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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미디어를 사용하지 않는 교육

공교육에서 상상할 수 없는 교육, 그러나 대안학교에서는 할 수 있다.

by 자유인 Jun 21. 2023

우리 집에는 TV가 없어진 지는 오래다. 스마트폰 소유자는 엄마 아빠뿐이고, 첫째는 초등 4학년 때 잠시 아이폰을 갖고 있었는데 youtube로 BTS를 무한 시청하다 걸려서 압수당한 이후로 스마트폰은 자녀 양육에서 영영 사라지게 되었다. 그래도 공교육에 있을 때 점심시간에 들었던 대중음악을 듣고 싶다고 하면 함께 들었고, 남자아이들에게 유행하는 스마트폰게임이 있으면 주말에 아빠와 함께 30분 정도 맛깔난 게임시간을 주기도 했다. 


그리고 대안학교로 옮겨 왔는데, 이곳에서는 학습을 위한 제한된 PC사용 외에 디지털기기는 전혀 허용되지 않는다. 집에서도 게임이나 스마트폰 사용을 기본적으로 금지하고 매일 이것을 부모가 확인하도록 한다. 입학 초에 공지된 사항을 보면 이런 가정교육은 부모들에게도 도전이 되는 일이다 싶었다. 하지만 우리 아이들에게는 평상시의 모습이어서 그리 어렵지는 않았다. 


여하튼, 디지털미디어를 사용하지 않는 교육에 나는 적극 찬성하고 주변에도 권장하는 편이다.


# 디지털네이티브에게 디지털미디어의 사용은 너무 쉽다. 


사실 나는 신문물에 쉽게 따라가지 않는 느린 학습자에 디지털역량에 있어서 지체되어 살아온 편이다. 남들이 스마트폰에 카카오톡 사용이 일반화되었을 때도 나는 흑백 폴더폰에 문자를 보내며 지냈다. 아! 물론 나의 상황이 좀 특이하긴 했다. 그때는 박사과정은 휴학 중이었고 베트남의 호찌민에서 연년생 첫째와 둘째를 낳아서 육아에만 몰입하던 중이었다. 빠르게 돌아가는 세상이 나의 생활과는 큰 연관이 없었고 관심도 없었다.


그리고 2012년 한국으로 돌아왔는데 지하철에서 내가 좋아하던 출근길 공짜신문들은 모두 사라졌고, 사람들은 모두 휴대폰을 보고 있었다. 2년 만에 모든 것이 변해 있었다. 그리고 변화에 적응하는 데는 긴 시간이 필요하지도 않았다. 그저 직관대로 작동하면 뭐든 쉬웠다. 


몇 년 전, 친한 교수님들과 오랜만에 저녁식사 모임을 하는데 애니메이션 전공 교수님이 youtube에 대해 이야기하셨다. 포털사이트를 통한 정보검색만으로도 생활의 불편을 몰랐고 TV 시청도 안 좋아하는 나였으므로 youtube까지 굳이 찾아 들어가서 즐길거리를 찾을 만큼 내 생활이 그다지 한가롭지도 않았다. 그런데, 요즘은 정보 검색도 영상으로 하는 거라나? (벌써 수년 전이다.) 그래서 한 번 사용해 본 후, 여기에 적응하는 데도 역시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았다. 요즘은 하루 중 가장 많이 쓰는 어플이 youtube가 아닐까 싶다.


최근 나온 chatGPT는? 광팬이다. 궁금한 게 있으면 친철하고 똑똑한 chatGPT에게 물어본다. 나의 어떤 질문에도 배울 것이 있는 콘텐츠를 답으로 내어준다. 대만족이다. 전공 수업이든 교양 수업이든 이번 1학기 강의에서는 학생들에게 chatGPT 사용에 대한 수요를 확인한 후 사용방법에 대해서도 알려줬다. 여기에서 학생들의 반응이 갈렸다. 어떤 학생들은 자기보다 훨씬 똑똑하다고 이야기한다. 또, 어떤 학생들은 질문을 잘 못해서인지 원하는 답을 얻지 못했다고 한다. 또, 좀 까칠한 친구들은 질문에 함정을 파서 제시하면 터무니없는 답을 한다며 chatGPT의 불완전성을 입증하는 데 즐거워한다. 어찌 됐건 chatGPT의 사용법도 역시 간단하다. 


중요한 사실은 나 같은 디지털이민자에게도 웬만한 인지기능을 갖추고 있다면 디지털역량은 대단히 어려운 것이 없다. 대단한 적응이 필요하지 않은 쉬운 세상이다.


