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유언

한·일을 잇는 우정의 강물

by 한우물

레이꼬에게서 메일이 욌다.

Dear Dr. Han
October 27th, 2018

어제 오후에 어머니가 돌아가셨습니다.

어제 아침,
병원에서 어머니의 호흡이 이상하다는 전화가 왔길래 여동생과 나는 그 길로 병원으로 달려가 다행히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전 얼마간의 시간을 함께 할 수 있었습니다.
그녀는 마치 잠에 빠져들듯 평안히 영면하셨셨습니다.

그녀는 뇌임파종으로 진단받은 후 증세완화치료를 위해 보름 정도 병원에 입원해 있었습니다만,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 그날들이 참 좋았던 것 같습니다.

어머니는 그 종양으로 야기된 뇌 손상 덕분에 자신이 회복될 가능성이 없다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고 그 누구에게도 자신의 병에 대해 묻지 않았습니다.
또한 그녀는 자신이 입원한 병실을 좋아하여 집에 가고 싶다는 말도 한 적 없습니다.

어머니가 입원하기 전에는 매일 나에게 손발 저림과 통증에 대해 말하였지만, 입원 후로는 자신의 신체 증상에 대해 한 번도 호소하지 않았습니다.

어머니는 마치 행복하고 온화한 치매 노인처럼 보였습니다.

병원의 환자 돌봄은 아주 뛰어났습니다.
간호사들은 몹시 친절하였고 심지어는 그녀의 머리 염색까지 해주었습니다.

날이 갈수록 어머니는 음식 먹는 것을 힘들어했는데 그럴 때마다 병원에서는 어머니가 음식을 즐길 수 있도록 재빨리 식단을 바꾸어 주었습니다.

우리가 들은 어머니의 마지막 말은 ‘맛있다(おいしい)’였습니다.
그녀가 그 말을 한 것은 사망 전날 저녁에 내가 한 숟갈 가득 수프를 입에 넣어 줄 때였습니다.

이 장면이야말로 내가 어머니를 떠올릴 때, 비통함 대신 무언가 달콤한 기분을 갖게 만들어 줍니다.

지난날을 되돌아보면
내가 처음으로 당신에게 편지를 쓴 것은 내 아버지가 위독할 때였습니다.
그때도 나는 지금과 마찬가지로 당신으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당신은 그동안 우리 가족에게는 참으로 특별한 사람이었습니다.
(You have been such a special person for my family.)

비록 어머니는 더 이상 이 자리에 안 계시지만
언젠가 한 번 당신과 부인께서 후쿠오카를 방문해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때, 나는 살아생전 어머니가 당신에게 보여주고 싶어 했던 장소들로 모셔가고 싶습니다.


그러면서 그녀는 다음과 같은 사연을 들려주었다.

그녀의 어머니 게이꼬는 죽기 전, 자식들(딸 둘)에게 유서와 유산을 남기면서 장녀인 레이꼬에게는 다음과 같은 유언을 별도로 남겼다.


"내 죽은 후에 닥터 한이 후쿠오카에 오시거든 우리 집에 머물게 하라.

만약 그때 너의 사정이 허락지 않거든 뉴오타니나 힐튼호텔 중 한 곳에 모셔라.

그리고 내가 살아생전 그에게 보여주고 싶어 하던 장소들로 안내하거라.

그리고 그가 후쿠오카에 유(留)하는 동안 들어가는 경비는 네가 모두 부담하거라."


그리고 유산과는 별도로 준혁과 그 가족을 대접하는데 들어갈 일체의 경비를 따로 남겨주었다 한다.


지금껏 준혁이 살아오면서 가장 후회스러운 일 중 하나가 바로 그녀가 별세하기 전 그녀 병문안을 한번 가보지 못한 것이다.

그녀가 9월 초, 수술로 환부를 제거하지 못할 정도의 심한 대장암에 걸렸다는 소식을 듣고 그는 그녀가 6개월을 넘기지 못할 것이라고 아내에게 말했다. 그러자 아내는 더 이상 병세가 나빠지기 전에 한 번 들여다봐야 하지 않겠냐고 두 번이나 말했는데, 마침 11월 7일과 8일, 서울과 울산에서 초청 강연 스케줄이 잡혀 있던 관계로 강연 마치고 한 번 가보자 했다가 그만 시기를 놓치고 만 것이다.


'마음만 먹으면 당일치기로도 갔다 올 수 있는 곳인데...., 그때 내가 왜 그랬을까?'

'강의 준비가 뭐 그리 대단하다고!'

생후 처음으로 자신의 완벽주의적 성향이 원망스러워지는 순간이었다.

'영원히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얼굴이라도 한번 보고 가려고 얼마나 기다렸을까!'

레이꼬에게 한 그녀의 마지막 당부를 들으니 더더욱 가슴이 아프고 그때 미적거렸던 자신이 너무나 후회스러웠다.


그리고 그의 생각은 그녀를 처음 만난 30년 전으로 훨훨 날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