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에게 꼭 필요한 시간
호주의 정식 발표 수업은 프렙부터 시작된다. 킨디(유치원)에 따라서 입학 전 경험해 보는 경우도 있지만 아이들이 제대로 이해를 하고 프레젠테이션을 진행해 나가기 시작하려면 적어도 프렙, 즉 만 5-6세는 되어야 스스로 발표 방향을 끌어나갈 수 있다.
1.
딸아이의 학교는 매 학기마다 발표수업을 하였다. 학교에 간 지 6주째, 첫 발표수업이 있었다. 그 과제는 바로 'Show & Share'라고 불리는 발표과제였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 하나를 정해 친구들에게 보여주며 이야기를 하는 게 주제였다.
아이가 들고 온 종이를 몇 번이고 읽고 또 읽어가며 어떤 주제로 어떻게 이야기하면 좋을까 하루 종일 아이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었다. 내 딸아이는 좋아하는 게 두 가지로 나뉜다. 엄마가 좋아하면서 자신도 좋아하는 것, 엄마는 안 좋아하지만 자신은 좋아하는 것. 이 둘 중에서 무엇을 선택할지 무척이나 고민하는 게 느껴졌다.
결국 아이는 엄마와 자신이 모두 좋아하는 것을 선택하였다. 바로 요즘 제일 좋아하는 책을 친구들에게 소개해주기로 결정한 것이었다. 최근 유튜브 채널을 통해서 미셀 오바마가 아이들에게 동화책 읽어주는 영상을 몇 차례 보았었다. 그런데 미셀이 너무 재미있고 정감 있게 읽어주고, 아이들의 마음을 알고 위트 있는 이야기들을 하는 것을 보고는 몇 번을 되돌려 봤는지 모르겠다. 그래서 미셀 전기를 하나 사서 읽었었는데 그 게 딸아이가 요즘 제일 좋아하는 책이자 좋아하는 사람이 되었다. 롤모델이라고까지 하기엔 거창하지만 여하튼 그렇게 되었다.
그럼 그 책을 어떻게 아이들에게 읽어주면 좋을까? 고민 끝에 아이가 늘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했기 때문에 그림을 그려 보여주는 것을 선택하였다. 책에 나온 내용 중 꼭 친구들에게 이야기하고 싶은 부부들만 그림으로 그리고, 그 그림을 보면서 아이들에게 이야기를 하면 외울 필요도 없이 쉽게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루 종일 대략 4시간 정도를 앉은자리에서 꼼짝하지 않고 그림들을 그려냈다. 그리고는 자신만의 책을 완성했다. 제법 성취감이 있었다. 그리고는 몇 번을 엄마 아빠 앞에서 연습을 해보고 자기 전 침대에서도 연습을 한 후에 잠이 들었다.
며칠 후 드디어 발표날이 되었고 아이가 자신이 만들 책을 들고 학교를 다녀왔다. 나는 아이를 보자마자 오늘 학교에서 어떻게 했는지 묻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워낙 미셀을 다 알고 있고, 말도 많고 수다가 많은 아이이기 때문에 잘했으리라 생각했다. 아이들 앞에서 발표를 하고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공유한다는 게 참 좋은 교육인 것 같다. 그것을 위해 아이는 며칠을 들떠 있었기 때문이다. 다음 날 학부모 상담이 있어서 학교에 갔는데 담임선생님께서 너무 많은 칭찬을 해 주셨다. 발표수업을 잘했냈다고 하셨고, 그 책은 한 번 팔아보는 게 어떻겠냐며 농담을 하실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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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두 번째 학기에 받은 주제는 휴가에 관한 것이었다. 자신이 다녀왔던 곳에 대해서 발표를 하는데 대신에 추가된 요구 사항이 있었다. 당시에 아이들이 날씨, 날짜, 요일 그리고 계절 등 시간 개념에 대해서 배우고 있었던 터라 다녀왔던 휴가지의 날씨, 날짜 그리고 온도 등을 계절과 함께 이야기해야 하는 것이었다. 나와 딸아이는 온도계도 그림으로 그리고 옷차림이나 신발, 우리가 했던 액티비티들을 기준으로 날씨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갔다. 아이의 숙제가 아니라 거의 엄마 숙제 아니냐며 타박을 하던 남편의 핀잔에도 불구하고 딸아이는 학교 입학 후 처음으로 교장선생님께 조회시간에 상을 받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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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세 번째 텀에 받은 발표 주제는 바로 자신이 좋아하는 음식에 관한 것이었다. 발표 시에 꼭 들어가야 하는 내용은 그 음식에 들어가는 재료들이 어디서 어떻게 자라서 어떤 과정을 통해 사람이 먹을 수 있게 되는지였다. 커다란 전지에 각 채소나 고기들이 어떠한 과정을 거쳐서 마켓까지 오는지에 관한 그림을 그렸다. 그런 후 자신이 선택한 음식, 초밥을 만들기 위해서 점토로 초밥을 빗기 시작했다. 물론 나와 남편이 함께 도왔다. 이 과정을 통해 아이들은 식물과 동물의 생애주기, 유통과정 그리고 마켓을 거쳐 우리의 식탁에 오기까지의 모든 스텝들을 배우는 유익한 시간이 되었다. 책으로 배우는 것보다도 훨씬 효과적인 교육방법이라고 생각했다.
실제로 나는 늘 발표수업을 딸아이와 준비하면서 둘이 이런저런 대화도 많이 나누고, 아이의 생각도 직접 들어보며, 학교에서는 현재 무엇을 배우고 있는지, 진도를 얼마나 이해를 하고 따라가고 있는지 직접 확인할 수 있는 좋은 시간이 되었다. 엄마의 설명과 선생님의 설명이 같을 때에 아이가 느끼는 희열과, 다를 때의 호기심이 아이의 창의력과 인지력을 자극시킨다고 생각한다.
모든 과제를 만드는 과정은 함께 하였으나, 결국 발표 당일에는 아이가 스스로 해내야만 했다. 하지만 발표를 해내는 것이 이미 아이에게는 쉬운 일이었다. 이미 우리가 같이 나누었던 이야기들이 외우지 않고도 아이의 머릿속에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아이들과 눈을 마주치거나 적절한 제스처를 사용하는 것, 혹은 받은 질문에 대답을 하는 것 또한 아이에게 큰 긴장 거리가 되지 않았다. 이미 모든 게 가득 담겨있었기 때문이었다.
발표수업을 마치자마자 담임선생님은 피드백을 보내주셨다. 발표를 잘한 것 같다. 이러한 열린 교육이 아이와 부모를 동시에 성장시키는 것을 다시 한번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