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03 자연을 가까이 책을 가까이

눈이 둘인 이유 2

by 한우물

1984년 9월, 필자는 부산발 도쿄행 KAL기 안에서 눈을 감고 앉아 이런저런 상념에 사로잡혀 있었다.

당시 일본 출장의 목적은 본원(本院) 암센터 개소를 앞두고 도쿄에 있는 유수한 암센터들을 둘러보고 벤치마킹하는 것.


그때 나는 난생처음 외국을 간다는 것에다 선진의학의 현장을 둘러본다는 기대감도 컸지만, 그보다 더 가슴 설레는 것은 일본이 그렇게 발전하게 된 원동력이 뭔지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하는 것이었다.


우리에게 일본은 어떤 나라였나?

반만년 우리 역사 중 4천8백 년 이상 제대로 나라 취급도 안 해주면서 나라 이름까지 왜(倭)라 부르며 낮춰보았던 그런 나라 아니었던가?


그런 그들이 오히려 우리를 식민지 삼고, 나아가 세계를 상대로 전쟁을 벌일 만큼 강성해졌고 패전 후에는 전쟁의 잿더미 속에서 40년이란 짧은 시간 만에 미국 다음가는 강력한 국력을 갖게 되었다. 도대체 그 괴력(怪力)의 원동력은 무엇일까? 그것이 참으로 궁금했었다.


나리타공항에 도착 후 도쿄 시내로 들어와 차로 이동하면서 건물과 도로를 유심히 살펴보니 서울과 별반 다를 바 없었다. 병원들을 방문해서도 그쪽 임상 의사들과 벌인 열띤 토론에서 영상의학 분야에 관한 한 그들에게 전혀 밀리지 않고 오히려 한 수 가르쳐 주는 입장에 서게 되자 ‘이거 뭐야? 아무것도 아니잖아!’ 하는 우쭐한 생각까지 들었다.


하지만 이러한 나의 자만심은 전철을 탔을 때 여지없이 무너졌다.

퇴근 무렵이라 전철 안은 붐볐는데, 좌석에 앉아 있는 사람들은 말할 것 없고 서 있는 사람들까지 절반 이상이 무언가를 읽고 있었다. 전철 안이 어떤 곳인가? 책 읽기에는 최악의 장소가 아닌가? 퇴근 시간이 어떤 시간인가? 종일 일하고 다들 지친 시간 아닌가? 그런데도 저렇게 많은 사람이 저런 곳에서 책을 읽고 있다니!


“그래, 바로 저거야. 저 엄청난 독서열이 이 나라 국민을 일깨우고 저토록 부강하게 만들었구나. 저런 독서열이 식지 않는 한, 저 나라는 결코 망하지 않을 것이다. 무서운 나라다.”

그때 나는 전율을 느꼈다.


인간이 깨달아 가는 과정에 있어서 첫째로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은 자연이다.

그러나 사람이 깨달음을 얻기 위해 자연 속에서 일생을 보낸다 하더라도 100년도 채 안 되는 짧은 시간 안에 풀 수 있는 자연의 비밀이 몇 가지나 되며, 몇 사람에게나 그 깨달음을 전수할 수 있을까?


그래서 인간은 오랜 세월 동안 천천히, 아주 서서히 발전해 왔다. 그러다가 문자가 만들어지고, 종이가 만들어지고, 인쇄술이 발달하면서 그 발전 속도는 기하급수적으로 빨라져 오늘날에 이르렀다.

독서란 다른 사람들이 많은 시간과 공을 들여 깨우친 것을, 일생을 통해 깨달은 것을, 책이란 매개체를 통해 간접적인 방법으로 순식간에 습득하게 해주는 요술 방망이 같은 것이다. 이 얼마나 경이로운 일인가.


우리 국민은 세계에서 최고로 교육 수준이 높고, 자신의 노후대책도 옳게 준비 안 하면서 자식 교육비는 세계에서 가장 많이 쓰는 무모한 부모들이 사는 나라다. 우리 선조들은 예로부터 무(武)보다는 문(文)을 숭상했고 선비는 온종일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책만 읽었다. 양반들은 말할 것 없고 상민들도 밥은 굶어도, 자신은 무식해도, 자식들 서당(書堂)에는 보냈다.


그런데, 이런 나라의 성인 절반 이상(54.5%)이 일 년에 책 한 권 안 읽고(2021년 문체부 통계), 휴대폰은 하루에 5시간이나 본단다(세계 3위).


인간의 발명품 중 스마트폰만큼 편리한 물건이 또 있을까? 그것은 이제 없어서는 안 될 필수품을 넘어 우리 생활의 일부가 되었다. 그만큼 유용한 물건이다.


하지만 쉴 새 없이 폰을 들락거리는 내용물 중에 가슴을 적실 만한, 깨달음을 줄 만한, 영적 양식이 될 만한 내용이 과연 얼마나 될까? 오래도록 기억 속에 남을 문자 대화 내용은 또 얼마나 될까? 대부분 내일이면 생각조차 나지 않는 잡담 수준 아니던가?


하루는 24시간. 잠자는 데 8시간, 일하는 데 8시간, 먹고 쉬는데 2시간, 출퇴근에 최소한 1시간을 쓰고 나면 남는 건 고작 네댓 시간인데, 이 전부를 폰 따위에 정신 팔고 있기에는 인생이 너무 아깝지 아니한가? 어떻게 받은 생명인데!


우리의 미래인 자라나는 아이들을 보며 부모가 그들에게 무엇을 해주어야 할 것인지에 대해 생각해본다.


이제 우리 틈만 나면 아이들을 데리고 산으로 들로, 강으로 바다로, 공원으로 가자. 그들로 하여금 자연을 보고 느끼며, 자연의 소리를 듣고 자연과 대화하며, 자연과 친구 되게 하자. 그리하여 아이들이 자연을 닮은 심성을 갖게 하자. 맑고 밝고 꾸밈없고 거짓 없는 그 해맑은 심성 말이다.


그리고 그들 손에 폰 대신 책을 쥐여 주자.

폰은 보고 책은 읽는다. 보는 것(seeing)은 주로 느끼는 것(feeling)이고 읽는 것(reading)은 생각하는 것(thinking)이다. 보고 느끼는 것은 대뇌피질을 살짝 건드리고 가슴을 적시지만 읽는 동안에는 끊임없이 생각하게 되고, 읽고 나면 가슴을 울리며 뇌리 깊이 남는다.


그러므로 폰만 보고 큰 아이와 책을 읽고 자란 아이는 사고(思考)의 깊이부터 다르고 날이 갈수록 습득하는 지식의 수준과 결이 확연히 달라진다.


하나님이 눈을 두 개씩이나 준 이유는 한 눈으로는 자연을, 또 한 눈으로는 책을 보며 많이 느끼고 많이 배우고 많이 깨달으라고 그리한 것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