 엄마, 예쁘지?”라고 말했을까.


불꽃 축제가 진행되는 동안 결국 두 모녀만 내 앞에 내내 서 있었다. 여인들이 별로 기다리지도 찾지도 않았던 남편과 아버지는 축제가 끝난 후에야 비로소 어슬렁거리면서 나타났다. 그때까지 나는 내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딸은 축제가 끝나자마자 아버지에게 전화했고 자신이 서 있는 곳으로 오라고 말했던 것이다. 그들은 함께 불꽃축제를 보지 않았지만 아쉬워하는 모습은 전혀 없었다. 부산 남자들이라서 그런지, 아니면 오늘날 현실판 부부의 모습이라서 그런지…



불꽃축제는 내가 이미 잘 아는 그 모습 그대로였다.

묵직하고 커다란 대포 소리가 울리면서 폭죽이 발사되고, 어두운 밤하늘을 배경으로 색색깔 불꽃이 둥그런 원을 만들거나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아주 잠시 화려한 불꽃이 검은 하늘에 아름다운 수를 놓는 듯했다. 광안리의 불꽃축제가 특이하게 보이는 것은 폭죽을 쏘는 배가 강이 아니라 바다에 있으며, 그 배들 뒤에는 저 유명한 광안대교가 있다는 것이다.


광안대교는 이 불꽃축제에서 중요한 조연 역할을 한다. 배에서 폭죽을 쏘아 올리는 것만큼은 아니지만, 애당초 초록과 빨강 불빛 등이 켜져 있었던 광안대교 주탑 사이에서도 이따금 불타는 폭죽이 바다로 떨어졌다. 어두워서 보이지 않으므로 다리에서 대포를 쏘는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그 다리에서 불꽃이 바다로 떨어지는 것은 확실하게 잘 보였다. 다리 위에서 아래로 폭포수처럼 떨어지는 불꽃은 색다른 황홀한 풍경이었다.


축제는 1부와 2부에 걸쳐 무려 한 시간이나 이어졌다. 8시 25분쯤 1부가 끝났을 때 나는 돌연히 축제가 너무 길다고 생각했다. 1부와 2부로 나눌 필요 없이 축약해서 30~40분만 해도 될 것 같았다. 축제 시간이 길다 보니 다리도 아프고 다소 지루한 느낌이 들었다.


경제학에 한계효용체감의 법칙이라는 게 있다.

재화와 서비스의 단위 투입당 느끼는 효용 또는 만족의 양이 꾸준히 줄어든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투입된 재화나 서비스에 매우 높은 만족감을 얻을 수 있지만, 동일한 재화와 서비스가 반복되어 투입될수록 한계효용은 감소되는 법이다. 처음에는 불꽃놀이가 멋있다고 느끼지만 계속 보면서 점점 지루해지는 것 말이다.


아름다운데 점차 지치고 지루해진다.

아름다움을 느끼는 만족은 시간이 지날수록 감소한다.



끊임없이 폭죽이 터지고 검은 하늘에 예쁜 무늬의 불꽃이 명멸하는 것을 보고 있자니, 슬슬 딴생각이 든다. 허리도 다리도 아프고, 숙소로 돌아갈 때는 어떻게 가야 하나 하는 걱정도 든다. 감동적이지 않은 영화나 음악회에서 끝나기도 전에 먼저 일어나서 출입문으로 가고 싶은 것처럼 이 축제가 끝나기 전에 남보다 먼저 지하철역으로 가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현실은, 사람이 너무 많아서 먼저 나가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축제 시간이 길어지면서 폭약이 너무 많이 터졌다. 특히 마지막에 이르러 한꺼번에 폭약이 집중적으로 터지면서 공기 중으로 화약 냄새가 진동하기 시작했다. 내가 서 있는 해변도로까지 화약 연기와 분진이 심하게 퍼지면서 코가 매캐했고 하늘이 뿌옇게 보일 지경이었다.


해변도로 인도 뒤에 있는 내가 이렇게 느낄 정도면 모래사장에 앉아 있는 사람은 어땠을까. 그들은 돈 내고 물가 가까이 앉았으므로 해변 밖으로 빨리 나갈 수도 없다. 그런 걱정은 곧 현실이 되었다. 해변도로 스피커에서 축제가 끝났음을 알리면서 조심해서 해변을 벗어나도록 안내하는 방송이 울려 퍼졌다. 인파가 나갈 때는 해변에서 멀리 있는 사람들부터 나가도록 안내되었다. 화약 냄새가 어떻든 간에, 티켓을 사서 모래사장에 들어간 사람들은 저절로 마지막에 나가게 된 셈이다.


나는 인파를 따라 금련산역으로 걸어갔다. 그저 사람들의 물결을 따라 걸어야 했다. 금련산역에 이르렀을 때 인파가 너무 몰리니까 행사안내자들은 금련산역 다음에 있는 남천역으로 걸어가도록 유도했다. 어차피 급할 것도 없는 나는 그들이 권하는 대로 남천역으로 걸어갔다. 그곳으로 걸어가는 것도 지하철역으로 들어가는 것도 모두 사람이 너무 많아서 쉽지 않았지만, 결국 지하철을 통해 서면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지난해 이태원 참사가 벌어진 후에 대규모 군중이 동원되는 행사는 매우 신중해졌다. 또 다른 참사가 벌어지지 않도록 관계 당국이 많이 신경 쓰는 모습이었다. 그것은 다행이다. 사람들이 행사안내자들의 안내를 잘 따르는 것도 성숙한 민도를 지닌 한국인의 모습이다. 일부 몰지각한 사람들은 어디에나 있기 마련이지만, 내 눈에는 이런 행사에서 한국인들이 미국인들보다 공공질서를 잘 지키는 것으로 보였다. 성숙한 윤리의식과 질서의식은 이런 행사에 참가한 사람들에게 안전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할 뿐 아니라, 참가자 모두를 즐겁게 해 준다.


날은 매우 흐렸지만 비가 오지 않은 불꽃축제 날, 별 사고가 없어서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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