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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한 경쟁이 있는 곳에서나 가능한 일

잃어버린 중국어책을 찾게 된 에피소드

by 자유인

7월 19일.

아이들은 종업식을 하고 4주 간의 긴긴 방학에 들어갔다.

학기 중에 여름방학 중 미국 현지 연수 프로그램이 안내되기도 했지만

학기 중 일상도 어지러운 마당에 여름 방학 프로그램은 놓쳐버렸고

그 덕에 이번 여름방학은 세 아이들과 '알찬 하루'를 살아가는 방법을 실천해 보기로 했다.


아이들이 방학에 들어가기 전에 나는 다음 학기에 초등 2학년인 막내와 초등 6학년, 중등 2학년에 올라가는 아이들에게 맞춤형의 다이어리 내지를 만들어 보았다.

물론 성인용을 미리 만들어서 2주 정도 내가 먼저 실천을 하면서

아이들의 수준을 고려하여 만드는 정성을 들였다.


종업식이 진행된 7월 19일.

아이들에게 일장 연설을 읊어댔다.


인간의 삶의 여기저기가 불공정해 보여도 단 한 가지 거부할 수 없는 공정함은 시간에 있다.
하루를 잘 설계하고 살아가는 것은 훌륭한 사람들의 공통적인 특징이다.
인간이 새로운 행동을 습관이 되도록 하는 데는 21일이 걸린다.
너네들의 방학은 총 28일이니 좋은 습관을 만드는 데 딱 필요한 시간이 준비되어 있다.
어리다고 못할 일이 없다. 너네들에게는 코치해 줄 수 있는 엄마가 있다.

아이들에게 가정 숙제의 목록으로 다이어리 쓰기를 안내하고

바야흐로 방학 첫날이 되었다.


아침 일정은 순탄했고 아이들은 다이어리 쓰기를 하다가 모르는 게 있으면

엄마가 2주간 앞서 진행한 다이어리를 모범답안 삼아 나름대로 작업을 해나갔다.


오전 10시 즈음 첫째 담임 선생님으로부터 카톡메시지가 왔다.

다름 아닌 중국어 시험 재시 대상자여서 다음 주 재시험 일정을 안내해 주시는 내용이었다.

5분이 채 지나지 않아서 둘째 담임 선생님으로부터 같은 내용의 카톡메시지가 왔다.


공부보다 습관이 중요하다며 나름 야심 찬 여름방학을 계획한 엄마의 마음과 달리

아이들은 일주일 동안 중국어 복습을 하며 시험 준비에 매진해야 할 상황이었다.


낯선 어학을 새롭게 시작했으니 어려울 만도 하다며 내심 이해가 되다가도

주어진 시간 내에 목표한 학습결과를 만들지 못한 아이들이 한심스럽기도 했다가

그래도 재시험을 통해 만회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으니 다행스럽기까지

자식을 품은 엄마의 마음에는 여러 마음이 오고 간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중국어 재시험 대상일지 몰랐던 것인지

정말 책조차 쳐다보고 싶지 않았던 것인지 두 아이들은 종업식에 갖가지 책들을 챙겨 왔지만

중국어 책은 빠져있었다.

정말 손이 안 가는 과목이었나 보다.


또다시, 참을 인을 마음에 새기며 평소 통학 기사가 엄마였지만

이번 만은 버스를 타고 가서 교과서를 찾아오라고 했다.

엄마의 작은 복수이자 이참에 버스 통학 방법도 배울 수 있는 좋은 기회다 싶었다.


첫째는 책을 찾아와서 무사히 공부에 돌입했다.

둘째도 뭔가 열심히 공부를 시작하는 것 같길래 그런 줄 알았다.

토요일 아침, 서울에서 내려온 치밀한 아빠의 감독 아래 중국어 공부가 시작되었다.


그런데 아빠의 노발대발이 시작되었다.

역시나 타깃은 둘째였다.

