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나의 세상
지나와 나는 3학년을 잘 마쳤고,
여름 동안 인텐시브 수업과 레스토랑 일을 쉼 없이 해냈다.
그리고 다음 학년 학기가 시작되기 전,
8월 마지막 주보다 한 주 앞서
캐나다 퀘벡으로 일주일 여행을 가기로 계획했다.
여기서 비행기로 두 시간 남짓.
가깝지만 국경을 넘는 여행이고,
퀘벡은 프랑스를 건너지 않고도 프랑스 전통 음식을 맛볼 수 있는 도시이다.
무엇보다 우리는 바쁘게 흘려보낸 시간에서 벗어나,
느리고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고 싶은 마음도 있다.
그리고 우리에게는
마지막 남은 학년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요리사로서 ‘이 일’이 내 삶에서 어떤 의미인지,
조금은 깊이 생각해 보고 싶은 생각에 떠나는 여행이기도 하다.
비행기 표를 끊고 나서, 공항까지 어떻게 갈 것인가 하는 고민이 생겼다.
전날 공항근처 호텔에서 자고
아침 비행기를 탈것인가,
차를 렌트한 다음, 다음 날 아침 운전해서 공항으로
운전 하고 가서 차를 반납을 할 것인가.
하지만 정오에 레스토랑에서 급하게 연락이 왔고,
오늘 좀 도와줄 수 있겠냐는 부탁이었다.
추천서도 중요했고, 그동안 성실하게 일해온 곳이기도 하고,
무엇보다 오너 셰프의 부탁을 쉽게 거절할 수는 없지만,
오늘은 여행 가기 전날 아닌가.
“그냥 오늘 밤에 여기서 자고, 내일 아침에 운전해서 가자. 내가 가서 렌트해 올게."
망설이는 나에게 지나는 씩씩한 모습으로 말을 잇는다. “지금까지 잘해 온 곳인데.
이렇게 중요한 날 도와 달라는데 안 가면 너도 마음이 내내 불편할 거야.
그 셰프님이 아무에게나 부탁하는 사람도 아니고."
지나 말이 맞다.
워낙 까다롭고, 철저하기로 소문난 오너 셰프는
부셰프가 레스토랑에 못 오게 되면,
다른 사람을 대타로 구하는 대신,
위약금을 물어 주고라도 예약을 취소시키는 사람이다.
그만큼
손맛.
그 맛.
언제나 같은 맛을 추구하는 사람이다.
그런 셰프가 부셰프가 자리를 비우게 되어
그 자리에 나를 부르는 건 대단한 신임이자 인정이기는 하다.
"송원 씨. 고민 할거 없어요. 어차피 비행기는 내일 떠나.
내가 오후에 차도 렌트해 오고, 집도 좀 정리해 놓고 있을게.”
그래도 망설이는 나를 지나는 현관문 쪽으로 밀어내며
“빨리 가. 늦겠어.”
“그럼 렌터카 샵까지 버스 타지 말고 우버 타. 알았지?”
“알았어.”
지나와 인사를 나누고, 나는 서둘러 레스토랑으로 향한다.
주방은 오늘따라 숨 돌릴 틈이 없었다.
음식 순서가 엉키고,
손님의 불만으로 다시 만들어야 하는 접시가 늘어났고
보조가 칼질을 하다 다치는 일까지 벌어졌다.
지나에게 렌터카 샵은 잘 도착했는지,
문제는 없는지 묻고 싶었지만,
30초의 여유도 없었다.
영업시간이 거의 끝나갈 무렵,
10년 넘게 이곳에서 일했다는 수셰프가 한숨을 내쉬며,
“Honestly a day like today.. it's the first tme,
it's happend in all 15 years I've been here.
But I'm really glad you came. You managed really good.
Jack. You did a good job. I think you're ready to step up as sous-chef."
