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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Forty Seven 산들, 산들

by Hye Jang

보연당에 모였던 이들은 회의를 마치고, 라단에게 인

사를 한 후 보연당을 나온다. 하갈과 마하살, 사울진과

넬은 언제나 그렇듯 서로들 의견이 맞지 않아 불편한

얼굴이다. 하갈과 마하살은 인사도 없이 서둘러 자리

를 뜬다.


그들이 가자 넬이 사울진과 궁의 뜰을 걸으며, “사울진

님. 이제 라단왕께서도 왕의 자리를 잘 잡아가시는데,

선 왕으로 계시는 것도 괜찮지 않으십니까? 왕의 아버

지 이신대, 보연당에서 신하처럼 계시는 것은 보기 좋

지 않아요.”


“나는 내 아들이 왕이 되길 바랐습니다. 그리고 그가

왕이 되었고요. 그러기 위해 지금까지의 모든 일들을

한 것입니다. 아들의 친구들을 내쫗고, 그가 좋아하는

이들을 보냈습니다. 그 모든 책임과 원망은 내가 들을

것입니다. 그리고 나의 아들은 가장 높은 곳에서 가장

강하게 살 거예요. 내 아들만이 가장 높고 존귀한 자로,

이 나라의 주인으로 살 것입니다. 내가 선왕이 되면, 아

들 위에 있는 것인데, 나는 그러고 싶지 않아요. 그러니

신하든, 뭐든 상관없습니다. 아들을 지켜주는 곳에만

있으면 돼요.”


사울진의 말에 넬이 숙연해진다. 서로 자식들을 위한

다고 여기까지 왔는데, 오히려 그 자식들과의 사이는

더 멀어졌기 때문이다. 보와 브니아도, 가장 귀한 자들

로 만들어, 가장 힘이 세고 높은 자의 부인으로 만들어

주고 싶었는데, 오히려, 아무것도 없는 4지파 일 때,

그들은 밝고 환하게, 더 즐거이 살았던 것처럼 보이고,

지금은 넉넉하지만, 생기가 없어 보인다.


사울진과 넬이 호수에 비친 그들의 얼굴을 바라보며

어려울 때, 잘 살아 보자고 희망을 가지고 모여서, 밤새

그들의 꿈을 이야기하고 계획을 세우던 그 시절을 떠

올려 본다.


넬이 예전처럼 사울진의 어깨에 손을 얹으며, “오늘 마

데라나 같이 가시겠습니까? 답답한 궁을 나가 술이나

한잔 하는 게 어떠세요?"


“정말 그러고 싶습니다. 그런데 저는 오늘 머리가 아파

좀 쉬어야 할거 같아요."


“그런데 요즘 머리가 아프시다는 말씀을 자주 하십니

다. 의원은 뭐라고 하던가요?"


“별 문제는 없다고 했습니다. 좀 쉬면 나을 정도예요.”


저녁이 되자, 라단이 왕비 처소로 온다.


“오늘도 잘 보내셨어요?”


“네. 덕분에요. 하지만 저곳 산속에 계신 분들이 걱정

되어 마음이 편하지는 않아요 “


"네. 저도 그렇습니다.”


“이제 얼마 남지 않았어요. 조금만 힘을 내요.”


“그래도 정하님이 옆에 계시니, 오랜만에 제 곁이 든든

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렇게 생각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하갈님께서 데려온 자들을 왕실 집사로 뽑으려고 만

났으나, 맘에 들지 않는다고 돌려보냈습니다.”


“왜요? 혹시 저와 함께 온 자들이 아니었습니까?”


“일부러 그렇게 한 것입니다. 오늘 하갈님께서 데려온

자들은 그들이 아닙니다. 그분이 데려온 자들을 들이

면, 의심을 할 것 같아, 내 보냈고, 왕실 집사는 더 이상

필요 하지 않을 것 같다고 할 것입니다. 대신 왕실 처소

집사는 왕비의 본가에서 데려 오겠다고 하고, 그들을

왕궁으로 들일 생각입니다.”


“좋은 생각이세요. 그런데 오늘은 얼굴이 좀 어두워 보

이세요."


“네? 그렇게 보이나요?”


