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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햇별 Oct 21. 2023

삼백일 그 후 삼주

300일 그림묵상 프로젝트를 끝내고 가을날 열었던 3주간의 전시



 꿈결같은 시간이 흘렀다. 

 처음 이 일을 해봐야겠다고 마음먹었던 날인 9월 17일은 일 년도 더 전의 일이 되었고 새벽에 조금 일찍 일어나는 수고를 반복하면서 성경을 통해 아이디어를 얻어 그림을 그렸던 일이 한 덩어리의 추억이 되어간다. 결코 짧지 않은 300일 간의 작업이 나에게 남긴 것은 무엇이고 이 작업을 통해 타인에게 흘러간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본다. 

 이 작업을 통해 나라는 인간의 본질이나 나와 신과의 소통의 깊이가 드라마틱하게 발전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나는 여전히 학교와 가정에서 고군분투하며 크고 작은 일에 다양한 방식으로(가끔은 과격하게) 희로애락을 표현하며 살고 있고 신을 믿는 사람이 이루고 싶은 내적 성화의 과정이 내 속에서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는지 늘 회의하며 근근히 지내고 있다.

 물론 그림묵상과 전시의 추억으로 얻었던 충만함과 기쁨은 마음 깊은 곳에 저장되었다가 감사함이라는 모습으로 삶의 길목에 문득 문득 찾아올 것이라 기대한다.


  나의 그림 묵상 마라톤과 함께 달렸던 세 친구(소중한 남편 C, 큐레이터님 P, 큐레이터님의 소중한 남편 J)들의 댓글을 그림과 함께 정리하면서 지난 작업 과정을 복기할 수 있었다. 그림을 조형적인 측면에서 바라보기보다 영적인 측면에서 바라보는 시야를 얻는 데 도움이 되었으며 우리들의 사고와 실천, 소통 등이 시간과 결합된 결과물이 곧 작품이었다는 깨달음을 얻었다. 협업해준 세 친구들은 지난 9월 16일부터 10월 6일까지 3주간 진행했던 전시에도 힘을 보태거나 공동 작업을 하면서 전시의 완성도를 높이는데 큰 도움을 주었다.

 과거 개인적이나 그룹전, 아트페어 등을 준비하는 과정에 작업 자체를 협업하는 일이 거의 없었던지라 이렇게 다른 사람들과 함께하는 경험이 좋은 의미에서 새로웠다.




 

 큐레이터님은 300일 프로젝트를 구상, 제안하시고 전시를 기획하신 분이다. 4인의 묵상글을 매일 수집하고 요약한 내용을 2시간의 영상으로 제작하셨고 이 영상 작품은 전시장 초입에 설치한 TV에서 상영되었다. 많은 작품들을 효과적으로 설치하기 위해 달력같은 배치 방식을 고안하여 커팅 시트지 작업을 함으로써 작품들이 가진 장점을 끌어올리셨다. 작업과 전시 준비 과정에서 나의 심신이 지칠 때 폭풍 격려로 힘을 잔뜩 불어넣어주신 분이기도 하다.


 큐레이터님의 짝꿍 J님은 '언어의 마술사'라는 별칭을 붙여드려야 될 정도로 재치있는 언어를 구사하신다. 댓글 속에서 이 분의 반짝이는 재능을 발견할 수 있으며 작품 전시를 위한 협의를 할 때 자신의 일처럼 함께 생각해주시고 도움이 되는 아이디어를 던져주시곤 했다.


 

 나의 짝꿍 C는 한결같은 성실함으로 매일 출근전 장문의 댓글을 남기며 작업 과정을 함께 달려준 러닝메이트다. 전시를 설치하는 날 아침부터 저녁까지 같이 있어주었고 큐레이터님의 영상을 송출할 TV를 미리 구입하고 전시 시작과 끝에 운반해주는 수고를 했다. 전시 기간 3주동안 여러 손님들을 같이 맞이하며 작품 설명까지 열정적으로 해 준 전시 매니저였다.


 전시를 위해 준비했던 작은 캔버스화 작품들이 있었는데 15* 15 센티의 그림묵상 작품 중 7개를 골라 작업했고 전시장 옆 카페에 걸었다. 펜, 색연필, 먹물, 수채화 등의 재료로 제작했던 종이 작품과는 또 다른 아크릴화의 선명함이 누군가에게는 더 직관적으로 다가가기도 했다.


왼쪽부터 <선물>, <약속>, <은사>
왼쪽부터 <만나>, <단비>


왼쪽부터 <비밀>, <기쁨>


 300일의 시간동안 내가 믿는 신과의 보다 내밀한 소통의 물꼬를 틀 수 있었으며 오롯이 나의 힘이 아닌 영적인 영감이 작품의 원천이 될 수 있음을 경험했다. 전시 준비와 진행 모든 과정에서 여러 고마운 사람들을 만나고 대화하며 작품을 통해 공감하는 기쁨을 누렸다. 나의 그림들을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든 아니든 나이가 많든 적든 각자의 마음의 눈으로 볼 수 있다는 점에서 그림이 가진 힘이 큼을 느꼈다.


 함께 독서모임을 하는 지인이 방명록에 남긴 글이 신선하게 읽혔던 이유는 신을 믿는다는 것과 성경에 관한 그림을 그린다는 행위가 신을 모르는 이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갈 수 있는지를 엿보게 했기 때문이다.



' 300일의 묵상과 마음을 한결같이 유지하는 그 과정 자체가 하나의 예술이네요. 성경 말씀을 잘 모르지만 끊임없이 다른 이에게 뭔가를 건네고 신으로부터 에너지를 받고 그 힘을 모아 더 큰 자신이 되어가는 스토리를 읽었습니다.'



내 인생에서 작업을 통해 누린 큰 기쁨의 페이지가 또 한 장 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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