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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저녁은 카레 먹자

by 창가의 토토 Mar 30. 2025


철이 없었는지 순진했었는지  미련했었는지 …


결혼해서 시부모님께 그다지 귀한 대접을 받아 본 기억이 없는 나는 용감하게도 둘째의 산후조리를 시어머님께 부탁드렸다.



내가 이민을 나온 상태에서 첫째를 나았기 때문에 첫째 때는 언니가 산후조리를 해줬었다.

엄마는 아빠의 식사를 챙기셔야 했기 때문에 외국에 나 오실 형편이 못 되었다

언니는 그 당시 외국에서는 흔치 않았던 미역과 귀한 한국 재료들을 아끼지 않고 미역국을 끓여줬다.

혹시나 자주 먹으면 질릴까 봐 여러 재료를 바꿔가며 다양한 버전의 미역국을 끓여줬다.

나는 참 잘 먹었고 덕분에 젖도 잘 나왔다.


둘째 때는 차마 언니한테 부탁할 수 없었다.

언니도 조카들을 케어해야 했고, 또 자기 가게를 운영해야 해서 시간을 낼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시부모님께  산후조리를 해 주러 오실 수 있냐고 여쭤보니 흔쾌히 오시겠다고 하셨다.

산후조리 하시러 오시는 거였지만 또 자식이 어디서 어떻게 살고 있는지도 궁금하셨겠지.


나는 모지리처럼 시어머니에게 친정 엄마의 사랑을 기대했다.

우리 친정 엄마는 언니들이 한국에 방문을 하면 뭐를 싸서 보낼까 온통 그 생각뿐이셨다.

언니들이 한국을 방문했다가 돌아갈 때면 이민 가방에는 귀한 한국 먹거리들로 그득그득 차 있었다.

국멸치, 잔멸치, 고춧가루, 김장김치,참기름  같은 지나치게 한국적인 것들, 그래서 외국에 살면 그리운 것들을 가방 한가득 빈틈없이 채워왔었다.

나는 시어머니에게 그런 것들을 가져오시라고 감히 말하지는 않았지만 혹시나 하는 기대를 했었다.

자식 생각하는 마음으로 귀한 것들을 혹시라도 가져오시지 않을까 하는 손톱만큼의 기대…

그런데 기대는 역시나 실망을 안겨줬다.

그런 귀한 고국의 물건은 하나도 없었다

내가 따로 꼭 가져오십사 말씀드렸던 것은 건나물과 면들이었다.

하루 세끼를 메뉴를 바꿔가며 밥상을 차린다는 게 보통 일이 아니고, 무엇보다 그 시절 그곳에선 한국 재료가 너무 귀했다.

야채 시장을 가면 감자 당근 호박 파 오이 양배추 이런 것들은 구할 수 있지만 그 외에 딱히 입맛을 돋워 줄 특별한 것이 없었다.

생선도 몇 종류 없었다.

남편은 이 날 이때껏 반찬투정이라는 걸 모르는 사람이라 밥 하는 일에 스트레스를 받아 본 적은 별로 없었는데 시부모님 밥상을 삼시세끼 차리려고 생각해 보니, 아무래도 재료가 너무 부실한 생각이 들어 건나물을 가져오시라고 말씀을 드렸고, 세끼 중 한 끼는 면으로 해야겠다고 나름 계획을 세웠기 때문이다.

그때 당시에 내가 살던 그곳에는 국수면 쫄면 이런 걸 파는 한국 슈퍼가 없었다.

라면은 중국슈퍼에서 팔았는데, 겉봉에 유통기한 자체가 없었다. 날짜를 아예 다 지워서 팔았는데 어떤 때는 봉지를 뜯자마자 기름쩐내가 났다.

그것도 없어서 못 먹던 시절이었다.

나름 그 귀하디 귀한 음식을 하루에 한 번 특별식으로 해 드린 건데, 어느 날 아버님이 드시다가 젓가락을 탁 놓더니 소리치셨다

“너는 내가 밀가루 음식을 좋아하는지 아냐?!!”

본인은 그 간 밀가루 음식을 싫어하셨는데 참고 드셔주시다가 뿔이 나셨던가보다.

그래도 이왕 참아주신 거 더 좀 참아주시지 만삭의 며느리한테 꼭 그렇게 성을 내셨어야 했는지…




시부모님은 출산 예정일보다 두 달 전에 오셔서 산후조리 한 달 포함해서 세 달을 머무르시는 일정이었는데 애 낳기 전까지 빈말이라도 오늘은 내가 밥 할 테니 쉬어라 말 한 번을 안 하시고, 만삭의 며느리에게 꼬박꼬박 세끼를 하게 하셨다.

속으로 애 낳고 산후조리 해 주실 때 엄청 잘해주시려고 저렇게 몸을 아끼시나 보다 했다.

어떤 때는 쪼그려 앉아 일을 하다 보면 ‘밑이 빠지는 느낌’이었다. 정확한 설명은 힘든데, 쪼그려 앉아있다 보면 밑에 천 킬로쯤 추를 매달아 둔 기분이 들었다.

예정일이 지나도 아이가 나올 기미가 없었지만 병원 진료일이 예약되었기 때문에 병원이 가야 했다.

혹시 의사가 봐서 아기를 낳을 상황이 되면 유도분만으로 아기를 낳을지도 몰라서 출산 준비를 해서 병원으로 갔다.

첫째 때도 똑같은 상황이었다.

언니는 애 낳으려면 힘써야 한다며 애 낳으러 가기 전날 고기를 엄청 먹였다

그때 그 기억이 있어서 혹시 어른들이 그런 말을 해주지 않을까 기대했다.

그때 당시에 나는 왜 지은 죄는 없는데 그렇게 눈치를 봤는지..

“저 내일 애 낳으러 가야 하니까 고기 먹어야 돼요.”  소리도 못했다.

어머님이 말씀하셨다.

“오늘 저녁은 카레 먹자”

카레를  만들려고 식용유를 두르고 야채를 볶는데, 하필 기름이 팔에 튀었다. 따끔하게 아픈 통증이  서러움을 자극해서 눈물이 찔끔 나왔다.

‘내일 애를 낳을지도 모르는 며느리에게 카레를 시키셔야 마음이 편하실까, 왜 따뜻한 밥 한 끼를 안 해주실까. 역시 무늬만 엄마구나.. ’


우리 엄마가 참으로 그리운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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