# 디지털이민자의 불안을 다지털원주민에게 투사하지 말아야 한다.


chatGPT 사용에 있어서 학생들에게 프롬프트를 구성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다. 심지어 앞에 앉혀 놓고 자신이 어떤 생각을 갖는지 이야기해 보라고 하면 1-2분 장왕 하게 말할 수는 있지만 이것을 요약해서 한두 줄의 질문으로 만들어 내는 것을 어려워한다. 학생들의 1-2분까지 생각을 듣고 내가 요약하여 질문을 만들면 학생들은 "아!" 하며 낮은 탄성을 보인다. 이것이 현실이다. 


chatGPT를 사용하면서 진짜 중요한 학습과 소통의 역량은 '질문 잘하기'에 있다는 것을 느낀다. 그런데, 질문은 언어이고, 결국은 생각한 것을 적절한 단어들이 조합된 언어로 풀어낼 수 있는가가 중요하다. 몇 자로 표현된 이 역량이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디지털이민자들인 어른들은 요즘 아이들을 통칭하며 문해력이 떨어진다고 혀를 내두른다. 그런데 누가 아이들의 문해력을 떨어뜨렸나를 생각해 보면 어른 탓이다. 나는 여기에 어른들의 무의식적인 불안도 작동했으리라 생각한다. 디지털이민자의 시선에 달라진 세상이 낯설었고 적응이 필요했기에,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그 불안을 투사하여 잘 양육해 주려고 했을 법하다. 그러니 한창 뇌가 성장하는 시기에 아이들에게 부모들은 본인들에게 익숙했던 아날로그의 장점들은 너무 쉽게 버리고, 디지털의 신세계를 환영하며 아이들에게 곧장 그 세계로 발을 들이게 했다. 


아이 셋을 키우다 보니 시기별로 신기한 디지털 교구들을 만나봤다. 주객이 전도된 교육, 떡보다 고물로 환심을 사서 학습동기를 자극하는 방법들이라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나는 일찍이 이런 자극적인 교구 중심의 교육매체들을 지양해 왔다. 이런 선택이 쉬운 일은 아니었다. 아이들에게 스마트폰을 쥐어줘 본 부모는 너무 잘 알 것이다. 아이들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빠져있고 보채지 않는다. 양육스트레스가 낮아진다. 그런데 굳이 교육에 적절하게 믹스한 괜찮아 보이는 방법들까지 걷어냈으니 굳이 어려운 길을 선택한 셈이다.


이건 내가 대학에서 강의를 할 때도 마찬가지이다. 뒤늦게 youtube에 입성한 탓에 내 강의에는 영상물을 보여주는 일이 거의 없었다. 그런데 어느 날 학생들의 강의평가에서 동영상을 활용한 강좌와 그렇지 않은 강좌에서 학생들의 만족도에서 많은 차이가 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때부터 나도 꼭 필요한 예시를 중심으로 절제해서 동영상을 수업에 활용하고 있다. 영상에 대한 기억이 스스로 표현할 수 있는 지식, 현실에 적용할 수 있는 기술과 반드시 연결되지 않는다는 것은 경험치로 알게 되었으니 반드시 '절제된' 방식으로 사용한다. 


둘째가 최근에 지난 5년의 교육과 현재의 대안학교에서의 교육에서의 차이점으로 바로 이점을 정확하게 지적했다. 선생님들이 재밌는 영상을 많이 보여주셨는데 교육적 효과로 의식화되지는 못했다는 요지의 이야기였다. 영상을 본 후 자극적인 기억들에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얹어서 주체적인 의식을 갖게 되는 것까지가 교육자의 몫이다. 이러려면 제한된 시간을 영상만으로 교육적 효과를 만들 수는 없다. 절제가 필요하다.


# 아이의 권태를 어떻게 다룰 것인가?


주변에는 자녀들에게 스마트폰을 자유롭게 사용하게 두는 가정들도 많다. 얼마 전에 가깝게 지내는 부부가 있어서 집으로 방문을 해서 점심 부부모임을 한 적이 있다. 그 집 아이 셋, 우리 집 아이 셋. 우리 집 아이들은 스마트게임, 각종 오락, TV 신세계에 잠시 들어갔다 올 수 있는 경험을 한다. 