라단은 그날 카야의 말을 듣고 그곳까지 어떻게 가야

하는지 고민을 하고 있는 중이다. 보연당 그리고 처소

주변에 있는 무사들을 따돌리고 가야 하는데, 적당한

변명 거리도 없고, 방법도 없다. 얼굴이 어두워 보인다

는 정하의 말에 그녀에게 이를 말하자, 정하는 하갈 집

에 비밀 통로가 있다고 알려 준다.


“그곳에도 비밀통로가 있다고요?”


“네. 하라셀님께서 이 마을을 세우실 때 세 지파와 신

전이 연결된 지하 비밀 통로들을 만들어 놓으셨다고

들었어요. 그런데 아는 이도 없고 지도도 없고, 1 지파

대대로 구전으로 전해 들으셨다고 했어요.”


“아. 그래서 그날 그들이 그곳에 잇었던 거였군요.”


“네?”


라단은 그들이 떠났던 그때의 신전을 말하는 것이다.

그날은 너무 급하게 서두르느라, 왜 저들이 저곳으로

가는지 물어보지도 않았고, 그들이 떠난 자리의 흔적

을 없애고, 신전까지 불태우느라, 그 뒤로 생각하지도

않았던 일이었다.


“비밀 통로가 있는 줄은 몰랐습니다. 그래서 다들 하갈

님 댁을 어떻게 오는지 궁금하기도 했고, 사람들 눈에

띌까 걱정도 했었습니다."


“지금까지는 혹시 몰라, 알려드리지 않는 것인데, 카야

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신 것 보면, 알려 드리라고 하신

거 같아요.”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그 비밀 통로를 말할 일은 없

습니다."


"내일 오후에 저랑 마데라에 제 어머니 댁에 다녀오신

다고 하세요. 그리고 하갈님 댁으로 같이 가요. 우리가

그곳에 하루 머물고 왔다고 하면 될 것 같아요."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다음날 둘은 계획대로 오후에 마데라에 갔다가, 다 같

이 하갈집으로 간다. 따라온 신하들에게 혼례복이 맘

에 안 들어, 다시 가봉을 하러 간다고 하면서, 라단은

귀찮고 불편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신하들은 행여 라

단이 혼례식도 없던 일로 하자고 할까 봐, 서둘러 왕궁

으로 돌아가 사울진에게 알린다.


하갈집으로 가자, 하갈이 놀이방에 있는 비밀통로를

보여주며 길을 따라가다, 두 번째 길에서 왼쪽으로 가

면 리만투어의 제단 아래로 연결되어 있다고 알려 준

다. 혹시 돌아올 시간까지 오지 않으면, 길을 잃은 거라

생각할 테니, 어디 가지 말고 그 자리에 가만히 있으면

찾으러 간다고 까지 말해 준다.


라단은 신기한 듯 비밀통로 안으로 걸어 들어가고, 두

번째 갈림길에서 왼쪽으로 한참을 걸어 들어가니, 동

굴 입구가 가까워졌는지, 멀리서 바다 냄새와 파도 소

리가 들려온다. 동굴 입구에 다다르자, 그는 숨을 깊이

들이 마시고 내쉬어 본다. 바다 향이 온몸을 타고 들어

와, 가슴속이 시원하게 느껴진다. 그는 눈을 감고 잠시

파도 소리도 듣는다. 그동안 긴장 되고 지쳤던 몸이 느

슨하게 풀어지는 기분이 든다.


하갈 집에서의 모임도 없는 날인데, 카야는 사엘과 함

께 비밀통로 안을 걷는다.


"오늘은 모임이 없지 않아? 그런데 여긴 왜 왔어? 혹시

무슨 다른 소식이 생긴 거야?" 사엘이 순간 걱정이 되

어 다급하게 묻는다.


카야가 발걸음을 멈추고, "이곳으로 쭉 가시다가, 갈

림길이 나오면, 하갈님댁 방향으로 가지 마시고, 오른쪽길로 가 보세요?"


"그 길 쪽은 리만투어 제단 아래쪽 아니야?"


"네. 맞습니다."


“그런데 거긴 왜?”


"라단님께서 그곳에 계실 거예요?"


“라단이가? 그곳에?”


사엘은 카야의 대답을 듣기도 전에 재빨리 달려간다.

