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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이로스엘 Jun 05. 2022

노는 것처럼 공부하기

초등 한국어 학급 이야기

 나는 한국어를 처음 배우는 다문화 1학년과 2학년 초등학생들에게 매일 한국어를 가르치고 있다. 1, 2학년 꼬맹이들이다 보니 아무래도 엉덩이가 가볍고 집중력이 짧은 편이다. 다른 글에서도 썼지만 여러 민원 사항(물 마시고 싶다, 화장실 가고 싶다, 누가 날 때렸다, 놀렸다, 여기저기 아프다, 다쳤다 등)이 발생하기도 한다.


  대학교 어학당에서 수업을 할 때는 성인 학습자들을 대상으로 딱 짜인 커리큘럼대로 수업을 하니 수업 준비만 잘하면 별다른 문제가 발생하지 않았다. 물론 학생들이 내용을 어려워해서 특별히 수업이 힘든 날이 있긴 했지만 그것조차도 어느 정도 예측 가능하기 때문에 크게 당황한다거나 어려움을 느낄 만한 일은 아니었다.


  지금 만나고 있는 학생들은 그야말로 '어린이 학습자'다. 아무리 미리 계획을 세운들 여러 변수로 인해 뜻대로 되지 않을 때가 많을 뿐더러 똑같은 한국어의 자모를 가르친다고 하더라도 성인 학습자들과는 다른 방식과 다른 마인드로 접근해야 한다.




  나는 10년 이상 대학교 어학당에서만 수업을 하다 작년에 처음으로 초등학생들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터득하게 된 것은 아이들은(특히 저학년 아이들은) 학습에 놀이를 접목해야 한다는 것이다. 즉 처음부터 끝까지 진지하게 학습 모드로만 접근하면 금세 지치고 싫증을 내기 때문에 노는 것처럼 즐기면서 공부를 하도록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사실상 학습을 시키고 있는 것인데 아이들은 놀이로 착각하게 하는 것. 이 과정을 아이들이 진정한 놀이로 의식할 때 학습 효과는 더욱 커진다. 이것이 놀이가 아니라 사실은 공부라는 것을 눈치채게 되면, 아니 공부라고 확 느껴지는 순간 아이들은 금방 싫증을 내거나 자세가 흐트러진다.




  1, 2학년들은 아직 소근육이 제대로 발달하지 않았기 때문에 쓰는 것 자체를 많이 힘들어한다. 물론 이것도 아이들마다 개인 차이가 있기는 하다. 그런데 특히 조금만 쓰면 손이 아프다고 칭얼대는 아이들이 있다. 하지만 힘들다고 안 할 수는 없는 것이고 자꾸만 쓰는 것에 익숙해져야 한다. 특히 외국어로서 한국어를 처음 배우는 저학년 학생들에게는 더욱 쓰기 연습이 중요하다. 한글의 모양 자체도 생소할뿐더러 모음과 자음을 쓰는 순서도 모국어와 많이 다른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한국어는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위에서 아래로 글자를 써야 하는데 아랍 학생들은 한글 자모를 쓸 때 자꾸만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아래에서 위로 쓴다. 이는 모국어인 아랍어의 영향 때문일 것이다.


  쓰기 연습을 할 때 계속 공책이나 연습지에 연필로만 쓰게 하면 아이들은 무척 힘들어한다. 그래서 나는 공책에 연필로 쓰기를 기본으로 하되 칠판에 나와서 분필로 쓰기, 작은 미니 칠판에 보드마카로 쓰기 등 다양한 방식으로 쓰기 연습을 시킨다.




