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령과 영조
조선시대, 춘궁기(春窮期)에는 먹을 것이 없어 많은 백성들이 굶어 죽을 정도였다.
이런 먹을 것도 부족한 나라에서 술까지 쌀로 만들다 보니 심한 흉년이 들 경우, 몇몇 왕은 금주령(禁酒令)을 내리기까지 하였고 그중 한 분이 바로 영조다.
이렇게 내려진 금주령은 어명(御命)이다 보니 이를 어길 시에는 술을 빚은 자는 사형, 술 마신 자는 노비로 삼는 엄벌에 처했다.
어느 날 한 백성이 아버지 제사를 지내기 위해 술 한 병을 빚었다가 붙잡혔다.
자기가 마시려고 한 것도 아니요, 몰래 팔려고 한 것도 아니요, 아버지 제사 지내려고 빚었다는데 사형을 시키자니 충과 효를 나라의 근본이념으로 삼았던 조선에서 헐벗고 굶주린 백성 살리자고 한 일이 오히려 백성 잡을 판이요, 그렇다고 풀어주자니 이것도 국법에 어긋나는 지라 왕의 고민은 깊어졌다.
백성도 살리고 국법도 지킬 방도.
이것을 찾으려 고심하던 왕은 드디어 기가 막힌 아이디어를 하나 냈다.
다음날, 영조는 백성이 빚었다는 술을 가져오라 해서 한 모금 맛을 보고는 놀란 듯 말했다.
“아니, 이건 술이 아니라 식초지 않은가! 우의정도 한번 맛을 보시오.”
이에 우의정도 한 모금 맛을 보고는 “예, 이건 술이 아니라 식초이옵니다.”라고 대답했다.
임금이 식초라면 식초고 술이라면 술인 시절, 우의정이 무슨 배짱으로 임금의 말을 부인하겠는가?
그러자 임금은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그 죄 없는 백성을 풀어주라."라고 일렀다.
이렇듯,
힘없는 백성들에게는 관대했던 영조도 관리들이 금주령을 어길 시에는 엄벌에 처했다고 하니
조선의 왕 중 최장수 재위 기간(52년, 1724-76)에 '대왕'이라는 칭송이 아깝지 않은 분의 흐뭇한 일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