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민원응대스킬

해체

by Edit Sage

페르소나의 작용 없이 적나라하게 그림자를 주고 받는 인간관계의 노골성을 배우기에는 법원을 방문하는 민원인만 한 대상이 없다. 대부분의 인간관계는 사회적 체면 때문에 페르소나를 쓴 채 그 속에 그림자를 숨겨 은폐된 형식으로 그림자 공격을 주고 받기에 그것을 간파하는 데 많은 에너지를 소모해야 한다. 그러나 법원에 발을 디디는 민원인은 이미 페르소나가 상당 부분 벗겨진 채 들어오는 것이기 때문에 그림자가 상대적으로 명백히 드러난다. 당신은 한 번이라도 법원을 방문한 경험이 있는가? 경매계가 아닌 이상 이런 경험을 하는 사람은 좀처럼 드물 것이다. 이는 법원의 문턱을 넘는다는 것이 일상의 사소한 분쟁 수준을 아득히 뛰어넘는다는 것을 방증한다. 법원을 찾는 사람들의 마음 상태는 이미 황폐해질 대로 황폐해져 있다. 그렇기에 그들은 페르소나를 쓸 여유조차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한번 살펴보자. 이들로부터 배울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법원에서는 은폐된 형식의 그림자 작용이 표면화되기 때문에 일상의 페르소나 밑에서 작용하고 있는 그림자가 어떤 식으로 움직이는지를 여실히 볼 수 있다. 법원의 실무자는 민원인을 응대할 때 우선 얕보여서는 안 된다. 반대로 무례해서도 안 된다. 얕보이지 않으면서도 무례하지 않는 균형잡힌 태도로 민원인을 상대해야 한다. 얕보이는 순간 민원인의 마음속에 우월감이라는 허상을 심어 주어 민원인은 흉폭한 야수가 되기 때문이다. 무례하게 대하는 순간 민원인의 마음 속에 도사리고 있는 열등감이라는 허상을 자극하여 민원인은, 약자로 여겨지는 자가 강자로 여겨지는 자에게 대응하는 특유의 방식, 사소한 흠을 이용한 명분싸움을 걸어오기 때문이다. 이로써 우리는 페르소나가 벗겨진 그림자가 어떤 메커니즘으로 작용하는지를 알 수 있다. 그 정체는 바로 약육강식의 동물의 세계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유추할 수 있다. 사람들을 상대할 때 인간관계를 어떻게 설정해야 하는지를.

keyword
이전 02화신화의 탄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