웰다잉 1 : 나이 들면 달라지는 시간조망

내 인생이 꽃이 되려면 해야 할 일: 내 인생 용납하기

by 자유인

그럴 리 없겠지만 대뜸 누군가 나에게 내가 살아서 실존하고 있다는 것을 수학적으로 입증하라고 한다면, 나는 주저하지 않고 가로축에 시간을, 세로축에 장소를 표시하며 바로 지금 이 물리적인 공간에 이 찰나를 잇는 시간에 나를 표시할 수 있다고 말할 것이다. 그저 황당한 공상 같은 이야기지만, 시간과 공간은 나의 존재를 정의하는 데 있어 가장 기본적인 요소임을 부인할 수 없다.


시간조망이라는 단어는 학술적인 용어인데, 시간에 대한 관점이나 태도를 말한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시간은 연속적이지만 현재를 기준으로 과거와 미래를 구분 짓는다. 시간조망은 다시 말하자면, 자신의 삶의 과거, 현재, 미래를 어떻게 바라보는가를 의미하고 이는 개인의 삶에 대한 태도와 행동, 가치관 등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한국 문화에서는 누군가를 만나면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설명하는 일반적인 정보로 자신의 나이를 밝히는 것이 그다지 불편한 일은 아니다. 장유유서가 익숙한 탓인지 나이에 따라 예우하는 것이 서로에게 오히려 편하게 다가가는 방법이기 때문인 듯도 하다. 세 아이를 키우다 보니, 나이와 관련해서 우스운 장면을 목격하곤 한다. 첫째가 9살에서 10살로 접어들자 연년생 동생에게 자신은 두 자리 숫자의 나이라고 하질 않나, 이제 14살이 된 둘째는 막내가 뭔 행동만 하면 "형아가 너 때는~"이라며 나이로 위세를 부린다. 그만큼 나이 먹는 것에 예민하고 한해한해를 꼽으며 자신의 나이를 셈한다.


노인복지 분야를 연구하다 보니 노인분들께 연령을 여쭐 때가 있다. 그럴 때, 나는 재미있는 현상을 자주 접한다. "내년이면 이른 일세.", "낼모레면 여든이라우." 등의 대답을 종종 듣는다. 젊은 사람들은 태어난 날부터 지금까지 내가 얼마나 살아왔는지가 중요하다. 그래서 가산하는 방식(더하기)으로 자신의 연령을 인식한다. 그런데 노인이 되면 미래의 어느 시점을 기준으로 감산하는 방식(빼기)으로 자신의 연령을 표현하는 것이다. 노년기를 연구하는 나로서는 노년기가 되면 시간에 대한 조망이 이렇게 달라진다는 것을 현실에서 쉽게 만난다는 점이 참 흥미롭다.


이렇게 미래의 어느 시점으로부터 감산하는 방식으로 연령만 파악하는 것은 아니다. 노년기에 나이를 먹다 보면 결국은 나이를 더 이상 셈할 수 없는 시간의 벽, 곧 죽음의 시점을 만나게 된다. 그래서 노년기는 죽음을 더 많이 의식하고 살아가는 시기이고, 적절한 죽음관을 갖는 것이 노년기의 중요한 심리적 과업이자 정신건강을 결정하는 중요한 기준이 된다.


앞서 언급하였듯이, 시간조망은 과거, 현재, 미래의 시간에 대한 생각이다. 노년기의 시간조망은 살아온 어느 때보다 가까워 온 죽음을 인식하는 시기이자 동시에 숱하게 지나온 시간을 되돌아보며 자신의 삶에 총체적인 가치를 매기는 결산의 시기이기도 하다. 무탈한 시간을 성실하게 일한 농부라면 추수 때에 되면 신이 날 것이다. 또, 유독 거친 날씨에 힘겹게 보낸 농부라면 추수 때 고생만큼 거둔 것이 적어 속상할 수도 있다. 마치 농부들처럼 노년기가 되면 누구든 남 모르게 자기 삶을 결산해 본다. 그 결과가 만족스럽다면 그 농부는 농한기도 걱정 없이 보낼 것이다. 반대로 결실이 미진하다면 그는 팍팍한 농한기를 보낼 수밖에 없다.