  아이들은 특히 칠판에 나와 쓰는 것을 무척 좋아한다. 같은 받아쓰기를 하더라도 칠판에 나와서 쓰게 하면 재미있게 한다. 이때도 마치 퀴즈처럼 진행하면 자기가 맞는 글자나 단어를 썼을 때 비명까지 질러가면서 좋아한다. 물론 이런 분위기를 만들려면 교사의 노력이 필요하다. 밋밋하게 단어나 불러주고 쓰라고 하면 아무리 칠판에 쓰는 거라도 재미가 없을 것이다. 아이들의 눈을 맞추고 목소리를 밝게 띄우며 달뜬 분위기를 연출(?)해야 하는 것이다. 연출이라는 것이 티 나지 않게 말이다.


쉬는 시간에 칠판에 낙서하며 노는 아이들


  아이들에게 단어 읽기, 단어 외우기 연습을 할 때도 PPT에 사진을 먼저 보여 주고 글자를 보여 주는데 그냥 보여주고 기계적으로 따라 읽게 하면 금방 흥미가 사라져 버린다. 그래서 사진과 함께 글자를 3초 정도만 보여주고 아이들이 알아맞히게 한다. 이때 자기가 먼저 맞히려고 엄청난 경쟁이 일어난다. 그 짧은 몇 초 동안 단어를 읽어내고 기억하려고 초집중을 한다. 발개진 얼굴로 열중하는 모습들이 얼마나 귀여운지 모른다.


  아이들과 자주 하는 것 중에 빙고도 빼먹을 수 없다. 빙고는 읽기, 쓰기, 듣기, 말하기를 총체적으로 연습할 수 있는 매우 좋은 놀이이다.


  그날 중점적으로 연습하거나 배운 단어들을 칠판에 죽 쓰거나 PPT로 띄워 놓고 아이들에게 빙고 용지에 쓰고 싶은 단어들을 쓰게 한다. 다 쓰고 나면 가위, 바위, 보로 순서를 정해 돌아가면서 단어를 읽게 한다. 한 친구가 읽으면 다른 친구들은 자기 종이에 그 단어가 있는지 찾아야 한다. 나는 9칸짜리 빙고를 하면 그 9개를 다 지울 때까지 게임을 진행한다. 몇 줄만 완성하면 끝나는 기존 빙고와의 차이점이다.



  아이들은 자기 종이의 단어들이 하나하나 지워질 때마다 환호한다. 가끔 단어를 듣고도 막상 자기 종이에서 그 단어를 못 찾는 경우도 있는데, 그럴 때 나는 내가 바로 찾아주지 않고 다른 학생들이 도움을 주도록 시킨다. 그러는 과정에서 한 번이라도 더 읽는 연습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또한 대부분의 아이들은 자기가 선생님처럼 다른 아이들을 가르쳐 주고 도와주는 것을 좋아한다.


  아이들의 성향을 간파하여 그것을 잘 이용하면 놀라운 학습 효과도 거둘 수 있고, 수업 분위기도 활기차게 만들 수 있다.


  다만 주의할 것은 지나친 경쟁 분위기로 흘러가지 않도록 할 것, 실력 차이가 나는 학생들이 함께 있을 경우 실력이 부족한 학생도 즐겁게 참여할 수 있도록 세심하게 신경을 써야 한다는 것이다.




  누군가를 가르칠 때 제일 중요한 것은 티칭 실력도 실력이지만 관찰력이 뛰어나야 한다는 것을 느낀다. 학습자의 성향이나 학습적 정서적 상태 등을 정확히 파악해야 효과적인 학습이 이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언어와 문화가 다른 다문화 어린 학습자들의 경우는 더욱 그렇다.


  결국 필요한 것은 교사의 노력과 관심이다. 학생들이 항상 고정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새로운 학생들을 만날 때마다 면밀히 관찰하여 다르게 접근해야 한다.


  솔직히 가끔씩 이런 과정들이 부담스럽고 피곤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하지만 내가 가르치는 학생들이 밝은 모습으로 배우고, 한국어 실력도 쑥쑥 자라는 것을 보면 그 힘듦을 잊어버리게 된다. 그 망각 덕분(?)에 이렇게 이 일을 계속 하고 있는 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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