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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우물 Oct 18. 2024

위징을 구한 당태종의 아내

기지와 재치

위징과 당 태종


이세민(李世民) 이란 사람은 당나라 2대 황제로서 우리에게는 당 태종으로 널리 알려져 있고 그는 23년 간 재위하면서 당 왕조 300년의 기초를 다진 사람이다. 중국의 역사상 오리지널 한족(漢族)이 한 왕조를 100년 이상 유지한 일이 거의 없는 것을 생각하면 당나라가 300년을 유지할 수 있었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 당 태종은 뛰어난 군주의 자질을 타고났는데, 그중에 큰 장점 하나가 바른말 하는 신하를 옆에 많이 두었다는 점이고 그러한 신하 중 대표적 인물이 바로 위징(魏徵)이란 사람이다. 하지만, 세민에게 위징은 죽이고 싶을 만큼 악연으로 얽힌 사람으로서 그 사연은 다음과 같다.


수나라 양제(煬帝)가 네 차례에 걸친 고구려 침공의 실패로 국력을 소진한 데다 정국까지 어지러워 각지에서 반란 세력이 들고일어났다. 이때 장안에서 봉기한 이연(李淵)이 모든 세력을 평정한 수나라를 멸하고 당나라를 세우게 된다.


이연에게는 건성, 세민, 원길이라는 세 아들이 있었는데 이연이 반란에 성공하여 당 왕조가 시작되자 장남인 건성(健成)이 태자로 책봉되고, 태자 건성은 평소 눈여겨본 위징을 태자세마(太子洗馬)라는 측근으로 등용하여 비밀스러운 일을 의논하는 책사 역할을 맡기게 되었다.  


한편, 이연이 천하를 통일하게 된 과정에서 가장 큰 공을 세운 사람은 둘째인 세민(世民)이라 그를 그대로 두었다가는 큰 후환이 될 것 같아 위징은 태자에게 그를 제거할 것을 강력히 건의했으나 우유부단한 건성이 우물쭈물하는 사이, 세민이 자객을 시켜 현무문(玄武門)에서 형제 둘을 죽이고 만다.(현무문의 변)


이 사건 후 세민은 위징을 잡아다가 “이놈, 어이하야 우리 형제들 사이를 이간질했느냐?”라고 문초하자 위징은 “태자는 제 상전이었습니다. 그러니 제가 태자를 위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만일 태자께서 내 말을 들었더라면 절대로 오늘과 같은 화는 당하지 않았을 것입니다.”라고 결연히 말했다. 


이쯤 되면,  자신을 죽이라고 간언한 이런 고약한 놈의 목을 치는 것이 당연하였으나 세민 역시 오래전부터 위징을 높이 평가해 온 데다 이런 당당한 그의 태도에 반하여 그를 죽이는 대신 서기관으로 임명하고, 두 달 후 황제의 자리에 오르자 간의대부(諫議大夫)라는 측근으로 발탁하게 된다. 


이때 위징의 나이 마흔일곱, 그는 당 태종을 만남으로써 제2의 인생이 시작되었고 AD 634년 64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기까지 17년간 이세민을 보좌하면서 태종이 명군이 되게 하는 데 없어서는 안 될 대표적인 충신이 되었다.

그는 기회 있을 때마다 왕에게 직언을 서슴지 않았고 그 덕에 태종은 위험한 고비를 잘 넘길 수 있었는데 그중 대표적인 예가 고구려와 관련된 간언이다.


태종의 가장 큰 염원은 수나라를 망하게 한 철천지원수 고구려를 쳐 정복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태종이 그런 뜻을 내비칠 때마다 “고구려를 잘못 건드렸다간 나라가 망합니다.” 라며 죽자 살자 뜯어말려 그가 죽기 전까지는 고구려를 침공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가 죽자, 왕의 가려운 곳을 긁어주려는 주변 신하들의 부추김과 자신의 야망이 맞아떨어져 태종은 위징의 무덤에 채 풀도 마르기 전에 고구려로 쳐들어갔다가 대패하고 그 역시 전투에서 입은 부상의 후유증과 쓰라린 마음의 병으로 시름시름 앓다가 4년 뒤인 649년 51세의 꽃다운 나이로 사망하게 된다.

전쟁이 끝난 후 그는 탄식했다.

“만약 위징이 살아있었더라면 내가 이런 무모한 전쟁은 벌이지 않았을 텐데.”         


당 태종의 아내


이런 위징을 태종이 얼마나 높이 평가하였는지는 다음의 일화에서 잘 나타난다. 

위징이 늙어서 죽자, 태종은 이렇게 한탄하며 슬퍼하였다.    


동으로 거울을 만들면 의관을 바르게 할 수 있고, 

 과거를 거울로 삼으면 흥망성쇠를 알 수 있으며, 

 사람을 거울로 삼으면 이해득실을 알 수 있다. 

 짐은 늘 이 세 개의 거울을 가지고 나의 잘못을 고치고 예방하였다. 

 지금 위징을 잃었으니 거울 하나가 없어지고 말았다.”     


이렇게 바른말 하는 신하를 끔찍이 아낀 태종도 사람인지라 때로는 그런 말이 무지하게 듣기 싫었던 모양이다. 

한 번은 그가 정말 화가 나서 황후 전에 들어와  

“이놈의 시골 영감태기, 내 죽여 버리고 말겠어!”라고 씩씩대며 말하자 황후가 왜 그러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태종이 “위징이란 영감이 언제나 조정에서 나를 모욕한단 말이오.”라고 대답했다.      

이 말을 들은 황후는 밖으로 나가 정장으로 옷을 갈아입고 와서는 태종에게 큰절을 올렸다. 

황후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태종이 영문을 몰라 

“아니 갑자기 큰절을 왜 하시오?”라고 묻자 황후가 말하길,

     

“천자(天子)가 명군이면 신하가 바른말을 한다고 들었습니다. 

위징이 폐하에게 그렇게 거리낌 없이 직간할 수 있다는 것은 

폐하가 그만큼 명군이시란 증거가 아니겠습니까? 

이에 신첩이 어찌 축하의 절을 올리지 않을 수 있으리이까? "     


이 말을 들은 태종은 아주 흡족해하면서 위징에 대한 미운 감정이 금방 사라졌다고 한다.  



당 태종이 명군으로서 두고두고 중국 사람들의 존경과 사랑을 받는 것은 위징과 같은 현명한 신하뿐 아니라 이렇게 지혜로운 아내가 곁에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세상 살다 보면 내가 위기에서 빠져나와야 할 때도 있지만,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나 아끼는 사람이 그런 형편에 처했을 때 구해내야 하는 상황도 발생한다.

이럴 때 어떻게 하는 것이 현명한 방법인지 당 태종의 아내를 통해 멋진 한 수를 배운다.

  


※ 표제 사진 출처: 에펨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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