웰에이징 2 : 9988234라는 꿈

by 자유인

9988234 이 암호 같은 숫자의 의미를 아시는가?

이 숫자를 듣고 그 의미를 안다면 당신의 연령대도 족히 50대를 넘어설지도.


이 말이 처음 나와 회자된 것도 10년은 훌쩍 넘었다.

99세까지 88(팔팔)하게 살다가 2~3일만 앓다가 죽는 것(4)이 노인들이 원하는 마지막 복인 죽음에 관한 생각이다.


평균 수명이 83세 정도이니 99세면 평균적인 수명을 살고도 장수의 복을 누렸다고 볼 수 있다. 게다가 그 나이까지 생기 있는 팔팔함을 유지한다면 타고난 건강 DNA부터 남달랐어야 할 것 같다. 골골백년이라는 말이 있는데, 특정 병은 없어도 낮은 기력으로 오래 살지 못할 것 같은 노인이 백년을 산다는 뜻이다. 골골백년과 팔팔구구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다면, 한 해 쯤 덜 살아도 사람들은 구구팔팔을 선택할 것이다. 생기 있고 건강한 노년의 삶을 유지하는 것은 모두의 바램이기 때문이다.


사람 목숨이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어느 날 갑자기 간밤에 자면서 죽음을 맞이한 여든이 훌쩍 넘은 노인의 죽음 소식을 들으면 사람들은 갑작스럽게 떠난 것이 아쉽다지만 그것도 잠시이고 동년배의 노인들은 그야말로 좋은 죽음이라며 부러워하는 기색을 보인다. 실제로 죽음 연구를 하며 노인들을 만났을 때, 가장 원하는 죽음의 모습이기도 했다. 남은 자야 어떠하든 살만큼 살았다면 죽음과 닮은 잠에 청하다 마지막을 맞이하는 것은 상상할 수 있는 고통 없는 죽음의 한 모습이다. 병치레로 주변 사람 고생시키지 않았고, 고통 없이 깔끔하게 죽음을 맞이했으니 꽤 괜찮은 죽음으로 보인다. 아직 살아 있어서 죽음이라는 관문을 거치기까지 어떤 여정이 펼쳐질지 모를 때는 잠결에 죽는 죽음은 따라 할래야 할 수도 없는 원하는 죽음의 모습이 된다.


아프면 곧 죽음으로 치닿는다면 그나마도 다행일 텐데, 노년의 잔인함은 온몸 구석구석 아픈 데가 많고 아침저녁 한 움큼의 약을 먹으면서도 그럭저럭 살아지는 것에 있다. 나이와 무관하게 혼자 아프면 누구나 서럽고 멀쩡하던 마음까지 쇠약해지게 마련이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건강은 약해지고 주변의 관계망은 점차로 소실되어감을 의미하니, 나이 들어 혼자 살아가면서 건강상의 문제를 경험하게 되면 최악의 조합이다.


홀로 살며 병약함의 고통을 경험하게 되는 것. 이런 일은 앞으로 더 일반적인 상황이 될 전망이다. 거기다 요즘은 고독사가 50대 남성까지도 빈번하게 발생되고 있어서 외로움과 질병의 이중고는 죽음의 그림자로 주목해서 보아야 할 중요한 사회적 문제라 할 수 있다.


한국 사회가 인구의 고령화를 맞이한 것은 새로운 천년을 맞이한 200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천의 자리 숫자가 1에서 2로 바뀌는 것에 대비해 밀레니엄 버그, Y2K와 같은 생경한 언어들이 매일 9시 뉴스에서 보도되던 때가 있었다. 아주 오래되어 기억조차 가물가물하다. 그런데 돌이켜 보면 어쩌면 고작 20년 남짓된 이야기로 지나서 생각해 보니 역시 세월은 빠르게 흐른다 싶다. 그러니 나이 들어가면서 99세까지 팔팔하게 살고 싶다면 세월을 아껴야 한다.


나는 전공 수업에서 20대 초반의 학생들에게 노인복지론을 가르치는데, 누구도 예외 없이 노화를 경험하게 된다면 건강한 노후를 위한 준비는 빠를수록 좋다고 말한다. 수업의 어떤 내용은 학생들에게 조부모가 있다면 당장 가서 전하라고 얘기해 주고 싶고, 또 어떤 이야기는 오늘 저녁 식탁에 앉아 부모님과 오늘 배운 이야기를 함께 나누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 정도로 건강한 노년을 위한 빠를수록 좋고 결정적 시기까지 해야 할 준비들이 있다.