친구네 부부도 우리가 디지털기기들을 주지 않는 것을 알기에 우리가 방문한 날에는 자녀들에게 자제할 것을 권유한다. 그러면 아이들이 1분 이내로 순서대로 와서 하는 말이 있다.


"엄마! 이제 나 뭐 해?."

디지털기기를 거둬들이면 아이들이 보이는 가장 첫 반응이다. 우리 아이들도 일상에서 영상물과 거기를 두고 지내다가 반나절만  특정 상황에서 영상물을 갖고 놀고 난 후에는 비슷한 말을 했다. 권태를 느낀다는 것이다. 뭔가 흥밋거리를 찾는 게 어려워졌다는 것이다. 나는 이런 반응이 너무 놀랐다. 화려한 영상은 너무나 자극적이어서 뇌를 신나게 흥분시키지만 그 후에 오는 권태와 무료함을 아이들은 다루어낼 방법을 모른다. 


이럴 때 나는 대답하곤 했다.

"글쎄, 이제부터 주변에서 찾아봐."

사는 건 모두 제 몫의 책임을 지는 것이다. 아이들이 즐겁게 놀고 싶다면 그만한 즐거움을 스스로 만들어낼 수 있어야 한다. 권태가 싫으면 스스로 벗어날 궁리를 하고 탐색하고 놀이를 창의적으로 구상하는 과정을 거쳐서 즐거움의 가치까지 도달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 과정 없이 결과도 없다는 걸 부모도 알지만 그걸 어떻게 가르쳐야 할지 몰라서 아이들의 권태가 즉각적으로 부모가 해결해야 할 과제로 짊어져서는 안 될 일이다. 


# 스마트폰에 중독된 부모가 더 문제, 밥 먹을 때만이라도 one thing 하자


아이들의 학교에서 학기 초에 학부모 공지란에 아이들의 미디어 사용 절제에 관한 교육과 함께 부모에게도 동참할 것에 대한 강력한 호소의 글을 보내왔다. 그 글을 읽으면서 스마트폰에 중독된 부모이니 아이들에게 이 지점을 훈련시키기는 더욱 어려운 일이겠다 싶었다.


중독은 반복적이고 무의식적으로 행동하게 되고, 하지 않으려면 할 때보다 더 큰 에너지가 드는 상태다. 어느 날 가족 외식을 하는데, 옆테이블에서 일어났던 일이다.


예닐곱 살 되어 보이는 남자아이에게 엄마가 밥을 먹으라고 하자, 아이가 스마트폰을 보며 먹겠다고 한다. 엄마도 잠시 아이에게 권하기는 했다. 밥을 먹을 때는 밥만 먹고, 스마트폰은 나중에 보게 해 준다고. 그러자 아이가 즉시에 분노와 짜증, 울음을 터트리자 엄마는 3초도 인내하지 못하고 아이에게 폰을 건넸다. 그때, 아들보다 어린아이는 엄마 옆에서 스마트폰으로 만화영화를 보며 조용히 앉아서 법을 먹고 있었고, 아빠는 무슨 운동경기를 보면서 아들과 엄마 사이에 잠시 일어난 소동에는 무관심했다. 


부모가 스마트폰에 중독된 상태라는 건 이 아빠의 모습 정도면 충분하다. 섭식은 인간의 삶에서 너무나 중요한 행위이다. 식사시간은 길어봐야 30분 남짓일 텐데 그 시간을 밥 먹는 데만 집중하지 못하는 것은 이미 중요하 일상생활에 문제가 생긴 것이다. 다만 쉽게 멀티태스킹이 가능하다고 판단하므로 문제 삼지 않았을 뿐이다.


이미 전문가들은 이야기한다. 자극적인 영상에 길들여지면 뇌가 치명적인 손상을 받게 되고 그것은 삶의 질을 떨어뜨리고 건강한 삶을 방해한다. 나는 이 장면에서 남자아이의 정서적인 반응은 꽤나 심각한 상태 같아 보였다. 양은 냄비 마냥 쉽게 화내고 감정 통제가 되지 않으면 그 어려움은 온전히 그 사람의 몫이다. 아이에게 부모가 의미 있는 존재인 것은 위험으로부터 피하게 해 주고 건강한 습관을 만들어 주어서 이왕이면 자신의 삶을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는 독립성까지 길러주는 것이 부모의 관심사가 되어야 한다. 


빙빙 돌아왔지만 내가 아이들을 보내는 현재의 대안학교에 만족하는 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우리 아이의 뇌를 건강하게 관리할 수 있는 교육방침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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