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을 잇는 우정의 강물
드디어 그녀의 자택이라는 곳에 차가 당도했다.
집은 서양식 건물처럼 입구에 차고가 있고, 뒤편에 널따란 뒤뜰(backyard)이 딸린 커다란 이층 목조건물이었다. ‘여행 가이드하는 여성이 이런 집에 산다?’ 또다시 의문이 솟아올랐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 신발을 벗고 마루로 올라 서니 마주 보는 긴 복도 외에, 왼쪽으로 또 하나의 복도가 나 있고 그 끝 가까이에는 커튼이 처져있는 것 아닌가!
'저건 또 어디로 통하는 거지? 무슨 놈의 가정집에 복도가 두 개나 있나? 이거 진짜 가정집 맞나?'
그녀는 남편이 이층 응접실에서 기다린다며 그들 일행을 맞은편 복도로 안내했다.
그녀의 뒤를 따라가면서 보니 좁다란 복도 양쪽으로 문 닫힌 방이 네댓 개 있었다.
분위기는 점점 으스스해지면서 문을 하나씩 지날 때마다 "쾅" 하는 소리와 함께 문을 박차고 뛰쳐나온 괴한들이 뒤에서 덮칠 것만 같아 소름이 돋는 것 같았고, 이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을 밟을 때마다 조금씩 삐걱거리는 나무 계단은 더욱 공포심을 자아냈다.
계단을 다 오르자 드디어 응접실이 나타났고 맞은편 중앙 소파에 앉아있던 중년 신사가 천천히 일어섰다.
그는 일어나 준혁 일행을 반갑게 맞이했다.
그는 인물이 잘생기고 중후했으며 그가 내민 명함에는 '나까무라 미찌나리'라는 이름과 함께 明石內科醫院(아까시 내과의원) 원장이라는 직함이 박혀있었다. 준혁은 지금까지 가졌던 팽팽한 긴장감이 확 풀리면서 맥이 좍 빠졌다.
부인의 이름은 나까무라 게이꼬(內村京子).
그녀는 후쿠오카 시내에서 잘 나가는 내과 개원의 원장 부인으로서 때때로 소일 삼아 외국인 관광 가이드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부부가 나란히 앉은 모습을 보니 두 사람 다 훌륭한 인물에 기품까지 더하여 누구나 부러워할 만한 보기 좋은 환상의 커플이었다.
그녀의 설명에 의하면, 그녀의 남편은 집 바로 옆에 병원을 오픈한 개원의라 하였다.
그러고 보니, 이 집에 도착했을 때 날도 조금 어둑하기도 했고 옆집까지 신경 쓸 여유가 없어 그냥 지나쳤는데 이 건물 바로 옆에 있던 상자처럼 생긴 일 층짜리 건물이 바로 남편의 병원이었나 보다.
준혁 일행은 맛있게 먹고 취하도록 마시며 영어를 잘 못하는 남편이 일본어로 말하면 강 상무가 한국어로 통역하고, 준혁이 영어로 말하면 부인이 일본말로 통역해 가며 즐겁게 대화를 나누었다. 준혁이 벽에 걸린 상장 같은 것을 보고 그것이 무언지 물어보았더니 장녀인 레이꼬가 중·고등학생 때 영어 스피치 대회에 나가 받은 상들이라며 자랑스러워했다.
다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즐겁게 대화하는 사이, 그 집에서의 체류 시간은 어느덧 두 시간을 넘겼다.
이제 일어나야 할 시간이라 감사의 인사와 함께 작별을 고하고 나오니 부인이 따라 나와 자신의 차로 그들을 호텔까지 데려다주었다. 호텔로 돌아와 샤워하고 잠자리에 들어 그날 하루 있었던 일을 되새겨 보던 준혁은 웃음이 절로 나왔다. 의심은 의심을 낳고, 거기에 상상력과 논리까지 더해져 아주 합리적인 망상에까지 다다른 것이다.
물론, 그녀가 불순한 의도를 가지고 의도적으로 접근한 나쁜 사람이 아니라는 건 밝혀졌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든 의문이 다 해소된 건 아니었다. 차라리 그녀가 조총련이었다면 그가 품었던 모든 의문이 다 풀렸을 텐데, 예상이 완전히 빗나가다 보니 오히려 몇 가지 의문은 그대로 남은 것이다.
'그녀는 무슨 이유로 남의 대화에 귀를 기울이게 되었으며 왜 그런 과잉 친절을 베풀게 되었을까?'
'낯선 이방인들의 방문이 결코 달가울 리 없는 남편은 또 왜 그렇게 그들을 반겼을까?'
이런 의문과 함께, 그날 준혁 일행의 자택 방문이 그 부부에게는 어떤 의미가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30년 후, 그녀가 세상을 떠나고 난 후에야 밝혀지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