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보자의 가면 벗을 얼굴을 본 순간, 라단은 너무 놀라
몸을 뒤로 젖힌다.
후보자는 따라놓은 술을 한 모금, 그리도 두어 번 더 따
라 마신 후, 라단을 보고 웃으며 말한다. “너무 놀라는
거 아니야?”
“너?”
“넌 지금까지 술도 못 마시고 뭐 했어?”
“네가 될 줄은 몰랐어. 아니 난 네가 후보지원도 안 할
거라 생각했어.”
“아버지 성화에 못 이겨 후보 지원은 했는데, 나도 내
가 여기까지 올 줄은 몰랐어. 진작 떨어질 줄 알았는데,
이게 뭐니.”
브니아는 그녀의 잔과 앞에 놓인 다른 잔에도 술을 따
르고는, "너도 한번 마셔 볼래?" 하더니, "아 맞다. 너
라고 하면 안 되지.”라고 말하고는 그녀의 잔과, 따라놓
은 다른 잔의 술까지 연거푸 마신다.
“너라고 해. 너랑 나랑 둘 뿐인데 뭐.”
“그럼 그럴까. 그런데 이게 정말 뭐니."
“뭐가?”
“넌 왕으로 있는 거 좋아? 나는 왕비니 뭐니 그런 거 하
는 거 싫어. 아버지가 하도 달달 볶아대서 나랑 보랑 지
원은 했는데, 보는 어떻게 됐는지 모르겠네. 아무튼 나
도 한 번에 떨어질 줄 알았고, 그릴려고도 했거든. 근
데 내가 너무 잘하는 거야. 예절, 법도 시험도 그렇고,
게다가 난 정신과 체력도 좋더라고. 7문제 중에서 반은
사울진님하고 아버지 것이 나와 뻔하게 내신 문제들이
라 다 잘 맞출 수 있었고.”
“시험에 떨어지고 싶었으면, 그냥 잘 못 맞췄어도 되
잖아.”
“그러니까. 그런데 그게 안되더라. 내가 승부욕이 있
어서, 일단 이기고는 봐야 되는 거야. 그렇게 후보자들
중에서 1등이 되고, 여기 와서 하늘을 바라보는데, 순
간 내가 뭐 한 거지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어..”
“그래서 그렇게 한숨을 내 쉰 거구나.”
“응.” 브니아가 다시 술잔에 술을 따르더니 마신다.
라단은 잠시 생각에 잠겨, 하늘을 바라보던 이가 사엘
인 줄 알았고, 그는 예전에 그녀와 함께 하늘을 바라보
며 있었던 것처럼 했던 것이다. 그리고 방에서도 사엘
이라 생각하며, 방바닥 이야기를 늘어놓은 것인데, 그
녀가 아닌 브니아였다고 생각하니, 그의 말과 행동이
무안하고 황당해 헛웃음이 난다.
술을 한잔 더 마신 브니아가 말한다. “그런데, 너 생각
보다 되게 낭만적이더라.”
“응?”
“하늘을 좀 더 보실래요? 와 나 그때 진짜 너무 웃음이
나왔는데 참느라고.”
“그러면 뭐라고 해?”
“그리고, 방바닥 이야기는 뭐야? 그리고 나중에 원하
시는 대로 바꾸라고?”
“그건 왜?”
“너 혼인하는 거 되게 싫어한다고 들었는데. 하지만 어
쩔 수 없이 왕실을 위해서 하는 거라고. 그런데 아닌가
봐?”
“응?”
“너 혼인 엄청 하고 싶은 사람 같았어. 솔직히 말해봐?
혼인이 그렇게 하고 싶었어?”
“뭐야. 그런 거 아니야.”
“칫. 아니긴.” 브니아가 술잔에 술을 다시 따르자, 라단
이 말한다.
“너무 많이 마시는 거 아니야?”
“많이 마시긴. 이제 시작이지. 너도 나에 들어서 알 거
아냐. 내가 얼마나 노는 걸 좋아했는지. 그때 진짜 많이
놀았는데. 마데라에 가서 옷도 많이 사고, 맛있는 것도
많이 먹고, 친구도 많았고.”
“지금은 안 그래?”
