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을 잇는 우정의 강물
2012년 6월 22일 11:30 AM, 부산항 국제선 여객터미널. 안 선생은 그의 아내와 함께 게이꼬 씨 일행을 기다렸다. 처음에 안 선생에게 외국 손님 마중하러 나가랬더니 "영어도, 일어도 잘 못하는 제가 어찌...?" 하며 말꼬리를 흐리기에 준혁이 말했다.
“걱정 마셔! 게이꼬 씨는 그동안 한국어를 꾸준히 공부해 왔고, 안 그래도 배운 것 한번 써먹어 보려고 전철 타고 오겠다는 사람이야. 그러니 자네는 쓸데없는 걱정하지 말고 상대가 알아듣든 못 알아듣든 그저 한국말만 하면 돼. 그것이 그녀를 도와주는 길이기도 하고.”
하지만 외국인을 마중하는 일이 처음인 안 선생은 덩치에 걸맞지 않게 왠지 불안하여 영어와 일어 둘 다 어느 정도 통하는 부인을 대동하고 나갔다. 승객들이 하나둘 입국장으로 나오기 시작하자 그는 게이꼬 씨의 이름이 적힌 피켓을 들고 서 있었는데 게이꼬 씨도 안 선생 이름이 적힌 피켓을 들고 있어 서로를 금방 알아보고 반갑게 다가갔다. 그러나, 게이꼬 씨의 피켓에 쓰인 문구를 보는 순간 그는 낯이 간지럽고 얼굴이 화끈거렸다.
「미남! 교수의 오른팔!」
나중에 이 피켓을 본 준혁은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그리고 한 편으론 이 사람들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피켓에는 마중 나올 사람의 이름뿐 아니라 부산 도착 시 그들이 알고 있어야 할 필수 정보가 다 들어 있었던 것이다.
1) 마중 나올 사람 이름
2) 그가 안 보일 시 걸어봐야 할 비상 연락망
3) 그래도 안 될 시, 택시 기사에게 보여주어야 할 목적지 이름
4) 병원에 도착해서 연결할 준혁의 방 전화번호
5) 거기다 자신들을 위해 수고하는 사람에게 보내는 '미남'과 '오른팔'이란 애교스러운 메시지까지...
"아무튼 대단해!"
게이꼬 일행을 태운 차는 예정 시각에 맞춰 병원에 도착했고 그들은 준혁의 방에서 감격스스러운 재회를 했다. 이 얼마만 이런가? 20년도 더 지난 세월의 풍상에 서로의 모습은 많이 달라져 있었다. 하지만 처음 보는 그녀의 딸 레이꼬의 모습과 비교해 볼 때 엄마인 게이꼬는 별로 늙은 것 같지가 않았다. 차 한 잔과 함께 환담을 나눈 후 준혁은 그들을 데리고 영상의학과를 한 바퀴 라운딩하며 구경시킨 후 곧바로 병원에서 10분 거리에 있는 삼계탕집으로 갔다.
안 그래도 준혁이 편지에서 삼계탕 전문점에 간다니까 게이꼬 씨 모녀는 아주 좋아했다. 대놓고 말을 못 해서 그렇지 내심으론 '한국 가면 삼계탕은 한 번 먹어 봐야 할 것 아냐?' 하는 생각들이 있은 모양이다. 두 사람 다 어떻게나 잘 먹던지! 국물까지 싹 다 비웠다. 김치도 잘 먹었다. 준혁은 내심, '이 사람들 일본 사람 맞나?' 싶을 정도였다. 게이꼬 씨가 잇몸 때문에 잘 먹어낼 수 있을까 걱정했는데 그야말로 기우(杞憂)였다. 그들의 먹는 모습을 보고 있는 준혁은 그저 흐뭇했다.
식사를 마친 후, 여주인에게 잘 먹었다고 인사하고 나오자 그녀는 가게 문 밖까지 따라 나와 배웅한다.
그러면서 '음식이 두 분 입에 맞았는지 모르겠다.' '두 사람은 어떤 사이냐?'라는 둥 오지랖 넓은 관심을 보이길레 준혁이 손님 두 사람은 모녀 사이라 하니 여주인은 깜짝 놀라며 도무지 모녀로는 안 보이고 자매 정도로 보인단다. 순간, 이 말을 그대로 전했다간 한 사람은 기분이 좋겠지만 다른 한 사람은 별로일 것 같아 준혁은 통역해 주지 않고 그냥 넘어갔다.
이렇게 다들 맛있게 점심 잘 먹고, 가게 주인의 극진한 문밖 배웅까지 받아가며 준혁 일행은 기분 좋게 해운대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