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일
혐오감은 혐오의 대상에 대한 끊임없는 관념의 재구성으로 인해 엄청난 에너지가 소모된다. 사람의 에너지는 한정되어 있다. 화내는 것에도, 즐거운 것에도 똑같이 에너지가 들어간다. 화내는 것에 에너지를 쓴다면 그만큼 즐거움을 유지하는 데 써야할 에너지가 줄어들게 된다. 그러므로 화내는 에너지마저 아껴서 그 에너지만큼을 즐거움을 유지하는 데 써야 한다. 그래야 궁극적인 목적에 걸맞는 인생을 살아갈 수 있다.
한편 혐오의 대상과 혐오감이라는 감정이 어디서부터 비롯되는가는 중요한 문제이다. 혐오의 원인을 알아야 그 대책을 세울 수 있는 것 아니겠는가. 나에게 혐오감을 불러일으키는 혐오의 대상은 무엇인가? 사람들이 ‘혐오스럽다’고 표현할 때 혐오의 대상은 보통 ‘타자의 형상’을 뜻한다. 즉 자기의 의식상에 떠오른 ‘타자의 형상’을 두고 혐오를 표현하는 것이다. 자기의 의식이 ‘타자의 형상’을 관념으로 재구성한 것을 보고 있다는 뜻인데, 그렇다면 ‘타자의 형상’은 타자의 모습이 아닌 자기 자신의 모습을 반영하고 있는 것 아니겠는가. 어떤 사람이 ‘타자의 형상’을 보고 혐오를 느꼈다면 이는 곧 ‘그의 형상에 비쳐진 자기 자신의 모습’을 보고 혐오를 느낀 것이다. 요컨대 타자혐오는 그 논리적 귀결로 자기혐오가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타자의 형상’은 엄밀히 따져봤을 때 ‘나’이자 자기 의식의 아바타라(Avatara)에 불과하기에.
그러므로 에너지를 절감하고 생산적으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타자혐오, 즉 자기혐오를 그만두어야 한다. 자기혐오 대신 자기애를 키운다면 그 논리적 귀결로 타자에 대한 사랑의 능력이 키워지는 것이다. 사랑의 능력을 통해 에너지를 절감한다면 그 잉여에너지를 바탕으로 인생을 보다 더 생산적으로 경영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우리의 인생을 돌이켜봤을 때 불필요하게 낭비되는 에너지가 얼마나 많던가. 낭비되는 막대한 에너지를 온전히 활용할 수 있다고 상상해보라. 이를 바탕으로 자기의 잠재력을 온전히 발현시켜 끊임없이 성장하는 자기의 모습을 상상해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