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을 잇는 우정의 강물
준혁은 귀국 후, 그녀가 자신들에게 베풀어준 호의와 극진한 대접에 대해 감사의 편지를 보냈다.
그러자 그해 말, 그녀로부터 손으로 직접 만든 크리스마스카드가 왔고 이에 준혁은 연하장으로 답하였다.
이리하여 매년 연말연시면 현해탄을 건너 카드와 연하장이 그들 사이를 오가면서 일회성 추억거리로 끝났을 스쳐 지나가는 옷깃을 연결해 주었고, 그로부터 10년 후에 생긴 한 불행한 사건은 그 옷깃을 더더욱 단단히 동여매게 하였다.
1999년 3월, '나까무라 레이꼬 (中村玲子)'라는 이름으로 편지가 한 통 왔다.
편지를 쓴 사람은 게이꼬의 딸이었다.
그녀가 보내온 편지의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불행하게도 저의 아버지는 신장암에 걸렸는데 그것은 흔히 접하는 신세포암이 아니라 신장에서는 보기 드문 육종(肉腫)이었고, 이것이 간과 대동맥 등 주변 장기를 침범했을 뿐 아니라 폐에 전이까지 된 말기암이었습니다. 그리하여 규슈대학병원에서는 신장과 그 주변을 절제할 수 있을 만큼 최대한 절제하고 항암치료는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면서 레이꼬는 그간의 제반 사항에 대해 설명하였다.
아버지가 그런 절망적인 병에 걸리자, 동경 고등재판소에서 국제소송 사건 프리랜서 통역으로 일하던 그녀는 아예 동경에서의 일을 접고 후쿠오카 부모님 집으로 내려와 어머니를 도왔다. 아버지의 주치의는 병원에서 하는 화학요법 대신 고려인삼 추출물로 만든 한국산 항암보조제 아답타겐(Adaptagen- α)을 강력하게 추천하였는데 일본에서는 값도 대단히 비쌀 뿐 아니라 구하기도 쉽지 않았다.
그러자 그녀는 언젠가 부모님이 한국인 의사 일행을 집에 초대한 적이 있다는 사실이 떠올라 어머니에게 그 약을 한국에서 구입할 수 있는지 알아봐 달라고 부탁해보라 하였다. 하지만 어머니 게이꼬는 내키지 않아 했고 모녀간 몇 번의 대화 끝에 "너의 뜻이 정 그러하다면 나 대신 네가 직접 부탁해 보거라." 하여 자신이 이 메일을 보내게 되었다고 하였다.
그동안 준혁은 학회 일로, 초청 강연 건으로 일본을 자주 방문하고 일본 의사들과 친분을 쌓아가게 되면서 아래와 같은 점을 느끼게 되었다.
'한국인들은 조금만 가까워지면 비빔밥 치대듯 엉겨 붙어 너무 선을 잘 넘어서 탈이고, 일본인들은 아무리 가까운 사이가 돼도 일정한 선 이상은 잘 넘지를 못해서 답답하다.'
하지만 이번 경우는 좀 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서로 알고 지낸 지도 10년이 넘는 데다 내가 과거에 당신에게 그렇게 신세 진 적이 있으면 갚을 기회도 줘야지. 뭐가 그리 어려운 사이라고 그런 부탁 하나 못할까!'
한편으로 생각해 보면 일본인 특유의 결벽증에다 기질마저 수줍음질이다 보니 게이꼬의 경우는 더한 모양이라고 이해하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거참 이상타! 이런 부탁 하나 못하는 사람이 그날은 어찌 그리 용감했을까? 그때 그 용기는 다 어디로 갔누? 그때는 남에게 호의를 베풀 때라서 그랬나?'라는 의문을 지울 수 없었다.
준혁은 당황스러웠다.
약 이름도 처음 들어봐, 제약회사 이름도 처음 들어! 이런 놈을 어디서 구하냐?