“안 그러는 게 아니라, 못하지. 예전에 지파로 있을 때
더 자유 로왔어. 지금 이 나라에서는 나 같은 사람에게
는 자유가 없어졌어.”
“왜?”
“그런 거 있잖아. 왕의 측근, 왕의 측근의 자녀. 내가 뭘
했다고. 게다가 아버지가 나나 보를 얼마나 왕비가 될
거라고 하고 다니셨는지. 우리는 생각도 없는데 말이
야. 그런데 사람들은 우리를 왕비처럼 생각하고 어려
워해. 그래서 나도 불편하고 그들도 불편해해서 예전
처럼 어울리기가 좀 그렇더라. 모두가 평등한 세상을
만들려고 세운 나라 아니었어? 내가 놀기만 했어도, 그
정도는 아는데, 지금은 글쎄, 뭐랄까.”
브니아가 잠시 말을 멈추자, 라단이 묻는다.
“뭔데?”
“음… 평등하지 않아. 자유도 더 없는 거 같고.”
“나도 그렇게 생각해.” 라단도 술잔에 술을 따라 한 모
금 마시더니 얼굴을 찌푸린다.
“술도 못한다면서, 마시지 마. 이런 건 원래 마시던 사
람이나 마시는 거야.”
브니아가 술을 한잔 더 따라 마시고는 말을 잇는다. 그
런데 말이야.”
“응.”
“나 여기서 나가게 좀 해주라.”
“뭐라고?”
“네가 내일 5번 후보자는 별로라고 하면 되지 않아?”
“뭐가 별로라고 해?”
“너 나 별로지 않아? 너 나 좋아?
라단이 양손을 저으며 말한다. “아니. 아니. 그건 아니
고.”
“뭐가 아니라는 거야?”
“아니. 뭐가 별로어서 탈락시켜야 되는지 모르겠어서.”
“그냥 별로라고 해. 맘에 안 든다. 성격도 얼굴도 맘에
안 든다. 그렇게 해.”
“어떻게 그래?”
“그럼 너 나보고 진짜 왕비라도 되라는 거야?”
“응? 너보고 왕비가 돼라 마라가 아니라, 네가 응시해
서 합격한 거잖아.”
“그러니까. 내가 여기까지 합격은 했지만, 네가 맘에
안 든다고 하고 내 보내 달라는 거지. 나 진짜 왕비 같
은 거 하기 싫어. 그리고 사실 너도 내 마음에 드는 건
아니고. 그래서 너랑 혼인하는 것도 싫어. 아니 너 자
체가 싫다는 건 아니고, 그러니까 내말은, 나는 내가 사
랑하는 사람과 혼인해서 평범하게 알콩 달콩 살 거야."
라단이 브니아의 거침없고, 솔직한 말에 웃음을 터트
린다.
“왜 웃어?”
“아니. 너무 오랜만이라.”
“뭐가?”
“이런 솔직한 대화.”
“너 설마 지금 내가 좋아 진건 아니지? 그러지 마. 제발
나를 탈락시켜서 여기서 나가게 해 줘.”
라단이 두 손을 또 절레절레 흔들며 애써 웃음을 참으
며 말한다. “알았어. 알았어. 그렇게 할게.”
“그래. 고마워.”
라단은 브니아가 수아랑 잘 어울렸을 것 같다는 생각
이 든다. 둘 다, 엉뚱하고, 거침없고, 솔직함이 너무 닮
았다.
그때, 브니아가 뜬금없이 묻는다. “그런데, 수아는 잘
있을까?”
“응?”
“너도 알지? 내가 수아 좋아한 거. 나 수아한테 아무것
도 안 했는데, 그냥 거절당했잖아.. 갠 나에 대해 잘 알
지도 못했으면서.”
“수아가 잘 못 했네.”
“그렇지? 그렇게 생각하지 너도?”
“그런데 너도 수아에 대해서 잘 알았어? 그때, 그냥 마
을 여자애들이 수아에 대해 잘 모르면서, 좋아한 거 아
니야?”
“그러게. 나도 수아 잘 몰랐는데, 그냥 좋아했나 봐. 아
맞다.”
“뭐가?”