사엘이 달려가는 것이 보고는, 그녀가 더 이상 보이지

않자, 벽에 등을 기대고 바닥에 앉는다. 그녀가 올 때

까지 기다렸다고 같이 돌아가려는 것이다. 집도 아니

고, 이불에 누운 것도 아닌데 벽에 등을 기대니 편안하

다. 라단이 있다는 소리에 냉큼 달려가는 사엘의 뒷모

습을 떠올리자, 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하란님 보고 계세요. 당신의 어여쁜 딸 사엘이 사랑을

하고 있습니다. 이 둘이 이곳에 다시 와서, 그저 평범

하게 사랑하고, 소소한 삶을 사는 아내와 남편으로 살

면서, 그렇게 또 어여쁜 아이들을 낳으며, 그렇게 살도

록 해주세요. 나도 내 꿈에서는 당신과 평범하게 사랑

하며, 사는 꿈을 꿉니다.”


여람은 사람들에게 알리지 않고, 부모님 집까지 다녀

오는 길이다. 모든 계획들이 조심스러워, 마하살과 레

이를 만나지는 않았지만, 비밀통로의 집 문 앞에 한참

을 있다가, 편지를 두었다. 이제 곧 있으면, 마을로 돌

아가 부모님을 만날 수 있지만, 혹시 몰라 그리 한 것이

다.


돌아 나오는 길에. 멀리서 사엘이 뛰어가는 것을 보고,

“무슨 일이길래 저렇게 황급히 뛰어가지.' 라고 생각하

다가 혹시나 그 사이 무슨 일이 생겨 하갈집으로 급히

달려가는 길인가 걱정이 되어 재빨리 사엘을 따라 가

는데, 그녀는 하갈집이 아닌 다른 방향으로 뛰어간다.


인기척 소리가 들리자. 라단이 몸을 돌려 보니, 희미하

던 실루엣이 선명하게 보이며, 사엘이 숨을 헐떡이며

달려온다.


“라단아.”


사엘이 달려와 라단을 와락 껴안는다.


“사엘아. 왜 이렇게 뛰어와.”


사엘이 숨을 헐떡이며 말한다. “보고 싶어서.”


라단이 사엘을 끌어안고, 손으로 등을 천천히 쓸어내

려준다. 가쁘게 숨을 쉬던 사엘의 숨이 천천히 고르게

돌아온다.


라단은 사엘의 얼굴을 보며, “나도 너무 보고 싶었어. 하루가 정말 만년처럼 느껴져.”


“치. 또 무슨 만년까지 가. 너 왕 되고 말에 좀 허풍이

있다.”


“왕 이야기는 하지도 마. 나 이거 빨리 그만하고 싶어.

그리고.”


“그리고?”


“그냥 너랑 매일 같이 이렇게 있고 싶어.”


“나도.”


사엘과 라단이 서로 마주 보며 웃고는, 리만투어를 바

라보며 앉는다.


라단은 “춥지?”라고 묻고는 가져온 담요를 사엘의 어

깨에 덮어 준다.


“바람은 싸늘한데, 리만투어 바다 냄새, 공기 그리고

파도 소리가 너무 좋아.”


“우리 이렇게 앉아 있는 거 너무 오랜만이다. 그렇지?”


“응. 날마다 생각했어. 여기 이곳, 그리고 너.”


사엘이 라단을 바라보자 라단이 사엘의 어깨를 감싸

안으며, “나도. 너 생각하면서 버텼어. 아 이제 정말 얼

마 안 남았다."


“우리 그날이 오면 뭐부터 할까?”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았어서. 매일매일 무엇을 할까

생각하고 상상하고 그랬어. 너는 뭐 하고 싶어?”


“난 너랑 할 수 있는 거 다. 그리고 지금 할 수 있는 것

도 할래.”


“응?”


사엘이 라단의 입에 입을 맞추고는 라단을 바라보며

“왜? 이것도 나중에 해?”


“아니. 아니.”


“그런데 왜 이렇게 놀래? 처음도 아니면서. 혹시 그새

쑥스러워 진거야?”


사엘이 라단의 얼굴을 손으로 쓰다듬으며, 장난 섞인

말투로 말하자, 그는 사엘의 손을 잡으며, “그게 아니

고. 그러니까 난. “


사엘이 라단의 입을 다시 맞추자, 라단도 그녀를 끌어

안으며 입을 맞춘다. 라단이 사엘을 담요 위에 눕히고,

그녀의 몸에 그의 몸을 포갠다. 따뜻하고 보드라운 사

엘의 몸이 느껴진다. 사엘은 단단하지만 보드라운 라

단의 어깨를 감싸 안고 일어나, 그의 무릎에 앉는다.


