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아홉 살 된 막내아들의 나이즈음이었을 듯하다. 길가에 핀 분꽃을 가져다 귀걸이를 만들어 친구들과 놀았던 기억이 난다. 분꽃으로 귀걸이를 만들어 양쪽 귀에다 꽂고 귀걸이가 떨어질까, 왈가닥 소녀들이 고분고분 걸으며 어른 흉내를 냈다. 분꽃의 까만 씨앗을 쪼개어 보면 촉촉한 하얀 파우더가 있었으니, 분꽃은 그야말로 엄마놀이의 주된 재료였다.
올레를 걷다 만난 이 분꽃을 처음에는 못 알아볼 뻔했다. 길가에 흐드러지게 피어 있어 그 곁을 몇 걸음을 옮기다 보니 돌연 어린 시절의 추억이 떠올랐다. 잊고 있었던 추억을 떠올리며 조심스레 하나를 꺾어다 내 기억이 맞나 확인해 보았다. 아래쪽을 조심스레 따서 당기면 하얀 줄이 나오면서 찰랑이는 귀걸이로 변신하는 분꽃에 대한 나의 기억이 틀리지 않았음에 아주 작은 기쁨이 올라왔다. 반가움이었다.
이제 내 손이 작고 여린 아이의 손이 아니기에, 약간의 긴장감 속에 살금살금 귀걸이로 변신시켜 갔다. 40년 가까이 지난 그 어느 날의 기억이 휘리릭 지나는 걸 보니, 내 머릿속에는 나도 의식하지 못하는 무수한 기억들이 담겨 있을 거란 생각에 잠시 놀라기도 했다. 우연히 바라본 분꽃으로 소환된 추억놀이에 숱한 인생 여정이 담긴 나란 그릇에 내 모든 추억들을 두루마리로 풀어헤친다면 얼마나 큰 그릇이어야 할까? 괜히 엉뚱한 생각을 하며 마흔여섯의 어린아이가 되어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