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계
세상의 지식을 독창적으로 통합한 지혜로운 사람이 풍기는 교양미, 세상의 지식을 선천적인 둔감력으로 단순화시킨 순수한 사람이 풍기는 백치미. 이 둘은 대척점에 있는 듯 보이나 공통된 특성이 있다. 의식이 비교적 통합되어 있다는 것이다. 비록 그 방식이 섬세함과 둔감함이라는 정반대의 능력에서 비롯된 것일지언정.
지혜를 추구하는 자라면 배우자를 선택할 때 교양미를 갖춘 사람을 선택했다면 최선의 선택을 한 것이다. 그를 찾지 못했다면 차선으로 정반대에 위치해 있다고 여겨지는 백치미를 갖춘 사람을 선택하는 것이 좋다.
지혜를 추구하는 사람은 교양미를 갖춘 사람도 아니고 백치미를 갖춘 사람도 아닌 어중간한 사람, 즉 대중적인 특성을 지닌 사람을 배우자로 선택할 바에야 차라리 혼자만의 고독을 즐기는 인생을 살아가는 것이 낫다. 지혜를 추구하는 사람이 그런 유형의 배우자를 만나 일상을 살아가다 보면 날마다 정신적으로 학대받는 느낌을 받아야 하며, 이로 말미암아 점점 지쳐가는 자기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또한 점점 다수의 우둔함 속으로 편입되어 가는 자기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나아가 고결한 사람을 선망어린 시선으로 바라보다 못해 그들을 애써 냉담한 태도로 대하는, 질투의 화신이 되어 가는 자기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마치 대량으로 복사한 것처럼 보이는 어중간한 사람들의 속물근성은 놀라울 정도로 뿌리깊다. 마치 집단적으로 정신병에 걸려 있는 것처럼. ‘아는 것이 병이다’라는 격언에서 ‘아는 것’이란 세간의 어설픈 지식을 뜻하는 것이다. 왜 아는 것은 병이 되는가? 어설픈 지식은 자기 자신의 정신을 분열시켜 산만하게 만들고, 근거 없는 지식으로 타인에게 상징폭력을 가함으로써 민폐를 끼치게 만든다. 어설픈 지식을 갖춘 사람은 실은 아무것도 모르지만 마치 자기가 뭐라도 아는 듯이 느껴지기 때문에 그 허영심으로 말미암아 멋도 모르고 자기보다 더 지혜로운 사람에게 궤변를 늘어놓기 일쑤이다. 물론 여기서 ‘안다’고 함은 가령 사내정치와 같은 세간의 저차원적인 처세술 따위를 일컫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