요즘은 노년의과학자들이 건강한 노후를 위한 좋은 정보들을 많이 내놓고 있다. 사실 정보들은 많지만 어딘가 아파서 병원을 찾기 시작했을 때는 들어서 알고 있던 정보들을 내 삶에 반영해도 기대하는 만큼의 건강상태로 회복하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9988234는 젊을 때부터 생각해야 한다. 노후의 건강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고, 신체와 정신, 사회적 관계와 영성적 영역까지 건강에 좋은 복합적인 생활양식을 취하면서 축적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강단에게서 자주 만나는 20대의 친구들에게는 술과 담배, 식습관에 대한 이야기를 자주 한다. 대학생이 되면 술과 담배는 당당하게 선택할 수 있는 나이가 되었다. 학생상담을 하다 보면 술도 담배도 처음 시작하는 연령대가 점점 낮아지고 있다. 또, 양질의 식사보다 맛나고 배부르면 식사라고 생각하는 학생들을 보면 괜히 마음이 아파다. 달달한 음료수로 포만감을 해결하는 친구들을 보면 그들의 건강이 아깝게 흘러가는 것 같아 안타깝다. 그러고 보니 나는 담배 줄여라, 술도 적당히 해라, 좋은 한 끼를 먹어라 등 꼰대 같은 잔소리를 해대는 교수다. 하지만 나의 잔소리조차 노인복지학자로서 강단에 서는 교수로서 학생들에게 전할 수밖에 없는 나의 진심이다. 실제로 나쁜 습관은 나이 들어도 계속된다. 만성질환을 갖고 신음하며 지내는 노인들을 방문해 보면 믹스 커피 한 잔에 약을 털어 먹는 모습, 줄담배에 반주가 빠지지 않는 밥상을 대하는 모습은 살자는 것인지 죽자는 것인지 혼란스럽게 여겨지기까지 한다. 그런데 9988보다 더 심각한 것은 죽고 싶어도 죽을 수 없고, 살아지면 감내해야 할 수밖에 없는 고통이 따른다는 데 있다. 이 사실을 아는 것은 빠를수록 좋다고 생각한다.


비교적 건강한 노인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병이 있다. 그것은 치매이다. 벽에 똥칠할 때까지 산다는 말처럼 정말 자기 똥을 떡으로 오인할 정도로 인지기능이 무너진 노인을 복지현장에서는 자주 만날 수 있다. 건강한 노인들을 만나 이런 예를 얘기할 때면 듣고 있는 분들은 모두 인상을 찌푸리신다. 그렇게까지 살아서 뭣하나?, 나는 그렇게 되지 않아야 할 텐데 싶은 그들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누구든 자신이 어떤 병에 걸릴지 예측할 수 없고 전방위적인 건강을 유지하는 수밖에 없다. 요양원에서 만난 노인들의 실제 삶을 가까이에서 살펴보면 치매라고 모두 불행하지 않다. 온종일 불평, 불만, 걱정, 근심으로 초조해하며 지내는 분들도 계시고, 늘 예쁜 언어로 미소 가득한 표정으로 지내는 치매 노인들도 있다. 사실 소위 예쁜 치매라는 말이 노인들에게는 위로가 되지 않지만 그래도 연한 빛의 희망 정도는 된다. 더욱이 치매에 걸리더라도 예쁜 치매에 걸리려면 그조차 전생애를 통해 긍정적인 생각과 정서를 관할하는 뇌 영역을 오랫동안 활성화시켜 온 오랜 삶의 방식의 결과이지 그냥 얻어지는 것도 아니다.


이쯤 되면 9988234라는 말이 노년의 꿈이 되는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건강하게 살고 싶다면 신체적으로, 심리적으로, 사회관계의 측면에서도 오랜 세월 축적된 좋은 삶의 방식이 농축된 결과이니, 꿈에만 머무르지 않으려면 지금 당장 뭔가 변화하려는 시도가 필요하다. 요즘 약이 좋아져서, 나는 아직은 젊어서, 이만큼 살았으니 등등 변하지 않을 이유는 참 많다. 하지만 조금 더 내 생명을 귀하게 다루고 싶다면, 내가 나를 더 존엄하게 대하고 싶다면 작은 변화들을 스스로 찾아서 습관이 되게 할 필요가 있다. 바로, 지금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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