웰에이징 4 : 왕년의 나를 잊고, 새로운 역할 찾기

노년이라는 새 술은 새 부대에

by 자유인

노년에 맞이하는 심각한 고통 중 하나는 무위의 고통이 아닌가 싶다. 사회적 역할을 통해 인정받는 것은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나이가 든다는 것을 체감할 수 있는 때는 퇴직을 했을 때다. 사람들을 만나서 나는 이런 사람이라며 소개할 수 있는 명함 한 장을 내놓을 수 있는 것과 그럴 수 없는 것은 하늘과 땅 차이다. 물론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거나 평생 전문직으로 살 수 있어서 노후에도 적당히 여가생활로 즐거움을 충분히 만끽하도록 준비된 매우 특별한 경우는 제외하자.


보통의 경우는 퇴직을 앞두고도 무엇인가 준비해야 할 것 같아서 경제적인 준비에 몰두하는 경향이 있다. 잘 나이 들어가기 위해 돈의 중요성은 두 말하면 잔소리다. 하지만 돈만 있다고 노후를 잘 보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어떻게 살아낼 것인가를 부지런히 고민해야 한다. 오늘은 그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다.


우리의 일상적인 생활은 크게 일의 영역과 여가의 영역으로 나눠볼 수 있다. 일반적인 일은 노동 즉, 대가로 돈을 벌 수 있는 모든 사회적 역할들을 떠올린다. 반면, 여가의 영역은 어떤 경제적인 이득이나 대가 없이 즐거움, 보람, 의미추구 등을 이유로 행해지는 다양한 활동들이 될 수 있다.


현재를 살아가는 젊은 세대들은 여가의 의미가 비교적 익숙하다. 고도의 산업화를 거치면서 일 중심의 사회에서 여가와의 조화를 이룬 사회로 전환되기 시작했고 하루 중에도 일을 위한 시간과 개인적인 여가를 위한 시간을 구분하는 것이 젊은 세대들에게는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현재의 노년세대는 여가를 강제로 배워도 어색한 세대일지 모른다. 이들은 한국 사회가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는 것을 눈으로 직접 보고 스스로 살아낸 증인이라 할 수 있다. 작은 회사에 취직을 해서 몇 년 일했더니 그 회사가 날로 번창해서 종업원의 수가 엄청나게 늘어나 있고, 부지런히 월급을 모아서 차도 사고 집도 사고 자녀 양육까지 그럭저럭 해나갈 수 있었던 세대였다. 요즘 청년들이 사회생활을 하면서 느끼는 장벽과 베이비부머로 대표되는 비교적 초기 노년 세대가 지나온 청년기는 사뭇 다르다. 산업화의 주역으로서의 그들의 땀도 중요했고, 초기 산업화가 가지는 속성상 고도성장의 열매의 단맛을 본 세대이기도 하다. 그러니 이들은 일로 인해 갖게 되는 성취감과 이익이나 보상을 체감한 세대다. 회사가 가족이상으로 소중하고 회사의 발전이 곧 가족을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는 힘이라는 인식이 그들에게는 강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그러니 현재의 노인세대는 그저 일, 일, 일로 일생을 보낸 세대라 할 수 있다.


회사를 사랑하며 일을 하게 되면 갖게 되는 환상이 있다. 회사가 절대로 나를 버리지 않을 것이라는 환상이 그것이다. 하지만 승승장구하던 회사도 어느 날 문을 닫을 수 있다는 것을 IMF 시기를 지나면서 경험하게 되었다. 또, 한국 사회는 강제 퇴직제도가 사회 전반에 자리 잡고 있고 정년이 되면 과거 어떤 공헌을 했더라고 일을 그만두어야 한다. 그리고 자신의 생애 주된 일자리보다 더 좋은 일자리를 찾는 것은 노후에는 거의 기대하기 어렵다.


이런 현실은 60대가 되기 전부터 노년기의 의미를 처참하게 받아들여야 하는 절망의 관문이다. 우리나라의 퇴직 연령은 대부분 50대 중반부터 시작하기 때문이다. 소수의 전문직종이나 사업가들을 제외하고 회사의 일원으로 살아가는 평범한 인생에서는 피해 가기 어려운 현실이다. 노년의 그림자를 50대부터 경험하게 된다는 것은 그보다 이른 시기에 이때를 준비해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인간이 사회적 존재인 것은 자신이 사회적으로 어떤 역할을 맡고 그것으로 인해 타인으로부터 어떤 인정을 받느냐가 '나란 인간'의 가치 기준이 되기 때문이다. 간단하게는 얼마의 연봉을 받고, 어떤 직급에, 어떤 회사에 구성원인가가 알게 모르게 나의 가치감을 측정하는 자타공인의 척도가 될 수 있다. 노년기에 들어간다는 것은 그 모든 일상적이고 일반적이었던 척도들의 옷을 모두 벗어야 함을 의미한다. 나를 설명하던 '나'의 정체성을 홀라당 벗어버리고도 스스로 만족할 수 있는 자신만의 가치를 찾는 것이 노후 준비에서는 필수사항이 된다. 우리 모두는 오늘보다 젊어본 적은 있지만 오늘보다 나이 들어 본 적은 없다. 그래서 잘 나이 들어가기 위한 노후준비는 늘 어색하고 갈 바를 가늠하기 어려운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퇴직 후에도 활기 있는 노후를 보내기 위해 유념해야 할 몇 가지를 정리해 본다. 퇴직 후에 쉽게 낮은 일자리로 전직을 할 수도 있겠지만 그 모든 여정도 일정 기간이 지나면 끝나게 된다. 그조차 종결되는 시점이 반드시 올 것이고 그때는 기대보다 이른 시기에 찾아올 수 있음을 유념해야 한다.