멀리서 이를 지켜보던 여람이 순간 눈을 질끈 감는다.

한 번도 좋아한다고 말도 못 하며 아끼던 말이고, 그렇

게 함께 오래 있으면서도, 손 한 번도 잡아 보지 못했

고, 혹시나 그의 마음으로 그녀가 불편해할까 봐 마음

조차도 아꼈는데, 지금 저 둘은 그렇게 떨어져 있다가

만나서는 그 사이에 상상조차도 못했던 일들을 하고

있다. 여람은 질끈 감은 눈을 다시 뜬다. 달빛에 비친

사엘의 몸이 보인다. 달빛에 반사된 사엘의 몸이 아름

답다. 상상을 안 해 본건 아니지만, 상상했던 것보다 훨

씬 아름답게 보인다. 사엘의 얼굴도 지금까지 보지 못

했을 정도로 행복해 보인다.


그 둘의 발가벗은 몸, 서로를 쓰다듬고, 입을 맞추는 모

습을 보니 여람의 얼굴도 상기가 된다. 여람은 눈을 한

번 더 질끈 감고는 뒤돌아 선다. 가슴이 쿵쾅 거린다.

그들의 모습에 같이 상기되어 가슴이 쿵쾅 거리는 건

지, 알 수 없는 분노에 가슴이 쿵쾅 거리는 건지 헷갈린

다. 거칠게 나오는 숨을 가까스로 참으며 비밀 통로 안

으로 걸어 들어간다. 여람은, 한 번도 가져본 적도 없지

만, 뭔가 빼앗긴 기분이 든다.


“사엘아.”


“응?”


“나는 너와 함께 했던 매 순간을 늘 기억해. 그리고 지

금 너의 이 모습도. 달빛에 비친 너의 얼굴, 나의 얼굴

을 쓰다듬는 너의 손길, 그리고 내 몸 안에 있는 너, 모

두 다.”


라단의 몸이 다시 움직이자 사엘은 그녀의 몸이 허공

에 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구름에 가려져 있던

달빛이 다시 비치자, 사엘이 환한 달빛에 눈을 감는다.

허공에 떠 있는 느낌도 사라지고, 눈을 뜨자, 라단이 사

엘을 쳐다보고 있다.


라단이 사엘의 눈과, 코, 볼, 입술에 입을 맞춘다.


“너도 그랬어?”


사엘이 묻자, "뭘?”


“허공에 떠 있다가 어두웠다가 다시 밝아졌다가, 뭐 그

런 거?”


“아마도. 그런데 난 다른 거에 더 집중하느라고.”


“뭘?”


“너."


라단과 사엘이 서로 안고는 달을 바라보며 눕는다.


“사엘아.“


“응.”


“너는 자식도 낳고 싶어?”


“자식? 아가들 말이야?”


“응.”


“생각 안 해 봤는데. 넌 지금 그런 것도 생각해?”


“난 늘 생각했지. 너랑 언제 혼인할까, 어떻게 살까, 어

디서 살까, 방은 어떻게 꾸밀까. 자식을 낳는다면 어떨

까. 그런 생각들을 했지."


“언제부터 그런 생각을 한 거야?”


“글쎄.. 처음 만난 날부터 라고 하면 너무 이상한가?”


“말하지 그랬어?”


“무슨 말? 보자마자 나 너랑 살래? 그렇게? 그러면 네

가 그래 했을까? 미친놈이라며 다시는 만나주지도 않

았을걸.”


“모르지 그때부터 같이 살았을지.”


“정말?”


사엘이 고개를 돌려 라단을 보며, “괜찮아 지금부터 평

생 같이 살면 되지.”


“우리가 첫 아이를 낳는다면, 여자 아이든 남자 아이든

상관없이 이름을 산들이라 지으면 어때?”


“산들?”


“응. 산들산들 부는 바람처럼, 자유롭게 어디든 날아다

니며 살라고, 머물고 싶으면 머물고, 또 불고 싶으면 불

고, 누군가에는 시원함이 되고, 누군가에게는 따스함

이 되면서 말이야.”


