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고도 없이…
언제쯤이면 아빠의 부재를 온전히 인정할 수 있을까. 언제쯤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을까.
분명 졸려서 잠을 청했는데 그 틈으로 아빠가 들어왔다.
아빠가 중환자실에 계실 때 계속을 카톡을 확인하면서 깊은 잠을 자지 못했었다. 그때 꿈인지 내 상상이었는지 명확하지 않은 느낌에서 아빠가 나타나셨는데 아무 말이 없으셨다. 그저 미소만 띠고 계셨다. 그로부터 2-3일 후에 아빠가 돌아가셨으니, 그때 아빠가 나한테 인사하러 오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아빠가 워낙 건강하셔서 백 살까지 사실 줄 알았는데, 갑작스런 사고로 병원에 입원하시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곧 퇴원하실 줄 믿었던 아빠는 중환자실에서 채 한 달도 채우지 못하고 세상을 등지셨다.
중환자실에 계실 때 호흡곤란으로 기관삽입을 하시는 바람에 아무 말도 하시지 못하고 그렇게 가셨다. 그게 너무 원망스럽고, 안타깝다.
아빠 본인도 하시고 싶은 말이 있으셨을 텐데.. 아무 말도 못 하고 가셨으니 얼마나 답답하셨을까.
기관 삽입 전에도 하루에 한 번 허용되는 5분간의 아침 면회 시간에도 ‘수면치료’ 중이라는 명목으로 대화가 거의 불가했다.
난 더군다나 해외에 있어서 한국 가족들이 보내주는 동영상으로만 아빠를 만날 수 있었다.
막상 아빠가 돌아가시고 나서야 한국을 갔는데, 정말 믿어지지 않았다.
한국에 있는 가족들은 해외에 있는 나에게 심각한 얘기들은 걸러서 전달해 주었다. 한국 가족들도 끝까지 희망을 놓지 않았기 때문에 어느 누구도 입 밖으로 ‘죽음’이나 ‘사망’이나 그런 무시 무시한 단어는 꺼내지 않았다. 우린 정말 마지막까지도 기적을 바랬었다.
엄마가 회사에 있는 오빠에게 일 마치고 병원에 올 때 본가에 들러 영정 사진과 연명치료 포기 각서를 챙겨 오라고 말씀하실 때도 오빠는 화를 내면서 내가 그걸 왜 가져가냐고, 끝까지 받아들이지 않았다.
우리 자식들은 부모님이 돌아가신다는 사실을 되도록 미루고 싶지만, 부모님은 이미 영정 사진과 연명치료 포기각서를 10년 전부터 준비해 놓으셨었다.
어쩌면 우리가 모두 알고 있는… 결국 우리 모두는 죽는다는 사실을 내 가족에게는 절대 오지 않았으면 하고 바라고 사는 것이다.
엄마는 아직도 생전에 아빠가 오후 산책 후 귀가 하시던 다섯 시만 되면 아빠가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시는 것 같다고 하신다.
두 노인에게 너무 길기만 한 무료한 하루를 시장 구경을 다니시며 시간을 보내셨는데, 지금도 오후만 되면 엄마는 시장을 가시고 싶어 하시고, 그곳 어디선가 아빠가 툭 튀어나오실 것 같다 하신다.
나에게도 이렇게, 자려고 누운 이 순간에도 갑자기 예고 없이 아빠가 튀어나와서 내 가슴을 쿵 내려앉게 하는데, 60년을 함께하신 엄마에게 아빠는 공기처럼 일상이셨을 텐데, 얼마나 매 순간 아빠가 생각이 나실까.. 그 고통을 함께 나눌 수가 없어서 죄송하다.
60년 세월 동안 말로 못 할 사연이 얼마나 많겠는가.
엄마는 지금도 아빠가 미워서, 아빠가 그리워서 납골당에만 가시면 아기처럼 엉엉 우신다고 한다.
어제는 나와 같은 슬픔을 겪고 있는 언니와 세 시간을 통화하며 울다 웃다 했는데도 아직도 풀리지 않은 응어리들이 맺혀있다.
우리는 언제쯤이면 물에 흠뻑 젖은 빨랫감 같은 이 묵직한 무게감에서 조금이나마 가벼워질 수 있을까.. 언제쯤이면 내 마음이 뽀송해질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