내용인즉슨 중국어 교과서를 찾으러 갔으나 찾지 못했고 결국은 교과서 없이 엉성하게 공부를 하고 있었던 둘째는 학생으로서의 기본 태도, 혼날까 봐 거짓행동을 했다는 이유 등등으로

엄청난 훈육을 받았다.


정신을 차리고 나는 같은 반 학부모 단톡방에 글을 올렸다.


중국어 재시험을 치러야 하는 아이가 지금 교과서가 없으며,

모의고사 문제 등 공부에 필요한 것에 대해 도움을 구하는 메시지를 올렸다.


한두 시간쯤 지났을까?


개인톡으로 엄마들에게 문자가 왔다.

초등 1학년때부터 중국어를 공부하기 때문에 둘째의 레벨과 다르지만

교과서는 빌려줄 수 있다는 엄마도 있었고,

마침 재시험을 보게 된 같은 레벨의 친구의 가방에서 둘째의 책이 나왔다며

미안하다는 인사와 함께 책을 가져다주겠다는 메시지가 와 있었다.


"그래도 이 학교 학부모들은 남의 일이라고 모른 척 지나가지는 않네."


모든 상황을 지켜보던 남편이 무심코 이 한마디를 던졌다.


그제야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다.

경쟁이 치열하면 무슨 일인들 없으랴?

내가 앞서기 위해서는 누군가를 이겨야 한다.


이긴다는 것은 때로는 누군가를 밟고 일어서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내가 살기 위해 누군가는 나락으로 떨어지기를 바라야 하고

마치 전쟁터와 같이 작렬한 전사자를 지켜보다 나의 승리를 체감하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최후의 1인이 되라고 아이들에게 가르치기도 한다.

그럼 그 아이는 혼자 남아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처절한 전장에서 홀로 살아남은 1인은 이제 무엇을 해야 하나?


건강한 경쟁을 위한 시험, 재시험에 나는 찬성한다.

그 모든 과정은 각 개인에게 자신을 점검하고 보완할 기회를 준다.

중국어 책을 돌려받은 아들은 이틀째 열심히 부족한 부분을 보충하고 있다.

시험은 승자와 패자를 갈라 치기 위한 도구가 아니다.

시험은 스스로 더 성장하기 위한 과정이다.


인생은 긴 여정이고 무수히 많은 열정, 노력, 시간을 들여

각자의 그림을 그려가는 창의적인 과정이다.


그런 차원에서 공부를 한다는 것은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과정이었으면 좋겠다.

무한대의 지식 앞에서 겸손을 배우고

치열한 경쟁 앞에서 열정과 투지를 배우고

자기를 쳐서 눈물을 머금고 씨를 뿌려 마침내 거두는 기쁨을 배우고

때로는 실패 앞에서 새로운 희망과 도전을 배웠으면 좋겠다.


그게 되려면 아이들이 살아가는 무대를 바라보는 관객의 수준이 달라져야 한다.

부모의 수준이 달라져야 한다.

어떤 무대든 자식이 출연한 무대에서는 내 아이만 클로즈업되는 것이 부모의 시선이다.


그러나 부모가 먼저 그 수준을 높여서 연출가의 손길, 무대 뒤에서 수고하는 손길의 귀함을 보게 되면

무대에 선 아이들 각자의 서로 다른 재능과 그 다름이 만드는 조화가 보이지 않을까?


1등이 있기 위해서 꼴찌도 필요하다는 억측이 아니다.

인간은 학습하는 존재이다.

각자 그 자리에서의 무엇을 배우는 가의 내용은 서로 다를 수 있다.

창의적인 의미를 재구성하고 좋은 가치를 자신에게 심어 가는 사람은 사소한 것에서도 배우며 산다.


중국어 책을 가져다준 엄마의 손길에서 나는 그런 존중을 배웠다.

중국어 책을 잃어버린 아이를 보며 다시는 찾지 못할 것이라 속단했던 내 마음의 수준을 반성했다.

그런 반성의 기회를 갖게 된 것에 진심으로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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