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을 잇는 우정의 강물
2016년에 들어 한반도에는 심한 지각변동(地殼變動)이 일어났다. 그 결과, 경주 지역에서 지진이 자주 발생하여 부산에서도 두 달 사이에 세 번의 진동이 느껴졌고 그중 한 번은 아파트가 흔들리기까지 하는 공포스러운 것이었는데 준혁에게 이런 일은 난생처음 있는 일이었다. 아무래도 심상치 않았다. 비상시를 대비하여 재난백(survival kit bag) 하나 정도는 집에 있어야 하겠다 싶어 인터넷 구매 사이트를 뒤져보았더니 뭔가 허접했다. 이런 일에 대한 경험이 부족한 나라다 보니 어쩔 수 없는 것 같았다.
그때 준혁은 ‘이 분야라면 일본이야말로 세계 최고 아니겠나?’라는 생각이 퍼뜩 떠올라 레이꼬에게 메일을 보내 재난백을 파는 일본 통신판매회사 IP와 제품 하나를 추천해 달라고 부탁하였다.
하지만 레이꼬가 알아본 결과, 재난백을 외국으로부터 주문받는 것은 금지되어 있었다. 이에 모녀는 자신들이 직접 구매하여 소포로 보내주겠다는 답장을 보내왔다.
레이꼬는 가장 이상적이라 생각되는 재난백을 하나 골라, 내용물 중 무언가 부족하다 싶은 항목은 마트 등에서 따로 구매하여 백에 하나 가득 채워 넣고 우체국에 들고 갔다. 그런데 우체국에선 내용물 중 몇 개가 한일 간 무역협정에 위배된다며 그 품목들을 뺀 나머지를 소포로 부친다면 그렇게 해주겠다 하였다.
이런 편지를 받은 준혁의 입에선 볼멘소리가 절로 나왔다.
"아이고 새 빠질 놈들, 무슨 가마때기로 보내는 것도 아니고, 재난백 안에 들어가는 조그만 아이템 몇 가지 부치는데 무슨 놈의 규제가 이리도 심하노?"
가만히 앉아서 받는 처지인 준혁의 마음이 이럴진대, 추가할 물품 목록 노트를 몇 번이나 수정해 가며 이 마트 저 마트 돌아다니며 구입해 우체국까지 짊어지고 간 사람은 오죽 열받았겠는가?
어지간해선 남에게 불편한 심기를 잘 드러내지 않는 일본인의 기질에도 불구하고 자국의 심한 규제에 대한 불만을 그대로 토로한 레이꼬는 다음과 같은 내용을 덧붙였다.
"만약 우체국 직원 말대로 해서 정작 중요한 품목들 몇 가지 빼고 나면 나머지 내용물들은 대부분 한국에서도 구할 수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나머지 품목 중에도 나중에 세관에서 문제 삼을 물건이 전혀 없다는 보장 또한 없는 것이고요!"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4년 전 그들이 수행하였던 바로 그 미션!
'그래, 맞아! 여러 말 할 것 없이 우리가 직접 울러 매고 가서 전달하면 될 것 아냐?'
하지만 문제는 게이꼬의 몸 상태였다.
그녀는 2009년에 대장암에 걸려 수술을 받은 적이 있는 데다, 부산에 왔다 간 바로 다음 달인 2012년 7월에는 임파종이란 악성 종양에 걸렸다. 게다가 2015년에 들어서는 악성 혈액질환 중 하나인 재생불량성빈혈 진단까지 받았다. 불행 중 다행으로 대장암은 장 절제술로 끝났고, 나머지 두 질환 또한 항암치료에 잘 반응하여 편지를 보내던 당시에는 집에서 요양하며 병원에는 정기적으로 검사와 수혈을 받으러 가는 정도였다. 하지만 몸 컨디션이 옛날 같지 않아 한국어 교습도 그만두고 외출도, 사람 만나는 것도 힘든 상태라 레이꼬는 걱정이 되지 않을 수 없었다.
'외출도 제대로 못 하는 사람이 저런 몸 상태로 어떻게 외국 여행을 한단 말인가?'
그런데 뜻하지 않은 이변이 일어났다.
부산행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자, 게이꼬는 갑자기 생기가 돌며 나는 얼마든지 갈 수 있으니 빨리 준비하라고 딸을 다그쳤다. 이리하여, 딸의 우려는 아랑곳하지 않는 게이꼬의 미션 임파서블 2는 이미 시작된 것이다.
과연 그녀는 이 미션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