뜻밖의 서프라이즈

한·일을 잇는 우정의 강물

by 한우물

2016년 10월 29일 토요일 아침

준혁의 아내는 그 전날 좌동시장 죽 전문점에다 주문해 놓은 팥죽을 찾아와 그 크기에 맞는 천 가방에 단단히 담았다. 1인분은 점심때 게이꼬 씨가, 나머지 1인분은 귀국 후 저녁 식사 대용으로 모녀가 나눠 먹으라고 시킨 것이었다.

오전 10시가 되자 준혁 부부는 집을 나와 중동에 있는 부산 전통 수제 어묵점인 ‘고래사어묵’에 들러 개성 있는 어묵들을 종류별로 골라 담아 선물 세트를 하나 꾸렸다.


11시 30분경 터미널에 도착한 그들은 입국장 앞 대합실에서 게이꼬 일행을 기다렸다.

12시가 넘어가자, 승객들이 하나둘 빠져나오기 시작하더니 이윽고 게이꼬 씨가 보였다. 준혁이 손을 흔들자, 그녀는 반가운 미소를 지으며 다가왔다.

4년 전에 올 때는 일정 중에 병원 투어가 있음에도 편안한 여행복 차림에 화장기 없는 얼굴이었는데 이번에는 정장 차림에 구두를 신고 공들여 화장하고 머리까지 염색했다. 그 모습을 보는 순간 준혁은 그만 가슴이 찡하니 저려 왔다.


‘아무래도 저 양반이 어쩌면 이번 여행이 생에 마지막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저렇게 정성 들여 단장을 하고 온 모양이로구나!'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그녀의 바로 뒤에 나오는 레이꼬를 보는 순간 그는 그만 깜짝 놀랐다.

그들은 준혁에게 줄 재난백을 하나도 아니고 둘씩이나 가지고 온 것이다.

그야말로 생각지도 못한 서프라이즈였다.

레이꼬는 체격이 좋은 것도 아니요 그냥 보통 키에 비교적 가냘픈 몸매를 가진 사람인데, 그런 그녀가 결코 가벼워 보이지 않는 재난백을 하나는 등에 짊어지고 하나는 손에 들고, 다른 한 손엔 여행용 캐리어까지 끌고 낑낑대며 나오는 모습을 보니 참으로 미안하고 고마웠다.


그동안 말도 많이 듣고 사진도 보아 얼굴은 대충 알지만 준혁의 아내와 일본 손님 두 사람은 서로 처음 대면하는 자리였다. 그들은 준혁의 소개로 서로 반가운 인사를 나눈 후 주차장으로 내려가 준혁의 차를 타고 자갈치시장으로 향했다.

토요일 낮시간이라 차량 들어가는 입구에 차들이 긴 줄을 섰다.

주차장에 차를 대고 1층에 있는 활어시장 안으로 들어서자, 게이꼬와 레이꼬는 입이 쩍 벌어졌다.

그것은 준혁도 마찬가지였다.


비록 부산에서 태어나 부산에서 자라고, 60년 이상을 부산에서만 살아온 준혁이었지만 장애인인 그가 사람들로 붐비는 어물전에 직접 와 본 기억은 잘 나지 않았다.

일주일 전에 현지답사 차 와 보긴 했지만, 그때는 모든 생각이 손님맞이 준비에 맞춰져 있어 풍광을 즐길 여유는 전혀 없었는데 이번은 달랐다.

끝이 아득한 넓은 시장 안에는 북적이는 사람들의 대화와 흥정 소리로 시끌벅적했고, 수족관 안에서는 온갖 종류의 싱싱한 어패류가 살아 꿈틀거리며 삶의 활기를 더했다. 준혁은 이런 생동감 넘치는 시장 분위기를 일행과 함께 만끽하며 천천히 둘러보았다.


어시장을 구경한 후 이층으로 올라가니 이 또한 장관이었다.

엄청난 규모의 횟집, 낮시간임에도 불구하고 가득 찬 손님들, 군침이 도는 활어회에 쌈과 소주. 즐거운 표정과 대화, 그리고 밝은 웃음들. 적어도 이 순간만큼은 인생의 모든 시름을 다 내려놓은 듯했다.

횟집을 지나 안쪽으로 죽 따라가니 준혁의 목적지인 건어물 상가가 나왔다.

여기에는 온갖 건어물(乾魚物)에다 말린 농산물까지 있었고 준혁은 그들에게 어떤 것을 좋아하는지 한 번 골라보라 하였다. 하지만 예상대로 머뭇거리기만 할 뿐, 말은 못 했다.


이럴 때는 그저 사 주는 사람이 알아서 해야 한다.

준혁과 아내는 기장 미역, 돌김, 다시 용 죽방멸과 잔새우, 반찬용 잔멸, 반건조 오징어, 표고버섯, 국산 잣 등을 골라 담은 후, 일본 손님들의 짐을 줄여주기 위해 각각의 포장은 다 뜯어내고 비닐 팩에 싸인 내용물들만 모아 레이꼬와 함께 그녀의 케리어와 쇼핑백에 꽉꽉 채워 담았다.

2층에서의 볼 일을 마친 후 그들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7층에서 내려 계단으로 한 층 올라가 옥상 전망대로 갔다. 여기서는 부산항 전체가 한눈에 들어왔고 준혁이 이곳에서 이렇게 부산항을 내려다보는 것도 처음이었다.

이렇게 하여 한 곳에서 어물전과 횟집을 구경하고, 선물로 줄 건농수산물을 사고, 부산항 조망까지 끝낸 일행은 점심을 먹기 위해 산정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