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둘인 이유 1
조물주는 하나로 끝낼 수 있는 눈을 왜 두 개씩이나 주었을까?
그 이유는 뭐니 뭐니 해도 두 눈으로 많이 보고 많이 배우라는 뜻 아니겠는가? 무엇을 보고 배우라는 걸까?
첫째는 자연이다.
왜 자연인가?
자연 속에는 우리가 알고 싶은 것. 알아야 할 그 모든 것에 대한 해답이 들어있기 때문이다.
지구(地球)는 태양계 속의 조그마한 별로서 태양 주위를 공전하는 8개의 행성 중 하나다.
태양계는 은하계(銀河系)의 한 일원으로서 은하계는 수천억 개 이상의 별, 가스성운, 암흑성운 등으로 이루어지고 이 속에는 태양과 같이 스스로 빛을 발하는 항성만 약 1,000억 개가 있다.
이러한 은하계 또한 우주(宇宙)의 한 단위일 뿐 우주는 수많은 은하로 구성되어 있다고 하니 우리가 머물고 있는 지구라는 별은 무한한 시공간 속의 한 작은 점에 불과한 것이다.
이 보잘것없는 자그만 지구라는 별도 초속 29,783km의 속도로 태양 주위를 공전한다.
인간 총알이라는 사람이 죽을힘을 다해 달려도 1초에 고작 10m 뛴다.
그런데 지구는 일 초에 2천 9백 7십 8만 3천m를 쉼 없이 달린다.
그것도 그냥 달리는 것이 아니라 초속 465m의 속도로 팽이처럼 뺑뺑이까지 돌면서 말이다.
그러니 저렇게 많은 별들이 그렇게나 빠른 속도로 돌다 보면 쉴 새 없이 서로 부딪히고 폭발해서 매일 밤 하늘은 불꽃과 굉음으로 정신없을 테고 지구 역시 떨어져 내리는 수많은 우주 파편으로 벌써 폐허가 되고도 남았을 터인데 어제도 오늘도 밤하늘은 고요하고 영롱하게 빛날 뿐 아침이면 어김없이 해가 뜨고 밤이면 달이 뜨고 봄이 가면 여름이 오고 가을이 가면 겨울이 온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그것은 이 우주가 혼돈 속에서 우연히 아무렇게나 제 마음대로 생겨난 것이 아니라 인간이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정교한 법칙에 따라 만들어지고 그 법칙에 따라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운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 인간은 신의 자리를 넘볼 만큼 똑똑해졌고 그것은 다 자연과학 덕분이다.
자연과학(自然科學)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자연의 생성과 운행원리를 연구하는 학문이다.
그러면 인간이 본시 똑똑해서 자연의 이치를 단번에 깨달아 버렸나? 아니다.
인간은 언제나 자연이 주는 힌트를 보고 자연이 낸 퀴즈 문제를 하나하나 풀어가면서 조금씩 현재진행형으로 깨달아온 것뿐이다.
공중을 나는 새가 있기에 그 새를 보고 우리도 날 수 있다는 꿈을 꿀 수 있었고,
그 새의 형상을 본떠서 날틀의 원형(原形, prototype)을 만들 수 있었고,
그 새의 나는 모습을 보고 공중을 나는 원리를 터득하게 된 것이다.
자연이 인간에게 가르치는 것이 어디 이것뿐이겠는가?
몇 해 전, 한 지인이 카톡으로 보내준 어떤 스님의 즉문즉설(卽問卽說) 동영상을 보고 배를 잡고 크게 웃은 후 처음엔 재미로, 나중엔 마음공부의 목적으로 보게 되었는데 볼 때마다 묻는 사람과 대답하는 사람에게 감탄을 금치 못한다.
"바람난 며느리가 집을 나갔는데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우유부단한 성격을 어떻게 하면 고칠까요?”
“여자만 보면 마음이 동하는데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런 게 어디 스님한테 물을 질문인가?
스님이 어떤 사람인가? 속세를 떠난 사람이다. 세상사 경험해보지 못한 사람들이다.
그들 모두 자식 역할은 해보았으나 다른 역은 해본 적이 거의 없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대답하는 걸 보면 마치 그 온갖 역할 다 해 본 것처럼 말하는데 별로 트집 잡을 말이 없다.
오히려 “아니 우째 저래 잘 아노? 장가도 안 가 본 사람이!” 하면서 놀라고,
실타래처럼 얽히고설킨 그 기막힌 사연들 앞에 내놓는 명쾌한 해답에 놀란다.
한마디로 한 도(道)가 통한 사람이다.
그 도는 어디서 무얼 통해서 얻었을까?
그것은 아마도 경전(經典)과 기도와 선(禪)을 통한 것이리라.
하지만 이런 것은 투자하는 시간과 정성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일반 신자들도 할 수 있다.
게다가 신자는 실제 세상살이를 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왜 신자 중에는 이런 도인(道人)이 잘 나오지 않고
세상살이해 본 적 없는 승려는 어떻게 저토록 훤하니 꿰뚫고 있을까?
그것은 스님들이 거주하는 산이라는 자연 속에 해답이 있지 않을까?
인간의 언어가 아닌 자연의 언어로 들려주는 자연의 가르침.
그 가르침은 인간도 자연의 한 부분인지라 세상 돌아가는 이치나 자연의 이치가 서로 다르지 않다는 사실에 대한 통찰력일 것이다.
자연 속에 내가 있고 내 속에 우주가 있다,
자연과 가까이하며 자연과 함께 호흡하고, 자연을 사랑하며 자연의 품성을 닮아갈 때 인간은 죄 없는 본성(本性)을 회복하며 참된 평안과 행복을 맛볼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눈을 둘씩이나 주셨나 보다.
두 눈 크게 떠, 자연이라는 이 큰 스승을 보고 마음껏 후회 없이 배우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