다행히 그녀가 보내온 제품 특허증과 회사 등록증 사본을 살펴보다 보니 등록증 끝에 서울사무소 전화번호가 있어 즉시 연락을 취했다. 하지만 자신들은 이 약을 생산만 하고 판매는 유통회사에 위탁한 상태로서 도매든 소매든 자신들이 직접 소비자에게 팔지는 못한다는 게 아닌가! 게다가 약이 워낙 고가(高價)인지라 유통회사도 국내에 팔기보다는 주로 외국으로 수출한다 하였다.
준혁은 자신의 신분을 밝히고 전후 사정을 상세히 설명한 후 직접 구할 수 있는 방법이 없겠냐며 간곡히 부탁하였다. 그러자 그의 진심 어린 호소가 통했던지 회사로서는 해서는 안 되는 일이지만 비밀을 지킨다는 전제 하에 현금으로 지불하면 생산원가로 공급해 주겠다고 하였다.
그리하여 준혁은 당시 일본에서 한 달 치 60만 원가량 하던 약을 25만 원에 구입하여 일본에 보내면서 편지에 다음과 같이 썼다.
“이것은 호의를 신세 진 사람으로서, 또한 친구의 한 사람으로서 보내는 선물이니 내 성의를 봐서라도 그냥 받아주시고, 이 한 달 치를 먹어본 후 효과가 좋아 계속 복용하겠다면 그때부터는 내가 구매대행을 해드리겠습니다.”
마음 같아선 두 달 치를 보내고 싶었으나 그렇게 하지 않은 것은 일본인들의 성정상 그 정도는 부담스러워서 절대 안 받을 것임을 알기 때문이었다.
다소 시간이 지체된 후, 일본으로부터 답장이 왔다.
“가족회의 결과, 어렵사리 받기로 결정했습니다. 대단히 감사합니다.”
그런 선물 하나 그저 받는 데도 전 가족회의가 필요한 나라!
그 이후로 약 1년간은 일본에서 준혁에게 달러로 돈을 보내면 그는 서울사무소에 주문해 약을 받아서 다시 일본으로 보내 주다가 나중에는 회사에 부탁해서 준혁이 돈을 보내면 회사에서 직접 일본으로 약을 보내게 하였다.
설상가상으로 나까무라 씨는 이듬해인 2000년 6월에는 대장암이 생겨 다시 수술을 받았고, 2001년 2월 말에 사망하였다. 첫 진단 후 길어야 6개월 정도로 보았던 생명이 2년으로 연장된 것이다. 그것도 암을 두 개씩이나 달고.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삶의 질이었다.
식사 후 소화제 먹듯 약봉지에 든 가루약 한 봉지 톡 털어 넣으면 끝나는 약. 아무런 부작용도 없고 속이 부대끼지도 않는 약. 그 약을 먹고 첫 수술 후 1년 동안은 환자 진료도 하면서 거의 정상에 가까운 생활을 하였고, 2000년 3월부터는 병원문을 닫고 쉬었는데 그때도 편안히 지냈으며, 2000년 6월 대장암 수술 후 병세가 나빠져 8개월 후 사망할 때까지도 별 통증 없이 지냈다 한다.
그들은 남편과 아버지가 말기암 진단을 받고서도 생명을 2년 가까이 연장하고 마지막 여생을 큰 고통 없이 편안히 보내다 갈 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준혁 덕분이라며 두고두고 감사하였고, 그때부터 준혁과 그 가족과는 더더욱 끈끈한 유대관계로 맺어졌다.
우연히 옷깃을 스쳐 지나가는 인연. 사건이든 사람이든, 대부분 이런 형태로 다가오고 지나간다. 하지만 그것을 놓치지 않고 붙들다 보면 우연이 필연이 되고 나아가 숙명에까지 이르게 된다. 이들과 처음 만났던 준혁 일행 세 사람에게는 똑같은 우연스러운 인연이란 끈이 연결되었지만 그걸 붙든 것은 오직 한 사람, 준혁뿐. 답례 편지 한 장이 이렇게까지 대를 이어 소맷자락을 단단히 동여맬 줄이야 그 역시 짐작조차 하지 못 한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