“잘 생겼잖아.”
브니아의 말에 라단은 사래가 들려 기침을 한다.
브니아가, 라단에게 물을 건네며 말한다. “물 좀 마셔.
왜 갑자기 기침을 하고 그래.”
“그럼, 그때 너네들은 수아가 그냥 잘 생겨서 좋아한
거야?”
“응. 그게 제일 중요한 이유 아니야?”
라단은 물을 마시다가, 다시 사래가 들려 기침을 한다.
라단은 수아가 잘생겼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지만, 그
당시 지파 여자 애 들이 수아가 잘 생겨 좋아했다는 말
에 어이가 없었던 것이다. 그러면서 라단은 그때, 라단
도 다른 친구들도 모두 보와 브니아에 대해, 그들이 마
데라에 가서 놀기만 하는 사람들로 오해하고, 무엇보다 마하살의 딸이라는 이유로 경계했었다. 라단은 사
울진의 아들이어도 사엘 때문에 친구가 되었는데, 왜
이들에게는 라단, 그 조차도, 사엘이 했던 것처럼 이들
에게 친구가 되어 주지 못했는지 생각한다. 이렇게 잠
시 이야기를 해 보기만 해도 이들도 분명 좋은 친구들
이 될 수 있었는데 말이다.
“수아는 잘 있겠지? 잘 있었으면 좋겠다. 나는 그때가
좋았어. 수아가 날 좋아하지 않아도, 그냥 수아를 보는
것만도 좋았어. 사실 나도 다른 남자 애들도 만나긴 했
지만. 나 좋다는 애들이 얼마나 많았는데. 아무튼 모든
것이 다 그때가 좋았어. 친구도 많았고. 지금은 친구도
없고, 자유도 없어. ”
브니아의 말을 들으니, 라단은 왜 브니아 처럼 당당하
게, 거침없이, 자유롭게 살지 못했을까 하는 생각도 든
다.
“넌 좀 아니지 않아?” 브니아가 묻는다.
“뭐가?”
“넌 오히려 지금 더 맘대로 하고 살지 않아? 그때는 사
울진님의 간섭과 기대가 좀 심하지 않았어?”
“글쎄. 그때는 아버지의 간섭과 기대에 맘대로 못했고,
지금은 이 자리의 간섭과 기대에 맘대로 못하는 거 같
아. 나는 언제, 그렇게 맘대로 하면서 살아 볼 수 있을
까?”
순간 라단은 그가 하는 말에 놀란다. 사엘 말고는 한
번도 그의 마음에 대해 털어놓은 적이 없었기 때문이
다. 브니아의 솔직함에 그도 솔직하게 털어놓게 되는
것 같다.
“맞아. 그럴 수 있을 거 같아. 그러니까, 나라도 여기서
꼭 나가게 해 줘. 난 왕비라는 자리에서 기대와 간섭
속에 못살아.”
“알았어. 그런데 사람들은 탈락시키는 정확한 이유를
알고 싶어 할 거야.”
“정확한 이유가 없는 게 나아.”
“왜?”
“왕실 혼사에 대해 네가 부정적으로 말이 많았다며? 그
래서 공정하게 한다고 왕비 선출 시험도 하게 된 거고.”
“맞아.”
“그냥. 변덕 부리는 것처럼 보여줘.”
“응?”
“그냥 나 혼사 하기 싫은데, 억지로 이렇게 라도 한 거
다. 그런데 막상 후보자도 보니 별로다. 어떡할 거냐.
그렇게 해.”
“그게 될까?”
“돼. 변덕과 생떼를 이길 사람이 어딨어. 너 아까 문제
내고 이야기 할 때, 엄청 단호하고 강하던데. 솔직히 그
문제도 왕비 선출에 낼 문제는 아니지 않았어?”
“그랬나? 내가 평소에 생각하던 것을 물어본 건데.”
“왕비를 선출하는데 낸 문제 라기보다는 우리 아빠나
사울진님을 겨냥한 문제 같았어. 그래도 아주 잘 말하
던데, 마지막에 왕이 낸 문제에 뭐 그렇게 말이 많냐고
도 그러고.”
“그러게.”