첫째, 소소한 자원봉사활동에 참여해 보는 것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일은 곧 돈을 버는 경제적 활동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일은 그저 의미 있는 무엇인가를 한다면 어떤 것이든 일이 될 수 있다. 이와 관련하여 두 가지를 추천하고 싶다. 자원봉사와 배울 수 있는 교육에 참여하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자원봉사체계가 참 잘 되어 있다. 멀지 않은 곳에 자원봉사센터가 있어서 자신에게 맞는 자원봉사를 쉽게 찾을 수 있다. 혼자가 불편하면 이때도 배우자와 함께 할 수도 있고, 처음의 낯설음만 잘 이겨내면 새로운 역동적인 사람들과 관계 맺고 사회적으로 기여하는 활동에 참여하면서 느끼는 만족감이 대단히 크다. 오랫동안 자원봉사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매우 비슷한 보람을 이야기하는데,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려고 시작한 봉사지만 사실은 스스로 더 많은 것을 얻어간다고 한다. 실제로 자원봉사는 면역력을 높여서 신체적 건강도 증진한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그러니 노년기에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고자 시작하는 자원봉사는 생각보다 얻는 이점이 많다.


둘째, 배움의 자리를 찾아가 교육을 받는 것이다. 최근 들어 인구 고령화에 따라 평생교육에 관한 정책적 관심이 고조되고 있어서 지자체마다 평생교육을 강화하기 위한 방안들을 고심하고 있다. 복지기관은 물론이거니와 대학과 같은 고등교육기관과 협력해서 중장년기부터 노년기에 이르는 대상을 위한 다양한 무료 혹은 저가의 교육이 많이 신설되고 있다. 나이 들어 무엇인가를 배우는 것이 낯설고 힘들 수 있다. 하지만 그럴수록 시도해 보는 것은 가치 있는 일이다. 노년학자들에게는 잘 알려진 사실 중 하나가 교육은 수명과도 관련이 있다. 사회구성원으로서 가치 있는 한 사람으로 자리매김하기 위해서는 지속적인 자기계발이 중요하다. 젊은이는 커리어를 개발하기 위해 노력한다면, 노인이 되어서는 변화하는 세상에 지체되지 않도록 노력하는 자세가 매우 중요하다. 급변하는 시기에 신기술을 익히고 학습하는 것이 어렵다면 그림, 서예, 공예, 노래, 악기, 춤 등 다양한 예술활동이라도 좋다. 몸과 정신을 적극적으로 사용하는 배움에 몸을 던지는 것이 현명하게 나이 드는 방법 중 하나이다.


셋째, 자원봉사와 교육에 참여하는 일을 하려면 먼저 갖추어야 할 자세가 있다. '왕년의 나'를 내려놓는 것이다. 나이 들어가면서 과거에 묶여 사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이 없다. 노동시장은 더 이상 노인에게 과거처럼 관대하지 않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지만 실제로 나이 들어서 느끼는 숫자의 의미는 생각보다 철옹성을 치고 있다. 젊은이들조차 노년의 과거를 기억하고 존중할 여유가 없다. 옛적 이야기를 하는 노인들을 용납해 주기에 세상은 너무 빠르고 바쁘게 흘러간다. 과거의 지혜에 머물러 있고자 하면 지체되어 도태되기를 선택하는 것과 같다.


넷째, 이왕이면 배우자와 활동을 공유하는 연습이 필요하다. 취미와 여가활동이 잘 맞다면 새로운 관계를 형성하는 것도 쉽고 활동성을 높일 수 있다. 심지어 동네에 있는 배드민턴이나 테니스 동호회를 나가더라도 부부가 함께 가면 낯가림이 덜하고 적응도 쉽다. 물론 그 정도 되려면 젊어서부터 부부관계가 돈독하고 서로를 배려하고 존중하는 관계로 굳건하게 자리매김하고 있어야 한다. 함께 사회활동을 공유하는 것이 어렵다면 동네 산책이라도 함께하며 나이 들어가면서 부부가 바라보는 지향점의 좌표를 함께 조정하며 설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검은 머리가 팥뿌리처럼 하얘지도록 서로 사랑하겠다는 혼인서약은 신혼 때부터 노년기까지 기억되어야 한다. 노년기가 되면 배우자는 자식보다 소중한 소중한 동반자가 되어야 그 노부부의 삶이 외롭지 않다.


요람에서 무덤까지 인간의 삶은 각 단계마다 새로운 과업이 부여되고 그에 맞는 새로운 삶을 사는 것이 인생을 물 흐르듯 살아가는 방법이다. 부모가 학령기 자녀들에게 공부를 하라고 하는 이유도, 성인이 되면 경제활동을 하며 독립하라고 하는 것도 사회구성원으로서 자연스러운 행로이다. 이제는 오래 살게 되면서 노년기를 어떻게 살아낼까에 대한 진중한 고민이 필요하고 오래전부터 노년을 위한 준비가 필요하다. 노년기는 휴식기가 될 수 없다. 생산하고 확장하던 이전 시기와 달리 위축되고 소실되는 시기이므로 갑자기 맞이하면 당황스럽다 못해 인생 전체가 와르르 무너지는 경험을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 준비 중 가장 기본은 스스로 태도를 바꾸는 것이다. 쇠퇴의 시기도 담대하고 용기 있게 용납하고 그에 맞는 자기 자리를 찾아가는 것이 그 시작이다. 인생의 지혜는 이 시기에 아름답게 발휘되어야 한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듯, 노년의 삶도 전혀 새로운 삶으로 인식하고 새로운 나로 살아내겠다는 패기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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