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궁 안 여기저기 여러 색상들의 천들이 걸려 있고, 사
람들로 북적북적 거리며 소란스럽다. 왕비를 선출하는
시험이 치러지고 있는 중이다. 이른 아침부터 시작한
시험은 신체검사, 체력검사, 정신검사를 거치고, 예절
과 법도에 관한 시험까지 네 종목을 치르면서 100명이
훨씬 넘은 지원자들 중에 최종적으로 여덟 명의 우수
한 성적의 후보자들이 남았다. 최종적으로 남은 후보
자들은 하갈과, 마하살, 넬, 그리고 사울진이 제출한 문
제를 풀게 될 것이고, 그중에서 최고 점수를 받은 이가
왕비로 선출될 것이다.
여뎗 명의 후보자들이 보연당이 있는 마당으로 들어가
자 문이 닫힌다. 이제부터 시험은 라단과, 하갈, 마하살
넬, 그리고 사울진이 감독할 것이다.
라단은 가면을 쓴 후보자들을 유심히 바라보며, 저들
중에 사엘이 있을까 유심히 보지만, 모두들 비슷한 옷
감의 옷과, 같은 가면을 쓰고 있어, 도무지 전혀 알아챌
수가 없다.
잠시 후, 마하살이 먼저 나와 항아리에 손을 넣고, 접혀
진 종이를 하나 집어 꺼낸다. 며칠 전 라단이 이들에게
지시 한대로, 다섯 문제씩 적어서 항아리에 넣었고, 시
험 당일날 무작위로 뽑아 제출하는 방식이라, 누가 어
떤 문제를 가져왔는지 제출자들도 서로 모르는 상황이
다.
다들 제출된 문제를 보자, 사울진은 그가 낸 문제인 것
을 알고 가벼운 미소를 짓는다.
후보자들 모두 사울진이 낸 문제에 답을 적어 내려간
다. 잠시 후, 사울진이 문제의 정답을 말하자, 여기저기
서 한숨 소리가 난다. 그렇게 6문제가 출제되었고, 나
머지 한 문제만 남았다.
마지막으로 하갈이 자리에서 일어나 항아리에서 종이
를 꺼낸다. 다시 사울진의 입가에 웃음이 번진다. 사울
진이 낸 문제이다.
잠시 후, 사울진이 정답을 말한다.
하갈, 마하살, 넬, 그리고 사울진은 후보자들을 각각 두
명씩 맡아 그들의 답을 검토한다.
모두들 점수가 비슷하여, 가장 점수가 높은 이를 선출
할 수가 없다.
모두들 고민하는 중에 라단이 말한다. “그렇다면 제가
한 문제를 더 내면 어떨까요?”
다들 좋은 생각이라고 생각하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
사울진도, “좋은 생각이신 것 같습니다.”라고 거든다.
다들 찬성을 하자, 라단은 의자에서 일어나, 층계를 내
려가 후보자들에게 가까이 서서는, “그럼, 정답이 없는
문제를 내어, 그중에 제가 맘에 드는 답을 낸 후보자님
께 가장 높은 점수인 5점을 드리고, 나머지 분들은 차
등으로 점수를 드리면 어떨까요?”
라단은 이곳에 혹시 사엘이 있을까 하여, 그녀와 나누
었던 이야기 중에 하나를 내려고 하는 것이다.
하갈이 말한다. “네. 그렇게 하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왕비님께서도 왕과 비슷한 생각을 가지신 분이 되면
좋지요.”
라단은 잠시 침묵하더니 문제를 말한다. “우리는 지금
원이라는 새 나라에 살고 있습니다. 이전에는 지파들
이 있었고, 제사장님도 계셨습니다.”
라단의 문제에 사울진과 넬의 표정이 좋지 않다.
하갈과 마하살도 라단의 질문에 의아해하는 표정이다.
“지금 여기 계신 분들은 그 당시 마을에 사셨던 분들의
자녀들이고요. 지금 이 나라에는 제사장님은 계시지
않지만, 우리는 여전히 경전의 신을 믿습니다. 제가 여
러분에게 하고 싶은 질문은 이것입니다. 여러분은 경
전의 신을 위한 신전 재 건축을 찬성하십니까? 아니면
반대하십니까? 만약 찬성 한다면 이유가 무엇이며, 반
대한다면 그 또한 이유가 무엇언지 적어 주세요."