“그렇게 해. 내일도. 뭐라 반박할 수도 없게, 단오하고
강하게. 내가 맘에 안 들어 내 보냈다. 그러면 되지.”
라단은 그녀의 말에 또 피식 웃는다.
그런 라단을 보며 브니아가 확신에 찬 얼굴로 말한다.
“된다니까. 확실히.”
“알았어. 될 거 같긴 해.”
“된다니까. 그럼 내일 아침에 내가 말한 대로 그렇게
해.”
“응.”
브니아가 깔려 있는 이불에 가서 눕더니 말한다. “그럼
좀 잘까? 나 새벽부터 일어나서 너무 피곤해.”
그러고는 갑자기 몸을 일으키더니, 이불을 라단에게
건네며 말한다. “넌 저기서 이거 라도 깔고 자.”라고 말
하고는 다시 눕는다.
“불도 좀 끄고.”
브니아의 말에 라단은 촛불을 끈다. 그리고는 이불을
돌돌 말아 배게 삼아 방바닥에 눕는다. 왠지 오랜만에
느껴보는 편안함이고, 아무렇게나 방바닥에 대자로 누
우니 몸도 편안하다. 잠시 사엘의 생각을 놓치고 있었
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자, 그녀가 지금 어디 있을지 생
각한다.
아침 일찍 보연당에 하갈, 마하살, 사울진, 넬이 들어와
있다. 하갈은 사엘이 왕비로 통과했는지 궁금하고, 넬
은 그의 딸이 왕비로 통과했는지 궁금하다.
넬이 보연당으로 들어오는 라단을 반갑게 맞이하며
묻는다. “좋은 밤 보내셨습니까?”
넬의 물음에 라단은 언짢은 표정을 지으며, 의자에 가
앉는다.
사울진도 묻는다. “왕비님은 어떠신가요?”
라단은 여전히 언짢은 표정을 지으며 대답을 하지 않
는다.
사울진이 다시 묻는다. “무슨 일이라도 있으셨어요?”
라단은 여전히 아무 말이 없다.
하갈은 그런 라단을 보며, 그의 의중이 무엇인지 알아
내 보려 한다. 사엘을 만난 것을 숨기려고 하는 것인지
아니면 만나지 못해 언짢은 것인지 알 수가 없다.
잠시 후, 라단이 천천히 입을 연다. “오늘 아침 후보자
님은 왕궁에서 내 보냈습니다.”
“네?”
모두들 놀라 말을 잇지 못한다.
사울진이 말한다. “왜 그러셨습니까? 무슨 안 좋은 일
이라도 있으셨습니까? 밤새 왕비 처소에 계셨다 들었
는데.”
“어디서 그런 말을 들으셨습니까?” 라단이 사울진을
무섭게 노려보며 묻는다.
“아니. 그것이.”
“도대체 어디까지 사람들을 심어 놓으신 것입니까? 제
가 잠자면서도 아버지의 감시를 받아야 합니까? 그리
고 어제는 분명 왕비 처소에는 아무도 있지 말라 했는
데, 그것도 어기신 것입니까? 왕명을 어기고, 저와 왕
비 후보자가 머문 처소에 사람을 두셨습니까?”
라단이 소리를 지르며 말하자, 다들 아무 말이 없다.
잠시 후, 사울진이 말을 하려 하자, 라단이 막으며 말한
다. “됐습니다. 언제는 제 말을 들으셨습니까? 왕이라
고 앉혀 놓고는 맘대로 하시면서.”
사울진이 말한다. “그런 것이 아니라.”
“그런 것이 아니면, 제가 지금 왕으로 제가 하려는 대
로 하고 있다고 생각하세요?”
“물론입니다. 처소 일은, 걱정이 되어, 아비로서 안전
을 염려하여 그런 것입니다.”
“안전이라. 안전을 가장한 감시겠지요.”
“아닙니다. 정말 그런 것이 아닙니다.”
“그럼 다들 물리세요.”
“네?”
“아버지 사람들을 제 처소 그리고 왕비 처소 주변에서
물리시라고요. 저의 안전은 입이 무겁고, 무예가 뛰어
난 자들이 지킬 것입니다.”