노년기의 마지막 시기도 이와 흡사하다. 과거로부터 현재까지의 삶에 만족한다면 남은 시간, 그리고 마지막 죽음까지도 편안하게 인식하지만, 불만족스럽다면 과거에 대한 집착과 후회, 미래에 대한 거부, 두려움, 죽음에 대한 공포감까지 엄습하는 경험을 하게 된다. 전자를 자아통합감이 높다고 말하고, 후자를 자아통합감이 낮은 상태라고 한다. 즉, 노년기 이전과 다른 시간조망의 특성은 노년기 삶 전체에 대한 어떤 주관적인 태도를 형성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유명한 심리학자인 에릭슨은 자아통합감은 노년기에 달성해야 할 심리적 과업으로 자아통합감을 꼽았다. 자아통합감을 쉽게 풀어서 말하자면, 현재 선 바로 그 시간과 공간의 좌표에서 나의 모든 궤적을 되돌아보았을 때 그 모든 여정들에 대해 "오점도 많았지만, 그래도 내 삶은 꽤 괜찮았어!"라고 총평을 내릴 수 있는 상태이다.


"오점도 많았지만, 그래도 내 삶은 꽤 괜찮았어!"


표현들을 뜯어서 의미를 곱씹어보면, 사실 그렇게 대단하고 위대한 인생만 자아통합감이 높은 것은 아니다. 누군가를 미워했던 것, 상처 주었던 것, 사업에 실패했던 것, 최선을 다했지만 잘 되지 않았던 일 등등 그저 인정하는 것이다. 대단한 성공의 경험도 겸손하게 평가하고 우쭐대지 않으며 그저 전체 인생 여정에서 부족하지만 최선을 다한 자신의 노고를 인정하는 것이다.


노년기가 되어서 자신의 인생을 이렇게 부드러운 시선으로 바라봐 주는 것이 그리 까다로운 일이 아닐 것 같다면 그 인생은 '괜찮은 인생'이다. 실제로는 그리 쉬운 일도 아니다. 시간에 대한 조망이 틀어져 있으면 과거 어느 시점에 모든 마음의 에너지를 쏟아붓고 그때로 돌아간다면 얼마나 좋을까 아쉬워하다 절망의 문에 들어서기도 한다. 나의 인생과 속히 화해하지 않고 세월을 축내다 보면 당연히 죽음은 더 빠르게 다가와 있고 준비하지 못한 죽음 앞에 벌벌 떨게 된다. 그래서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매우 높은 노인들은 죽음이라는 현상에만 두려움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전반적인 삶 전체에 대한 깊은 회의감을 정리하지 못한 채 살아가는 모습을 쉽게 관찰할 수 있다. 그래서 죽음에 대한 공포를 다루려면 먼저 살아온 날들과 화해를 해야 한다.


완벽한 인생을 살아간 인간은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년에 높은 수준의 자아통합감을 갖추는 것은 가능하다. 그래서 삶은 살아볼 만한 것이다. 내 삶의 궤적들을 적절한 거리에서, 적당한 시선으로 바라봐 주면 된다. 봄날에 눈에 띄는 화사하고 예쁜 꽂들만 아름다운 것은 아니다. 들풀들 사이에서 이름조차 익숙지 않은 작은 꽃들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아름다움의 조건들을 너무도 많이 가지고 있다. 그런 태도로 내가 나를 봐주는 것이 중요하다. 숱한 과오들 가운데 어쩔 수 없고 통제불가능했던 무수히 많은 이유들이 사실은 존재했을 것이다. 노년이 되어서는 엄밀하게 따져 물을 것도 없이 넉넉하게 그저 용납해 보는 것이다. 그렇게 지나간 인생의 수많은 장면들을 대면하고, 용납하고, 흘러 보내는 일이 바로 노년기의 중요한 과업이다.


이런 일은 누군가 전문상담가를 만나서 할 일만은 아니다. 밤잠이 도망간 어느 날 파노라마처럼 인생을 회고하게 된다면 그때 할 수도 있다. 또, 친구를 만나 노닥이며 그 시절 그때를 이야기하며 눈물 콧물을 흘리며 이야기를 펼쳐보는 것도 가능하다. 물론 혼자서 쉽게 다루어지지 않는다면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것도 필요하다. 어떤 방법을 쓰든 내 인생을 용납할 때, 비로소 내 삶이 꽃이 된다. 아름답지 않은 꽃이 없듯, 아름답지 않은 인생도 없다.


이왕이면 내 삶을 용납하는 일은 미리미리 해두자. 나이 들수록 시간은 더 빠르게 흐른다. 세월을 아껴 나와 내 삶을 너그러이 용납하며 살자. 일단 나와 잘 지내야 잘 사는 것이고, 잘 죽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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