사울진이 라단의 질문을 듣고 묻는다. “왕께서 제출하
신 문제가 왕비 선출과 관련이 있습니까?”
“글쎄요. 관련이 있다 없다 보다는 왕비 되실 분이 저
의 믿음관과 같은지, 다른지 알고 싶어서 한 질문입니
다.”
사울진이 다시 묻는다. “그런데, 왜 신전 재 건축에 관
한 질문을.."
라단의 싸늘한 표정에 사울진이 말끝을 흐린다. 사울
진도 이 자리에서 왕이 낸 질문에 왈가 왈부 하는 것도
왕의 권위를 낮추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고 생각해 하
던 말을 멈춘 것이지만 그렇다고, 갑자기 제사장이나
신전의 이야기를 하는 것은 왕비 선출에 대한 질문으
로는 맞지 않다고도 생각한다.
사울진의 생각을 눈치챈 하갈이 자리에서 일어나 말한
다. “모두들 답을 써 주세요.”
시작하는 종이 울린다.
잠시 후, 마치는 종이 울리자, 각 각 두 명의 후보자들
과 함께 한 하갈, 마하살, 넬, 사울진이 그들의 답을 차
례대로 소리 내어 읽어주고, 라단은 1점부터 5점까지
점수를 준다.
답을 말한 이들 중에 라단의 마음에 들어 5점을 받은
다섯번째 후보자의 답은 이렇다. “신전을 재 건축 하느
냐 마느냐의 문제에 앞서, 왕권과 신권이 무엇인지, 그
것은 서로 동일하게 작용하는지, 혹은 분리돼서 작용
하는지를 먼저 판단해야 한다. 왜냐하면, 첫째, 지금의
왕이 왕권과 신권을 모두 다 가질 것인지, 왕권 그리고
신을 섬기는 제사장이 따로 분리되어 있어야 하는지를
우선 정해야 한다. 만약, 왕이 왕권 신권을 모두 가졌을
경우 신전의 재 건축은 왕실을 위해 쓰이는 것인지, 아
니면 신권을 위해 쓰이는 것 인지도 분명하게 정해야
한다. 둘째, 왕권과 신권을 분리한다면, 누가 어떻게 신
전을 재 건축할 것인지 정해야 한다. 이 문제는, 신전의
재건축의 찬성이냐 반대냐를 묻기 이전에, 왕권과 신
권의 분리냐, 혹은 결속이냐를 먼저 정해야 하는 문제
이다.”
라단은 다섯번째 후보자에게 최고 점수를 준 이유는
후보자가 왕권과 신권에 대해 제시 했기 때문이다.
사울진과 넬은 제사장 혹은 신전에 대해 언급되는 것
이 여전히 탐탁지 않은 표정이고, 하갈은 제출된 문제
가 사엘이 높은 점수를 받게 하기 위해 낸 문제인가 생
각해 보지만, 사실 지금 이 후보자들 중에 사엘이 있는
지 혹은 없는지도 잘 모르겠다.
라단은 왕권과 신권의 분리라는 말에서 다섯번째 후보
가 혹시 사엘이 아닐까 생각한다. 예전에 친구들과 함
께 지파와 제사장의 관계에 대해서 이야기했었던 적이
있었다.
다음에 4점을 받은 세번째 후보의 답은 이렇다. “신전
재 건축을 반대한다. 첫째. 경전의 신은 신전을 다시 짓
는다고 하여 머무는 것이 아니다. 둘째, 신전을 다시 재
건축 한다는 것은, 마을 사람들에게 물질적으로나, 심
적으로 부담을 주는 일이 될 수 있다. 그래서 이 신전
이 누구를 위해 왜 필요 한지 검토 한 후에 재 건축을
하느냐 마느냐 논의해야 한다. 그러므로 나는 이 시점
에서는 신전 재건축을 반대이다.”
라단은 논쟁과 결과가 마음에 들었으나, 재 건축 방향으로 긍정적으로 썼다면 5점을 주었을 테지만, 반대를
주장했기 때문에 4점을 준 것이다. 라단은 신전 재건
축을 찬성하기 때문이고, 이제 곧 사엘과 친구들이 돌
아오면, 그가 불태워 버린 신전을 그들과 다시 재건축
하고 싶다.
모든 후보들의 답을 듣고 점수를 매긴 후, 사울진이 라
단에게 묻는다. “왕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모
두들 답을 내고 점수를 받았으니, 왕의 생각을 말씀해
주셔도 되지 않을까요?”