평소 아주 필요한 말만 짧게 하거나,
혹은 호통만 치는 오너 셰프가
오늘따라 길게 말하며, 칭찬까지 아낌없이 해 준다.
나는 뛸 듯이 기뻤지만, 차분한 목소리로,
"Thanks for having me, I
I am happy, I could help."
이 기쁨은 집에 가서 지나와 함께 할 것이다.
그는 두툼한 봉투를 내밀며,
“Here's your extra pay for today.
Enjoy your trip."
수표 대신 현금이 두둑하게 만져지는 봉투다.
말을 마친 오너 셰프는 들어가려다 말고,
"You're going to keep working with me, right?"
"Really?"
나는 아직 다음 학기 인턴쉽을 생각하지 않은 상태였다.
이 레스토랑에서 조금 더 일하면 좋겠다고 생각은 해 봤지만
보통 인턴을 그렇게 오래 쓰지는 않는 편이다.
허드렛일을 더 많이 할 학생 인턴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You got promoted. See you after your trip.
Okay?"
나는 오너 셰프에게 고맙다는 말을 100번쯤은 하고,
집으로 향해 달린다.
지나에게 이 모든 기쁜 소식을 전하고 싶다.
달리면서 지나에게 전화를 걸지만, 받지 않는다.
잠시 걸으며, 핸드폰 문자를 확인하니,
지나에게 문자가 와 있다.
“지금 렌터카 샵 는 길이야.
차만 렌트하러 가는 건데 괜히 신난다.
여행 너무 재미있을 것 같아."
지나는 깡충깡충 뛰는 토끼 이모지까지 보냈다.
나는 돈 봉투 사진을 찍어 보내며, 메시지를 남긴다.
“나 이제 가는 길이야.
오늘 돈도 많이 받았어.
네가 먹고 싶은 거,
사고 싶은 거 다 해줄게.
신난다. 그리고, 나... 아니다.
이건 집에 가서 이야기해 줄게."
나는 서둘러 집으로 향한다.
집에 오니, 집 안이 어둡다.
불을 켜니, 여행을 위해 싸 둔 캐리어가 보이고,
집 안은 말끔하게 정리되어 있다.
나는 다시 지나에게 전화를 걸지만,
그녀는 응답이 없다.
메시지는 읽지 않은 상태다.
.
그러고 보니, 그녀의 마지막 메시지도
‘렌터카 샵 가는 길’에서 멈춰 있다.
지나라면 분명,
차 픽업했어.
집으로 가는 중이야.
오랜만에 운전해서 신난다.
라고 또 문자를 보냈을 것이다.
나는 집 밖으로 뛰쳐나갔다.
이곳저곳을 뛰어다니며 그녀의 이름을 부른다.
머릿속은 엉망이다.
이럴 때 어떻게 해야 하지?
한국처럼 파출소에 신고해야 하나?
근처 병원에 전화해서 사고자 명단을 확인해야 하나?
아니, 렌터카 샵에 먼저 전화해 봐야겠다.
하지만 렌터카 샵은 이미 문을 닫은 시간이다.
911에 전화해 “사람을 찾아달라”라고 말하는 것조차 떠오르지 않는다.
유학생인 내가, 이 나라에서.
나는 무엇을 해야 할지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은 채,
지나랑 다녔던 길들을 정신없이 헤매며 뛰어다니다가,
미국에 계신 고모에게 전화를 걸었다.
.
“911에 전화해서, 실종됐다고 말해.”
고모의 말 대로 나는 911에 전화를 걸어 애원하듯,
"My friend, no no my my fiance,
she is disaapered.
She went missing.
Please, please help me find her."
내가 서 있는 세상은 점점 어둠으로 변해 가고,
이 칠흑 같은 어둠은 끝나지 않을 것만 같다.
다음 회에서는
그녀를 찾기 위해 헤맨 그의 시간들,
그리고 학교로 돌아온 뒤 무너진 일상,
그렇게 요리와 삶을 동시에 잃어버린
그의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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