“좋아. 산들. 너무 이쁜 이름이야. 나 지금 만들래.”


“응?”


“나 지금 우리 산들이 만들래.”


사엘이 라단의 몸 위로 올라가자, 그는 웃으며, "잠깐

만. 잠깐만. 만들자 해서 그렇게 막 만들어지는 게 아니

야.”


사엘과 라단이 다시 서로 몸을 뒹굴며 웃는다. 리만투

어에 까지 그들의 웃음소리가 퍼지는 듯하다.


며칠 후, 혼인식이 있는 이른 새벽, 사엘과 함께 있던

이들이 제사장이 만들어 놓은 해안 절벽의 제단에 모

여 서 있다. 안개가 자욱한 깜깜한 밤이다. 그들이 머무

는 산속도, 리만투어도 안개가 자욱하여 보이지 않는

다. 안개 낀 밤바다가 위험해 보일 수도 있지만 이들에

게는 이런 날씨도 하늘이 도우는 듯한 기분이 든다.


수아가 사엘을 보며, “날씨는 나쁘지 않은 거 같아.”


“안개는 있지만, 바람도 없고, 파도 소리도 잔잔해. 바

다를 건너기에는 무리가 없을 거 같아.”


여람이 사엘에게 묻는다. “어떻게 그런 생각을 했어?”


사엘이 여람을 보고, 옅은 미소를 지으며 말한다. “너

랑 이러고 놀았던 때가 생각났어서.”


수아가 여람의 어깨를 툭치며 말한다. “그러니까 이번

엔 정신 똑바로 챙기고, 빠지지도 말고.”


여람이 수아를 보며 어깨를 으쓱하며 말한다. “난 그래

도 몇 번은 해봤지만, 넌 처음이라.”


수아도 어깨를 으쓱하며 말한다. “그래도 내가 너 보단

늘 뭐든 빨리 배우고 잘하지 않을까?”


밧세는 오늘도 언제나 그렇듯, 수아와 여람의 대화를

들으며 사엘을 보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그런 밧세를 보고 수아가 말한다. “왜 그래? 내 말이 맞

지 않아?”


여람이 말한다. “밧세도 네가 그러는 게 하도 질려서

저러는 거지.”


밧세는 수아와 여람의 어깨에 팔동무를 하며 말한다.

“너네 둘 다 똑같아. 언제나 꾸준히. 오늘도, 지금도 그

렇고. 그러니까 일단 저 바다부터 건너자.”


밧세의 말에 수아와 여람이 갑자기 비장한 표정으로

바다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인다.


수아가 사엘을 보며 말한다. “이제 집에 가자.”


그들은 라단의 혼인식에 맞추어 마을로 돌아갈 계획을

세웠고 산길이 아닌 바닷길을 건너가자고 사엘이 제

안했다.


수아는 서 있는 친구들과 카야의 병사들을 향해 외친

다. “우리는 오늘 집으로 돌아갈 것입니다. 가는 길에

위험도 있을 수 있고, 뜻하지 않은 일도 있을 수 있습니

다. 충돌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마을을

지키고, 우리들 각자를 지켜야 합니다. 그리고 오늘 집

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병사들이 소리를 지르는 대신, 들고 있는 나무판을 손

으로 두드리자, 툭 툭 툭, 연주를 하는 악기처럼 소리가

밤안갯속에 울려 퍼진다.


아비갈 대신 여람은 그녀의 무사들을 보며 말한다. “우

리는 새로운 세상, 새로운 집으로 가는 것입니다. 산속

에서 숨어 사는 것이 아닌, 이제 마을에서.” 그는 잠시

말을 멈춘다. 그동안 이들에게 이런 이야기들을 나누

며 여기까지 왔지만, 과연 이 세상이 이들에게 새로운

세상을 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여람이

말을 멈추자, 그의 속마음을 읽고 대답이라도 하듯 나

무판을 손으로 두두리며 나지막이 함께 말한다. “우리

는 새로운 집으로 가는 것입니다.” 이들은 새로운 세상

보다, 그들을 구해 주고 지금까지 함께 해온 아비갈을

따라나선 것이다. 어느 곳에서든 아비갈과 있으면 된

다고 생각하는 이들이다.


사엘은 그녀가 만들어 놓은 제단 앞에 앉는다. 그녀의

귀에, 그들의 바람과 희망이 들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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