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 Shut Down – 입을 다물어라

by 한우물

노년의 지혜는 입술이 아니라 귀에서 완성된다. '침묵은 금'이라는 격언을 굳이 빌리지 않더라도, 절제되지 않은 언어가 얼마나 많은 화(禍)를 부르는지 우리는 경험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나이가 들수록 침묵의 공간은 줄어들고 그 자리를 장황한 달변이 채우곤 한다. 타인의 말을 경청하기보다 내 삶의 궤적을 쏟아내는 데 몰두하고, 했던 말을 반복하며 스스로를 고립시키는 자신을 발견하는 것은 서글픈 일이다.


이러한 변화는 단순한 노화 현상이 아니라 노년이 마주한 복잡한 사회적 심리적 변화에서 오는 결과물이다.

이에 본 장에서는 나이가 들수록 말이 많아지는 속내와 통제되지 않은 말이 관계에 어떤 균열을 만드는지 살펴보고, 나아가 '해야 할 말'과 '삼가야 할 말'을 변별하는 지혜를 통해 입을 닫음으로써 오히려 타인의 마음을 여는 품격 있는 소통의 길을 제안하고자 한다.


나이 들수록 말이 많아지는 이유

나이가 들수록 말이 많아지는 현상의 이면에는 무료함, 고립감, 존재의 상실감, 그리고 외로움이 자리 잡고 있다. 은퇴와 함께 평생의 터전이었던 직장을 떠나면 당장 할 일이 없어져 무료해지고, 이와 동반되는 사회적 관계망(social network)의 급격한 위축은 고립감과 함께 존재의 상실감으로 다가오고, 확연히 얇아진 지갑의 두께와 갈수록 늘어나는 신체적 제약은 타인과의 교류 기회를 더욱 위축되게 만들어 외로움은 더해만 간다.

이러한 환경에서 어쩌다 마주한 대화의 기회는 그동안 억눌려온 소통의 욕구를 한꺼번에 터뜨리는 분출구가 되어 일방통행식으로 말의 물줄기를 흘려보낸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상대방은 이러한 사정을 일일이 헤아려주지 않는다. 오히려 일방적인 말의 홍수는 상대방의 피로감을 유발하고, 결국 소중한 관계를 멀어지게 만드는 비극적인 결과를 초래할 뿐이다.


말 많음의 폐해

어느 동기회에서의 씁쓸한 기억

오랜만에 동기회 모임에 참석했다. 오랫동안 보지 못한 동기들 얼굴 떠올리며 설레는 마음으로 예약된 룸으로 향했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모두들 반갑게 인사하며 서로의 근황을 묻고 친구들 변한 모습을 감상하며 즐거워했다. 식사와 함께 술 한 순배가 돌자 다들 말이 많아졌다. 그럴 만도 했다. 하지만 내 맞은편에 앉았던 한 친구의 말이 갈수록 많아지고 길어지자 다른 사람들의 말할 기회는 점점 줄어들었고, 8명이 둘러앉은 둥근 탁자 하나는 그의 원맨쇼 무대처럼 변해가면서 나는 아예 입을 다물어 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그날 이후, 나는 그 동기 모임에 다시는 나가지 않게 되었다.


디지털 공해

나이가 들며 말이 많아지는 현상은 이제 입술을 넘어 손가락 끝으로 전이된다. 대면의 기회가 줄어든 자리를 카카오톡 같은 모바일 메신저가 채우면서, 절제되지 않은 말들이 '공유'라는 이름으로 쉼 없이 쏟아지고 있다. 그러나 정제되지 않은 디지털 소통은 직접 나누는 대화보다 더 집요하게 상대의 일상을 파고드는 법이다.


처음에는 그저 좋은 것을 함께 나누고 싶다는 순수한 의도에서 시작한다. 감동적인 글귀나 유익한 영상을 보내고 몇몇의 긍정적인 반응을 얻으면, 어느새 그것은 일종의 사명감으로 변질된다. 이때부터는 상대방의 기분이나 상황은 안중에도 없다. 마치 쓴 보약을 아이 입에 강제로 밀어 넣는 부모처럼, '모두를 위한 일'이라는 오만한 확신 속에 무차별적인 발송이 시작된다.


본인은 이를 친구를 위한 선행이라 굳게 믿지만, 받는 이에게 그것은 명백한 '디지털 공해'다. 원치 않는 '까똑' 소리에 시도 때도 없이 노출되는 것은 누군가에게는 심각한 정서적 스트레스다. 특히 관계가 가깝거나 어려운 사이일수록 고통은 배가 된다. 한두 번 예의상 보낸 '좋아요' 이모티콘을 '더 보내달라'는 신호로 오해하는 순간, 관계의 피로도는 극에 달한다.


진정한 공유와 공감은 상대방의 선택권이 보장된 공간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카카오 스토리나 블로그나 페이스북처럼 열린 공간에 게시하는 것은 상대방을 내 집 안마당에 초대하는 것과 같은 행위이지만, 상대의 의사를 무시한 채 개인의 카톡방에 메시지를 직접 꽂아 넣는 것은 남의 안방에 무단침입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내가 좋게 보는 것이 남에게도 반드시 좋을 것이라는 생각은 위험한 착각이다. 보내기 버튼을 누르기 전, 과연 상대가 이 행위를 고맙게 여길지 어떨지 단 한 번만이라도 자문해 보아야 한다. 이틀이 지나도 읽지 않거나, 두 번 연속 읽고서도 아무 반응이 없다면 바빠서가 아니라 거절의 표시라는 사실쯤은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

인맥을 유지하는 비결은 끊임없이 무언가를 보내는 정성에 있는 것이 아니라 조용히 있고 싶은 상대의 권리를 존중하고, 나의 존재가 상대에게 소음이 되지 않도록 멈출 줄 아는 절제에 있다.


Shut Down의 의미

‘Shut Down - 입에 셔터를 내려라’는 말은 무조건 입을 다물라는 말이 아니다.

말 대신 대화를 하고, 대화를 통해 소통하라는 것이다.


대화란 무엇인가?

대화는 서로 말을 주고받는 것이다. 이는 영미권 사전에도 'give and take'로 나오고, 일본어 사전에도 '야리토리스루(やり取りする), 즉 ‘주고받다’라는 표현으로 나온다. 다시 말해 대화의 핵심은 먼저 주고 뒤에 받는 것에 있다.


먼저 준다는 게 무얼까? 내 말을 먼저 던지는 것이 주는 것일까? 아니다. '상대방의 말을 들어주는 것'이 주는 것이다. 그러고 나서 '상대방이 내 말을 들어주는 것'을 받는 것이다. 그래서 내 말 하기 앞서 먼저 남의 말을 경청하라는 것이다.


경청이란 그저 입 다물고 듣고만 있는 게 아니다.

적절한 맞장구와 추임새로 말하는 사람의 기운을 돋워주고, 상대의 말이 주제를 벗어나 가지를 치며 겉돌 때는 본래의 맥락을 잃지 않도록 중간중간 흐름을 짚어주고, 같은 말을 반복할 때는 짜증 대신 "아, 아까 한 그 얘기?"라며 주의를 환기시켜 주는 것이다. 이럴 때 대화는 물 흐르듯 흘러가고 소통은 서로의 가슴을 관통한다.


나이 들어 혀는 늙지 않지만, 듣는 귀는 지치고, 마음의 여유는 줄어들기 마련이다.

남의 말을 잘 들어주며 대화를 이끌어가는 사람과 내 말하기에 바빠 남의 입을 가로 사람 중 누가 더 환영받고 대접받으며 살아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