“네?”
“하갈 수장님. 주변에 입이 무겁고, 믿음이 갈 만한 자
들을 궁으로 데려 오세요. 그들을 저의 왕실 집사로 임
명할 것입니다.”
하갈이, “알겠습니다.” 라고 대답하자, 사울진은, “왜
하갈 수장님이 데려온 자로 하십니까? 저 자는 믿을 십
니까? 더 위험한 자입니다.” 라고 말한다.
“아버지. 그러니까요. 제가 잘 못되면 하갈 수장님을
의심하시고 쳐내시면 되지 않습니까.”
사울진이 말한다. “그런 끔찍한 말씀을 왜?”
넬이 말한다. “아침부터 다들 왜 그러십니까? 아까 왕
비 후보님을 내 보내셨다는데, 그 이유부터 들어 보시
는 것이 어떻습니까?”
라단이 말한다. “어떻게 그런 자가 시험을 통과했는지
모르겠습니다. 내가 예의를 다 하느라, 처소에는 있었
지만, 도저히 안 돼서 내 보냈습니다.”
넬이 다시 묻는다. “그래도 뭐가 그리 마음에 안 드셨
는지 알려 주시면?”
“알려 주면요? 넬 부관이 뭐라도 마음에 들게 고쳐 보
시렵니까?”
“아닙니다. 제가 어떻게 그런 일을.”
사울진이 말한다. “그래도 절차를 걸쳐 통과한 후보님
이신대, 내 보내신 이유가 정확히 있어야, 모두 납득이
되지 않겠습니까.”
사울진의 말에 라단은 브니아 말대로, 생떼를 부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유가 어디 있습니까? 마지막 통
과는 제가 개인적으로 결정하는 것 아니 었습니까? 제
맘에 안 드는 것이 이유이지요. 후보자의 얼굴도 나 밖
에는 모르니, 원래 본인이 있던 곳으로 돌아가, 이전처
럼 살 테니, 쓸데없이 그 자가 누구인지도 궁금해하지
도 말고 찾지도 마세요.”
하갈은 어제 사엘이 돌아오지 않을 걸로 봐서는 지금
그녀는 이 왕궁 안에 있다고 확신한다.
“그럼 오늘은 두 번째로 성적이 좋았던 이를 만나 보실
건가요?” 라고 하갈이 묻자, 라단은, “네 그렇게 하겠
습니다. 그럼 왕비 선출 이야기는 그만하고, 오늘 해야
하는 일에 대해 이야기하죠.”라고 말한다.
하지만 사울진은, ”오늘 두 번째 후보님도 보시면, 그
분도 그냥 마음에 안 든다 내 보내실 건가요?”라고 묻
자, 라단의 얼굴이 화가 난 듯 일그러지며, “아직 만나
보지도 않았는데, 그걸 제가 어찌 알고 미리 결정합니
까. 그리고 이제 왕비선출 이야기는 그만하고, 오늘 해
야 할 이야기를 하자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렇게 왕비
선출이 궁금하시면 아버지는 회의는 그만하시고, 아버
지가 가셔서 결정하세요.” 라고 말하고는, 탁자 위에 놓
인 종이들로 고개를 돌린다.
사울진과 넬은 라단의 행동과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 것 같다. 넬의 딸들과는 혼사 하기 싫고, 혼사는 해
야 하는데, 왕비 선출이라고 해 놓고서는 저런 식으로
한 명 한 명 맘에 안 든 다며 이유 없는 핑계를 대며, 결
국은 혼사를 하지 않으려는 것이다. 터무니없는 변덕
과 생떼이나, 뭐라고 반반할 이유를 댈 수가 없다.
하갈은 라단의 행동이 무엇을 뜻하는지 짐작이 가지
않는다. 사엘을 만나고, 그녀를 내보내기 위해, 터무니
없이, 그냥 마음에 안 든다 하는 것인지, 아니면, 사엘
을 만나지 못했기 때문에 다음 후보자라도 만나보려고
하는지 알 수가 없다. 어느 것이든 섣불리 움직였다가
는 모든 이들이 위험할 수 있기 때문에 라단이 뭐라도
긴밀히 알려 줄 때까지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