웰에이징 3 : 현명하게 관계 맺기

성인자녀와의 관계도 냉정하게 Give & Take

by 자유인

나이 들어감에 따라 맞이하는 관계들을 어떤 자세로 임할 것인가?

과연 어떤 수준의 기대를 하는 것이 질 좋은 관계일까?


부모에 대한 의존기를 보낼 때는 부모가 주는 무조건적인 사랑을 받으면서 사는 것이 어린아이에게는 가장 이롭다. 세상에 나가기 전 부모로부터 이식된 사랑의 힘은 삶을 살아낼 힘을 준다. 독립하여 성인이 되었을 때는 동반자를 찾는 과정에서 경험하는 새로운 관계를 만날 수 있다.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 가슴이 팔딱거리며 뛰는 감정과 눈앞이 흐릿할 정도로 환상적인 사랑의 감정 또한 자아를 완성해 가는 과정에서 보편적으로 경험할 수 있는 관계 경험이 될 수 있다.


자, 그리고 어느덧 숱한 세월을 이기고 노년기를 바라보는 때가 되었다. 이때의 관계란 어떤 모습으로 펼쳐지는지 생각하자면 약간 씁쓸할 각오를 해야 한다. 노인세대에게 누가 뭐해도 가장 소중한 관계는 성인자녀와의 관계일 것이다. 그런데 내리사랑이라 했던가? 물이 위에서 아래로 흐르듯 사랑에도 거스를 수 없는 방향이 있어서 아래로 흐른다는 속성을 먼저 기억할 필요가 있다.


요양원의 주말은 방문 온 자녀들로 평일 여느 때보다 북적거린다. 자녀들은 일주일에 한 번 부모님을 뵈러 오지만, 그 속에서 사는 노인들은 일주일을 오매불망 기다려서 만나는 것이다. 내가 만난 꽤나 효심이 가득한 아들이 있었는데, 거의 매일 방문해서 아버지를 만났다. 대견한 효심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 아버지는 매일 하루를 기다려 잠깐 방문한 아들을 만난 것이다. 이렇게 부모가 자식을 향하는 마음그릇의 크기는 자식이 부모를 향하는 마음보다 항상 크다. 그래서 관계에 있어서 지혜를 놓치게 기대하고 실망하는 것이 노년기 자녀와의 관계이고 실망을 틈타 노년의 외로움과 우울의 골은 더 깊어질 수 있다.


자식들이 처한 상황을 부모도 이해한다. 노년기가 되면 어느덧 내 자녀도 가정을 꾸리고 자기 삶의 영역을 책임지느라 분주하다. 부양의 부담도 그래도 점점 커지게 마련이다. 노년기를 맞이하며 현명한 관계를 맺기 위해서는 이런 상황적 맥락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


노부모의 성인자녀의 관계에 대한 연구를 해보면 흥미로운 관찰을 하게 된다. 갈등 없이 조화로운 관계를 잘 유지하려면 가장 먼저 있어야 하는 것이 서로 주고받을 자원을 충분히 갖고 있어야 한다. 즉, 성인자녀가 부모를 방문했을 때 손자녀에게 용돈을 쥐어줄 수 있는 정도의 여유, 귀한 음식을 싸주며 갖고 온 트렁크를 푸짐하게 채워주는 것, 때로는 속상한 마음에 "엄마!", " 아빠!"를 찾아 전화 통화를 할 때, 위로와 평안을 주는 것 등 이 모든 것들이 부모로서 갖고 있어야 할 자원들이다. 자녀들도 역시 부모에게 제공할 수 있는 자원이 있다. 정기적인 전화 안부와 화상통화로 손자녀의 귀여운 모습을 자주 보여드리는 것,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다면 부모에게 생활비와 용돈을 제공하는 것, 병원진료가 필요하거나 까다로운 행정업무를 처리할 때 동행하는 것 등은 그 예시라 할 수 있다. 그런데,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은 숫자는 많아지지만 많은 것들은 잃어가는 것을 의미한다. 자연스레 양측이 가진 자원의 종류와 총량, 필요도 등을 따져봤을 때 노년기를 맞이하는 부모세대가 자녀세대보다 열악해질 수 있다.


가장 안정적인 관계는 주고받는 상호교환가 균형감을 갖고 있을 때이다. 친구를 만났을 때 내가 밥을 샀다면 친구가 찻값은 내어주는 것을 자연스럽게 여기는 것과 같다. 밥값도 찻값도 한쪽에서 모두 부담한다면 대개는 곧 불편한 관계라 바뀔 수 있다. 이렇듯 인간은 상당히 합리적으로 관계를 바라본다. 부모와 자녀와의 관계에서도 과연 이럴까 싶지만 오랜 시간 노부모와 성인자녀의 관계를 관측하는 연구를 해온 나로서는 이기적인 합리성을 전제로 관계 맺을 각오를 해야 성인자녀와의 관계도 순조로울 수 있음을 강조하는 편이다.


일례로 맞벌이를 하는 부부가 그들의 부모에게 손자녀 양육을 부탁할 때 양측의 관계가 어떤 양상으로 나타나는지를 분석해 본 적이 있다. 이때 짐짓 놀랐던 부분은 노후불안도가 높은 일부 노인들은 손자녀를 돌봐주는 것이 힘겹고 원하지 않는 일이지만 그 일을 계속하는 이유 중 하나가 자녀가 힘들어서 도움을 요청할 때 거절하게 되면 자신이 병약해지거나 자녀의 도움이 필요할 때 도움을 요청할 수 없다는 생각이 작동하고 있었다. 노년기에 접어들어 막상 현실에서 맞이하는 사회제도도 불안한 경우라면 결국은 성인자녀와 좋은 관계를 맺어두는 것은 노인이 선택할 수 있는 궁색한 노후준비가 되는 것이다. 물론, 이런 사실은 노부모에게 도움을 받았다면 절대 공짜로 생각하지 말고 적절한 대가를 치르라는 일침을 가하고 싶다. 약해져 가는 노부모에 보응 없이 도움을 받는 것은 어른스럽지 못한 행동이다.


더 가슴 아픈 이야기는 아직 남아 있다. 노인학대와 관련된 통계자료들을 살펴보면 가장 빈번한 학대행위자는 아들, 딸 즉 노인세대가 그토록 사랑하는 성인자녀들의 비율이 가장 높다. 그러다 보니 나이 들어 자녀들과의 관계에서 소외되지 않는 방법 중 하나로 언급되는 것이 바로 '유산을 미리 상속하지 않는 것'이다. 왜일까? 노후에 현명한 관계를 유지하려면 갖고 있는 자원이 있어야 한다. 곡식 창고에 저장해 둔 양식들이 있다면 절대로 한 번에 풀어내어서는 안 된다. 다 준다 해도 고마움도 잠시이고, 편애하여 분배하는 것은 두고두고 화를 낳는다. 이 역시 배은망덕한 자녀들이라고 비난할 일이 못된다. 오히려 성인이 된 자녀세대들의 삶도 그만큼 고단하다는 의미이다. 그러니 너무 섭섭해할 필요 없이, 나이 들수록 내가 더 현명해지면 된다.


내가 가진 자원이 무엇인지, 무엇을 자원으로 유용하게 활용할 것인지. 노년기를 준비한다면 성인자녀와의 관계설정에서 반드시 새겨 보아야 한다. 내 자식은 다르다고 손사래 칠 일이 아니다. 살림살이 어렵다는 이야기, 경제위기가 온다는 얘기는 세상살이에서 그치지 않고 나온다. 냉정하게 생각하자. 현명한 노후의 관계는 냉정한 Give & Take로 작동될 수 있다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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