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주방. 나의 요리
학교를 떠난 후,
인턴으로 있던 레스토랑의 오너 셰프가 추천한
북부 캘리포니아에 위치한 레스토랑에서
나는 정신없이 일했다.
사실, 미친 듯이 일했다는 표현이 더 맞을지도 모른다.
1주일에 거의 80시간을 넘게 일했다.
주말에도 쉬지 않고 일했다.
집에 오면 녹초가 되어
씻을 힘도 없을 만큼 지친 상태로 쓰러져 잤다.
일 중독으로 몰아붙인 것이다.
잊기 위해서였다.
그래도 처음 1년 동안은 정신을 차리고,
그녀의 소식을 기다렸었다.
그리고 1년이 지났을 때는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지만
나는 그녀가 이제 더 이상
이 세상 사람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지나라면 이렇게 갑자기 사라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무슨 일이 생겨 떠났다 해도,
며칠 후애,
반드시 연락을 했을 것이다.
일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그리고 새벽녘에 일 하러 가는 길에 보이는
아직도 어스름한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나는 그녀가 평안한 곳에 있기를 빌었다.
혹시라도 억울한 일을 당한 거라면
내 꿈에라도 나타나 알려 달라고 기도했다.
그녀의 억울함을 내가 대신 풀어주겠다는
비장한 마음까지도 품었다.
그리고, 정말 상상하고 싶지 않지만
만약 그녀에게 나쁜 짓을 한 사람들이 있다면
나는 평생 그들의 삶을 저주하겠다는 다짐까지
하늘을 향해 빌었다.
미친 듯이 일만 해서였을까.
요리 실력은 날로 늘었다.
입소문이 나기 시작하고,
여기저기서 스카우트 제의가 들어왔다.
나는 미슐랭 쓰리 스타 레스토랑의
헤드 셰프로 이직했다.
그곳에서 그렇게 3년이라는 시간도
흘러가고 있던
어느 날.
레스토랑 예약 담당 직원이
종이 메모 하나를 내민다.
한국에서 온 연락이라는 것이다.
순간, 나는
‘아… 혹시…’
라는 기대감으로 메모지를 바라봤다.
하지만 거기엔,
박서우.
TV온 예능 담당 PD.
이메일 주소.
그리고 짧은 메시지.
셰프님. 이야기 한번 하고 싶습니다.
메모 보시면 이곳으로 연락 주세요.
기다리겠습니다.
라는 영어로 적힌 메모였다.
기대는 곧 실망으로 바뀌었고
나는 메모지를 휴지통에 버렸다.
그 뒤로도 비슷한 메모가 한 달쯤 더 전해져 왔지만,
나는 답을 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웨이트리스가 조심스럽게 나에게 다가와,
“Excause me, Chef.
We have a guest form Korea who seems to be having a little difficulty
with the manu due to the language barrier.
Would you be able to assist her?"
나는 오너 셰프에게 말하고,
흔쾌히 그러겠다고 하고 홀로 나갔다.
테이블에는 여성분 한 명이 앉아 있다.
나는 한국말로 반갑게,
“안녕하세요. 제가 좀 도와드릴까요?”라고 말하자,
여성분은 고개를 들어 나를 보며,
한국말이 반가운지,
"아, 네. 감사합니다.”라며 들뜬 목소리로 말한다.
그러더니,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내게 손을 내밀며,
“안녕하세요, 송원 셰프님.
TV온 예능 담당 PD, 박서우입니다.”
순간, 한 달 넘게 나에게 전해졌던
그 메모지가 떠올랐다.
박서우.
이름만 보고 남자일 거라 생각했는데
여자 PD였고, 메모지에 있던 이름의 사람이 내 앞에 등장하자,
나는 잠시 할 말을 잃어 가만히 서 있는다.
그녀는 웃으며,
“그런데요, 셰프님.
일도 일단은 먹고 해야죠.
다 먹고살자고 하는 건데요.”
그녀는 이어서 숨 돌릴 틈도 없이,
“제가 세프님을 찾아온 이야기를 먼저 해야 하는데,
배가 너무 고파요.
이런 고급 미슐랭 레스토랑은 또 처음이라
가격도 가격이고,
메뉴도 하나도 모르겠어요.
이왕 쓰는 법카, 제일 맛있는 걸로 먹고 싶은데,
셰프님께서 좀 추천해 주시면 안 될까요?
나는 그녀의 말과 행동에 홀리기라도 한 듯,
‘무슨 일로 여기까지 왔는지’
‘왜 나를 찾았는지’
묻는 대신
아주 친절한 목소리로,
"제가 추천해 드릴 수 있습니다.
혹시 선호하지 않은 음식이나,
알레르기가 있으실까요?"
라고 묻고 말았다.
"저는 다 잘 먹습니다."
“와인도 한잔 드시겠어요?”
라는 말까지도 물었다.
일 중독에 빠진 자의 직업병인가.
그녀는 두 눈을 반짝이며
술이 빠질 수 없다는 표정까지 지어 보인다.
법카를 제대로 쓸 모양이다.
나는 그녀 대신 메뉴를 오더하고
주방으로 향한다.
한참 후,
홀을 바라보니
그녀는 음식을 정말 맛있게, 야무지게 먹고 있고
와인은 벌써 두 잔 째 비우고 있는 중이다.
잘 먹고 잘 마시는 그녀를 보며
셰프로서 마음이 조금 열렸을까.
모든 음식이 다 나간 뒤
잠시 시간이 나서
나는 다시 그녀에게 다가갔다.
그녀는 마침
와인 한 잔을 더 주문하고 있는 중이었다.
살아남기 위해 애쓰던 시간 속에서,
뜻하지 않게
요리사로서 성공한 그.
그리고
한국에서 온 메모와
그 앞에 나타난 한 사람.
다음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구독하고 함께 하세요.
#SoulFood #요리와사랑 #감성소설 #연재소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