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을 잇는 우정의 강물
보내 놓고 나서도 마음이 영 놓이지 않았다. 비록 골절은 없다 하더라도 노인네들은 타박상도 오래가는데, 혹시 근육 내 출혈로 혈종이 생기지나 않았는지? 우리가 이것저것 선물하는 바람에 짐도 많아졌는데 레이꼬 혼자서 어찌 다 들고 갔을는지? 그러던 차, 그날 저녁 10시에 바로 레이꼬로부터 메일이 왔다.
Dear Dr. Han,
15분 전에 집에 도착하여 엄마를 위해 차를 준비하는 동안,
일단 간단하게라도 먼저 편지를 보내는 것이 좋겠다 싶어 이 글을 씁니다.
오늘 하루 너무나 감사했습니다.
이날은 영원히 잊지 못할 또 하나의 하루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아직 여행 가방을 풀기 전입니다.
그 가방은 특별한 선물들과 죽통과 어묵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것을 열 때는 마치 보물 상자를 여는 것 같을 것입니다.
다시 한번 감사드리고, 부인께도 인사 전해 주시길.
준혁은 바로 답장을 보냈다.
Dear Reiko,
이렇게 빨리 소식 주시니 감사합니다.
이제 마음이 놓입니다.
당신들을 배웅하고 난 후
돌아오는 차 안에서는 “이제 막 비행기 떠났겠다.”
집에 도착해서는 “지금쯤 후쿠오카에 도착해서 택시 잡아탔겠지?”
등의 대화를 아내와 계속 나누었습니다.
우리는 게이꼬 씨의 몸 상태와 후쿠오카 공항에서 집까지 가져가야 할
많은 짐들에 대해 걱정했습니다.
내가 계획을 잘못 세워서 게이꼬 씨를 너무 많이 걷게 하고
너무 많은 계단을 오르내리게 한 것이 못내 후회스럽네요.
어머니 상태는 괜찮은지요?
당신이 두 개의 생존백을 가지고 왔을 때 우리는 깜짝 놀랐습니다.
그 무거운 백을 하나는 등에 지고, 하나는 끌고 오는 당신의 모습에 우리는 감동받았고
특히 아내는 그러한 당신의 노고에 감사와 경의를 표합니다.
우리가 그 백을 열었을 때, 그 각각의 내용물을 보고는 경탄을 금치 못했습니다.
하나하나가 다 생존에 없어서는 안 될 특별한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본의 아니게 당신으로 하여금 너무 큰 비용을 들이게 해서 참으로 미안합니다.
우리 또한 오늘의 특별한 추억을 영원히 잊지 못할 것입니다.
그로부터 사흘 후인 11월 1일, 또다시 레이꼬로부터 메일이 왔다.
Dear Dr. Han,
당신이 차를 가지고 우리를 픽업하고 좁은 시장길을 운전하며 주차에도 어려움을 겪었을 때 너무나 미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우리가 가보고 싶은 것에만 정신이 팔려 그런 점까지 세심히 신경 쓰지 못한 점 미안합니다.
하지만. 시장은 너무 좋았습니다.
그 시장은 참으로 그럴듯해 보였고 깨끗했습니다.
어머니 상태는 아주 좋습니다.
그날 저녁, 4년 전과 마찬가지로 당신 덕분에 나는 저녁을 따로 준비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때는 당신이 저녁에 도착해서 먹으라고 준 주먹밥을 먹었고,
이번에는 어묵 두 개와 그 특별한 죽을 좀 먹었습니다.
어묵은 일본 것과 비슷했지만 우리는 둘 다 한국식 어묵이 더 마음에 들었습니다.
그 이유는 일본제 어묵에는 설탕이 너무 많이 들어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팥죽에 감동받았습니다!
그것은 아주 맛있었고 좋은 팥이 내는 멋진 향기를 가졌습니다.
나는 때때로 팥으로 요리합니다.
그래서 그 죽을 만드는데 얼마나 많은 시간과 정성이 들어갔을지 충분히 짐작이 갑니다.
그리고 우리가 들인 경비에 대해서는 아예 생각조차 하지 마세요.
15년도 더 전에, 나는 당신에게 (암에 걸린 아버지를 위해) 인삼으로 조제한 그 약을 어디서 구매할 수 있는지 알아봐 달라고 편지를 보냈지요.
그러자 당신은 ‘어디다 주문하면 된다’라는 답 대신 우리에게 즉시 약을 보내주었습니다.
이번에 우리가 당신에게 무엇을 가져다주었든지 간에 -엄마와 내가 두고두고 이야기하는- 그때 당신이 우리에게 베푼 그 은정(恩情)의 값어치와 비교하면 참으로 보잘것없습니다.
부디 이 생존백이 두 분께 도움이 되길 빕니다.
실은 어제, 피크닉 가는데 필요한 물건 몇 가지 사러 슈퍼에 갔다가 나도 모르게 당신에게 보낼 생존백에 넣을 물품을 찾고 있는 나를 발견하고 웃었습니다.
나는 내 머릿속에 있는 조그만 회색 세포들에게 생존백에 대해서는 인제 그만 잊으라고 말합니다만 그들은 그 임무(project)를 사랑하는 것 같습니다.
필요한 것이 생기면 언제든지 말씀해 주세요.
제가 구할 수 있는 것이라면 무엇이든지 보내드리겠습니다.
만약 보낼 수 없다면 또다시 부산을 찾아갈 이유가 생기지 않겠습니까?
이번에 소포를 보내려 하다가 겪고 느낀 이야기 하나 하지요.
재난백 속에 든 ‘물티슈’는 소포로 못 부친다니! 이 얼마나 웃기는 일입니까?
비행기로는 말할 것 없고 심지어는 배편으로도 못 부친 다기에
그런 물건은 비행기 탈 때 소지해도 아무 말 안 하는데 어째서 우편으로는 부칠 수 없냐고 항의했더니
우체국 직원 왈(曰), 물티슈는 물뿐 아니라 알코올로도 적실 수 있고 이 알코올이 문제를 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랍니다.
"그러면 병이나 캔에 든 각종 술은 어떻게 전 세계로 보내고 받을 수 있냐?"
안 그렇습니까?
하지만 그런 우스꽝스러운 룰과 규제에 대해 이제 더 이상 신경 쓰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것들이 나로 하여금 어머니를 모시고 부산으로 갈 수 있도록 도와주었으니까요.
우리가 부산으로 여행을 간다는 계획은 어머니를 참으로 긍정적으로 만들어 그녀에게 유익이 되었고 이것은 나에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이제 그 여행은 추억으로 남아 계속해서 어머니에게 좋은 영향력을 끼칠 것입니다.
부디 안녕하시고 부인에게도 안부 전해 주세요.
그날 제 카메라에 문제가 생겨 부인의 사진을 한 장도 남기지 못해 못내 유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