웰에이징 1 : 돈이라는 요물
잘 사는 데 돈은 기본
참 안타깝다. 노년기를 잘 보내기 위한 첫 번째 주제가 바로 돈이라는 것이. 돈이라는 요물 때문에 늙는 것이 누군가에게는 참 슬픈 일일 수 있다는 것을 알기에 더욱 그러하다. 내부인의 관점에서 한국에서의 삶은 젊은이도 노인도 치열하고 팍팍하다. 그러나 세계인의 관점에서 한국 사회를 바라보면 우리 사회는 고도의 산업화를 이룩하고 한류문화를 이루어낸 매력적인 나라이다. 이런 나라에서 '돈'이라는 것은 노년의 삶의 질을 좌우하는 중요한 조건이 된다는 것이 어찌 보면 납득이 되고, 또 어찌보면 납득되지 않기도 한다. 돈은 모두에게 똑같이 분배되지 않고 총량이 많을수록 누군가에게 편중될 가능성이 더 높기 때문이다.
한국의 노인의 경제 상황들을 전하는 기사를 보면 그 기준으로 삼는 것이 'OECD 국가들 중'이라는 표현이다. ISO(국제표준화기구)에 등록된 국가 249개국이고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가입 국가는 38개국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자주 듣는 'OECD 국가들 중'이라는 표현은 '전 세계의 리더그룹 중에서'라는 의미로 쉽게 해석을 해도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얼마 전 기사에서 '노인 빈곤율 또 OECD 1위'라는 제목의 글을 '또' 보았다. 매해 보는 기사다. 즉, 38개의 세계 선진국가들 중에서 노인들이 가장 가난한 나라가 한국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가난도 여러 가지 정의가 있고 조건을 어떻게 설정하는가에 따라 그 의미의 본질을 정확하게 이해할 필요가 있다. OECD에서 노인 빈곤율은 '중위가구 가처분소득의 50% 미만'인 인구의 비율이고 한국의 경우 이 기준으로 40%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좀 쉽게 표현하자면 한국의 노인들은 당장 쓸 돈이 없어서 가난을 경험한다는 의미이다.
그런데 이런 기사를 보면 주의해서 읽어야 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한국 노인이 자산을 형성하고 있는 독특한 방식이 쉽게 현금흐름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유형의 자산보다는 부동산과 같은 당장 현금으로 교환해서 사용하기 어려운 자산으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공신력 있는 연구기관으로 한국개발연구원, 줄여서 기사에서도 KDI라고 부르는 기관이 있다. 이곳에서 발간한 보고서의 자료를 살펴보아도 이러한 사실은 명백하다. 노인빈곤율을 당장 쓸 수 있는 소득만을 고려했을 때보다 전체 자산을 사용가능한 소득으로 전환하여 노인빈곤율을 살펴보면 그 수치는 확실히 낮아진다. 즉, 상당 수의 한국 노인들은 자신이 확보한 자산을 활용하여 스스로 빈곤에서 탈출할 수 있을 가능성을 내재하고 있다는 의미이다. 하지만 현재의 한국노인에게는 이런 제도가 쉽사리 먹혀들지 않는다. 갖고 있는 자산을 소비 자원으로 전환하는 일을 굉장히 싫어한다.
여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는 현재 65세인 노인이라도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갖고 있는 자산을 풀어서 지금 당장 필요한 부분에 덜컥 사용하기가 어렵다. 요즘 65세 노인들은 '노인'이라는 단어가 붙은 노인복지관도 잘 가지 않는 세대다. 안티에이징(anti-aging)이라는 말은 오래전부터 익숙한 용어이고 실제로 여성 노인들은 70세에 육박하면 주름시술 정도는 가볍게 하며 가진 안티에이징을 실천하면서 산다. 그런 그들에게 있는 돈을 쓰면서 살라는 사회적 기대는 먹히기 어렵다.
둘째는 현재 노인 세대가 살아왔던 삶의 방식을 이해할 필요가 있는데 이들은 공적 돌봄보다는 사적 돌봄에 익숙한 세대로 부모를 돌보는 책임을 이행하지만 자식에게 노후를 맡길 수 없다는 현실을 직시하고 있다. 이런 현실의 경험은 가볍지 않다. 한국 사회가 복지체계를 제대로 잡아가기 시작한 시기를 여러 학자들은 김대중 정부를 언급하는 경우가 많다. 20년 정도 된 것이다. 그 사이 여러 새로운 복지제도들이 생겼지만 자신의 노부모를 요양원에 맡기면 죄책감으로 사흘 밤낮을 시름했고(실제로 내가 현장에서 상담하고 관찰하며 만난 가족들의 실례에 근거한다.), 캥거루족이라는 신조어로 생겨나고 성인이 된 자녀들에게도 무엇인가 해주는 것이 자신의 책임이라고 느낀 세대이다. 이런 세대의 개인의 삶 속으로 들어가 보면 삶은 온통 책임으로 가득하고, 노후는 불안할 뿐이다. 불안하면 살기 위해 움켜쥐게 되어 있다.
셋째는 현재의 노인 세대는 후세대에게 무엇인가를 남겨주는 것에 대해 상당한 가치와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특히, 자식에게 무엇인가 남겨주어야 한다는 것은 고도로 발전된 산업사회에서 자기 피붙이가 살벌한 세상에서 도태되거나 낙오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비롯된 것일 지도 모른다. 노인이 되어, 그들의 시야에 펼쳐진 세상은 부모의 도움 없이는 '자식들이 벌어서 집 한 칸을 마련하기 어려운 사회'이다. 이런 사회에서 내가 가진 것을 나를 위해 쓴다는 생각은 쉽지 않다. 나는 조금 더 아끼고 절약하면서 이미 익숙한 가난을 감수하더라도 자식에게만은 후히 주고 싶은 것이다.
한국 사회가 눈부시게 발전하는 것을 목도한 세대이자 이전 세대보다 넉넉한 살림살이를 경험했던 세대. 세계적으로 한국의 위상이 이처럼 높았던 적이 없던 지금 여전히 노인 세대가 빈곤을 경험하고 있다는 사실은 안타깝다. 노인 세대의 빈곤 문제는 그 세대의 문제만 풀어낸다고 되지 않기에 더 복잡하다. 돈이라는 요물의 속성을 타개할 묘안이 필요하다.
국가의 정책적 차원에서 노후 소득 보장을 위한 안정적인 체계가 마련되어야 할 테지만, 이것은 자식들에게 전 재산을 다 이양하고도 국가 정책만으로도 안심하고 살아갈 수 있다는 확신까지 가야 아마 성공할지도 모른다. 이런 정책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싶지만 기대만큼 현실이 간단치 않으므로 흡족한 복지 정책은 아직도 요원하다. 그러나 계속된 정책적 미비점을 찾아가는 과정 속에서 사회적 합의와 실행은 필요하다.
개인적 차원에서 현재의 노인세대뿐 아니라 중장년기를 지나는 모든 이들에게 강조하고 싶은 말이 있다. 자식에게 내 인생을 올인하려는 태도에서 과감히 벗어나야 한다. 성인이 되면 안타깝더라도 떼어내야 한다. 냉혹하고 살벌한 세상일수록 각자도생의 길을 찾아야 한다. 전 세대가, 가족 울타리의 전 구성원이 힘차게 자기 삶을 살아야 한다. 너무 주지 말고, 내 것을 향유하는 삶을 살려는 의지적인 노력이 모두에게 필요하다. 쉽지 않은 일이지만 돈이라는 요물 앞에 노후를 보내는 의외의 결단은 이것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