사울진의 질문에, 다들 라단의 대답도 궁금하여 모두
들 라단을 쳐다본다.
“글쎄요. 제가 굳이 제 생각을 이 자리에서 말할 필요
는 없을 듯합니다. 점수를 가장 많이 준 왕비 후보님과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겠지요.“
“그래도 다들 궁금해 하시는 것 걑은데 말씀해 주시지
요.” 라며 넬이 상냥한 말투와 미소로 청한다.
라단은 그런 넬의 얼굴에 질려 고개를 돌려 주변을 둘
러보다 후보자들을 바라보니, 모두들 가면쓴 얼굴을
들고 그를 보고 있다.
“그렇개 제 생각이 궁금하시다면, 제 생각은 이렇습니
다. 이 마을은 대대로 경전의 신을 믿고 따랐습니다. 지
파가 있어서 믿었고, 지파가 없어져서 안 믿고, 새 나
라가 만들어졌다 하여, 경전의 신을 믿거나 믿지 않거
나에 대해 문제 삼을 것이 아닙니다. 처음부터 지금까
지 우리들은 경전의 신을 믿었습니다. 저는 경전의 신
을 위한 신전을 새로 짓고, 경전의 신을 위한 제사가 다
시 시작되도록 할 것입니다. 세번째 후보님은 5점을
받을 만한 답을 하셨으나 결론이 신전 재 건축 반대 여
서, 4점을 드린 것입니다. 그리고 5번 후보님께서 신
전 재 건축보다 왕권과 신권에 대해 언급하신 부분에
서 높은 점수를 드린 것입니다. 그리고 저는 신권과 왕
권의 분리입니다.”
사울진이 말한다. “제사장은 저주받았습니다. 그래서
신전도 붙에 타 없어진 것 아닙니까? 그런데 왜 재건
축에 대해 논하시는 것입니까?”
“제사장이 저주받은 것이지, 경전의 신이 저주받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신전은 제사장을 위한 것이 아니
라, 경전의 신을 위한 것이고, 우리는 모두 여전히 경전
의 신을 믿고 있습니다. 또한 제사장이 저주받았다는
증거도 없지 않습니까? 경전의 신의 불도, 제사장도 모
두 갑자기 사라졌으니, 알 수가 없는 일 아닙니까?”
사울진이 자리에서 일어나 말한다. “왕비님을 선출하
는 자리에 무슨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저는 사람들의 믿음 속에 있는 경전의 신을 위한 신전
을 다시 재 건축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 나라에서 왕권
과 신권은 분리입니다. 이것이 저의 답변입니다. 뭐가
문제입니까? 그리고 왕비가 되실 분에게 못할 질문도
아니지 않습니까. 이 나라 사람이라면, 누구나 경전의
신에 대해서 생각하고 말할 수 있지 않습니까? 게다가
왕실에서 경전의 신과 신전에 대해서도 충분히 논의
할 수 있지 않습니까? 왕비 후보를 위해 문제 하나 낸
것인데, 뭐가 문제가 된다고 이렇게 말씀이 많으십니
까?”
라단의 단호하고, 강한 어조에, 사울진은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한다.
다시 한번 후보자들의 문제를 검토하고, 점수를 낸 결
과, 다섯번째 후보자가 가장 높은 점수로 왕비 시험에
합격이 되었다.
하지만 이것이 끝은 아니다. 이제 왕비 방에서 라단을
만나야 하고, 그것 또한 통과가 되면 내일 모두에게 왕
비 선출을 알릴 것이다.
다섯번째 후보자를 제외한 나머지 후보 자들은 호위
무사들의 안내 하에 보연당을 나가, 왕실 안에 마련된
처소에 내일 까지 머물러야 한다. 왜냐 하면, 만약 다섯
번째 후보가 라단과의 만남에서 탈락될 수 있기 때문
이다. 그렇다면, 남은 이들이 왕을 따로 다시 만날
것이다.
다섯번째 후보자가 왕비 방으로 가니, 왕실 여 집사가
기다 리고 있다.
그녀가 새 옷을 건네며 말한다. “저는 도와 드리고 싶
지만, 이제 이곳을 나가봐야 합니다. 왕비 후보님의 얼
굴을 봐서는 안되기 때문입니다.”
후보자도 다 알고 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방 옆에 씻으실 물을 준비해 놓았습니다. 하루 종일
시험을 치시느라, 고단하고 지치 셨을 텐데, 씻으시고,
새 옷으로 갈아입고 계시면 됩니다. 가면은 계속 쓰고
계셔야 합니다.”
후보자는 알겠다는 듯 다시 한번 고개를 끄덕인다.
왕실 여 집사가 나가고, 후보자는 옆 방으로 가, 하루종
일 흘린 땀을 씻어내고, 새 옷으로 갈아입는다. 다시 가
면을 쓰고 방으로 가는데, 밖은 어느새 해가 저물며, 분
홍빛 노을이 하늘 위에 길게 늘어진 것이 보인다. 가던
길을 멈추고, 잠시 밖을 바라본다.
“오늘 하루 고생 많으셨습니다.”
소리가 난 곳을 보니, 왕이 서있다.
허리를 굽혀 인사를 하자, 라단이 다시 말한다. “네. 그
만 일어나세요. 하늘을 보고 계신 것 같던데.”
후보자가 굽힌 허리를 펴며 고개를 끄덕인다.
라단이 묻는다. “하늘을 좀 더 보시겠습니까?”
후보자가 다시 고개를 끄덕이자, 라단은 왕실 여 집사
에게 눈짓을 한다.
왕실 여 집사와 몇 명 왕궁 신하들이, 문과, 창문을 활
짝 연다.
라단에게 후보자가 깊게 숨을 들이쉬고 내쉬는 것이
느껴진다.
그렇게 둘은 아무 말 없이 서서, 지는 노을을 바라보다
주변이 어둑해져서야, 방으로 들어간다.
방에는 왕실 하녀들이 놓고 간 음식상이 놓여 있다.
라단이 먼저 바닥에 앉으며 말한다. “다른 곳은 의자가
있는데, 이 방에는 의자를 놓지 않았습니다. 전 방에서
는 이렇게 바닥에 앉는 것이 좋더라고요. 이불 앞에 작
은 탁상이 하나 놓여 있는 것도 좋고. 그래서 제 방도
그렇고, 왕비님이 계실 방도 이렇게 꾸며 놓았는데, 나
중에 원하시는 대로 바꾸셔도 됩니다.”
라단은 예전에 잠시 방문한, 사엘의 방처럼 꾸며 놓은
것이다. 사엘의 방도 바닥에 앉아야 했고, 그 앞에 작은
탁자 그리고 그 위에 경전이 놓여 있었다. 사엘이 그
랬다. 그녀의 엄마도 늘 이렇게 방바닥에 앉아 계셨고,
사엘을 가졌을 때, 탁자 위에 놓인 경전을 읽어 주셨다
고. 그래서 엄마처럼 바닥에 앉는 것을 좋아한다고 했
었다.
후보자가 말없이 바닥에 앉는다.
라단이 말한다. “배고프지 않으십니까? 하루종일 시험
을 치르시느라 먹지도 못하셨을 텐데. 이제 이곳엔 아
무도 없으니, 가면을 벗으시고 식사부터 먼저 하세요.”
라단은 앞에 앉아 있는 후보자가 사엘인지 아닌지 궁
금하고, 당장이라도 가면을 벗겨 보고 싶지만, 혹시 사
엘이 아닐 수도 있기 때문에 최대한 공적으로, 정중하
게 말을 이어 나가는 것이다.
후보자가 라단의 말에 머뭇 거리자, “괜찮습니다. 편안
하게 하세요. 저도 이런 자리가 익숙한 것은 아닙니다.”
라단도 어색한지 말을 마치고 마른기침을 여러 번 하
며, 상에 놓인 주전자의 물을 따라 마시자, 쓴 표정을
지으며 말한다. “물인 줄 알았는데, 술이네요. 내가 술
은 못 마셔서”
라단은 다른 주전자의 물을 따라 마신다.
이들 사이에 잠시 침묵이 흐른다.
후보자가, 술 주전자를 들어 잔에 따른 후, 말한다. “우
리가 술을 함께 마셔본 적은 없었던 것 같아. 그렇지?”
“네? 응?”
라단은 순간 입에서 사엘아 라고 부를 볼 뻔했지만, 그
녀의 이름을 입에 담지 않기 위해 애쓰며 말을 잇는다. “혹시 우리가 아는 사이인가요?”
후보자가 가면을 천천히 벗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