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 Put Down – 내려놓아라

by 한우물

인생의 제1막이 끊임없는 성장과 쟁취를 통해 무언가를 채워가는 과정이었다면, 제2막은 그 모든 것을 잘 마무리하고 아름답게 떠나기 위한 준비 과정이다. 인생의 전반전이 산에 오르는 과정이라면 후반전은 산에서 내려오는 과정이다. 산은 오를 때보다 내려올 때 더 위험하다. 그래서 내려갈 때는 먼저 짐을 덜어내야 한다. 어깨가 가벼워야 발걸음이 가볍고 발걸음이 가벼워야 잘 넘어지지 않는다.


인생 제2막. 이제 과거라는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자유로운 영혼이 되어보자. 그럴 때 우리는 다음 단계로 도약할 중요한 디딤돌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내려놓아야 할 것들

1. 과거의 영광

“저 사람 누구지?” "그 사람 어떤 사람이야?"

이 질문에 우리는 습관적으로 직업, 직함, 전공, 회사 이름 등 그가 지닌 사회적 정체성으로 답한다. 나 역시 처음 만나는 사람과 인사할 땐 항상 명함을 내밀었고, 그것이 나를 대변했다.


하지만 그것은 우리가 하는 일이지, 우리 자체가 아니다.

옷을 입는다고 옷이 내가 되지 않듯, 직함을 가진다고 직함이 내가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평생 그 옷과 자신을 동일시하며 산다.


그러다가 정년·퇴직·은퇴라는 생소한 상황과 마주하는 순간, 우리의 옷은 강제로 벗겨지고 벌거벗은 자신과 마주하게 된다. 당황스럽다. 당황스럽다 못해 황당하기까지 하다. 그래서 새 명함을 판다.

현직 시절 잘나가던 사람일수록 더 많이 판다. 자기 이름 밑에 (전) 00 교수, 장관, 국회의원 등이 새겨진 명함을 가지고 다니며 마치 자신이 대단한 존재라도 되기나 한 것처럼 행세하고 그에 상응한 대접을 받기 원한다. 나도 그랬다.


2018년 11월. 정년 퇴임 후 석 달째 되던 날이었다.

롯데호텔에서 전문의 연수 교육이 있었다. 접수대에서 이름표 찾고, 참가자 대장에 이름 석 자 쓰고, 의사면허 번호 적고, 직장 난에 근무처를 적을 차례였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항상 ‘부산백병원’이라 적었는데 갑자기 적을 이름이 없어졌다. 잠시 동안 멍하니 그 빈칸을 쳐다보았다. 그때 그 공간이 얼마나 크게 다가오던지. 결국 아무 글자도 써넣지 못했다.


다음날, 나의 사회적 정체성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돌아온 이름은 다음과 같았다.

'연금수령(年金受領) 경로우대(敬老優待) 무직(無職) 무명작가(無名作家)'

참 뼈아픈 단어들이었다.


그래서, 예전처럼 내가 직접 디자인해서 명함을 하나 팠다. 막상 새 명함을 받아보니 적지 않은 수식어가 붙어있었다. 게다가 (前)이라는 구차한 단어까지 떡하니 자리 잡았다.

예전에 나는 자신의 명함에 온갖 잡다한 직함 다 갖다 발라 놓은 사람을 만나면 '-한 인간'이라며 눈을 내리깔고 대했다. 그런데 이제 내 꼴이 딱 그랬다. "참 찌질한 인간."

그 후 그 명함은 세상 구경 못한 채 책상 서랍 속에서 잠들었다.


그렇다. 과거는 부도난 수표나 마찬가지다.

이걸 내밀며 남들에게 그에 상응한 값을 치르라는 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일이다.


2. 과거에 대한 후회와 자책감과 한(恨)

내려놓아야 할 것이 영광뿐이라면 차라리 쉬울는지 모른다.

정작 우리 마음을 돌덩이처럼 무겁게 짓누르는 것은 ‘그때 그러지 말아야 했는데’라는 후회와 ‘내가 못 할 짓을 했다’라는 자책감이다. 과거의 잘못된 선택이나 실수로 맛본 뼈아픈 실패와 상실은 쓰라린 후회로 남고, 내가 타인에게 입힌 피해나 가해는 끝날 줄 모르는 자책감이나 죄책감으로 남는다.


인생의 중요한 굽이마다 골리앗처럼 앞을 가로막고 서서 나를 매몰차게 내치던 사람들과 그 과정에서 받은 씻을 수 없는 인격 모독은 내 가슴에 꽂힌 화살이 되어 쉬 뽑히지 않고, 믿었던 자가 내 등에 꽂고 돌아선 배신의 비수는 어떻게 손 쓸 도리 없이 영원히 남았다. 하지만 이들은 모두 스스로 자신을 과거의 감옥에 가두는 행위이며, 이는 남은 생의 에너지를 끊임없이 소모시킬 뿐이다.


과거의 잘못된 선택이나 실수에 대해 후회하는 것이라면, 인간은 누구나 완벽한 존재가 아님을 인정하고, 젊은 시절 부족했던 내 모습도 당시로서는 최선이었음을 받아들이자. 타인에 대한 자책감이나 죄책감에 시달린다면 진정으로 회개하고 때를 놓치기 전에 상대에게 용서를 구하자.


내가 당한 부당한 거부와 인격 모독과 수모에서 오는 한은 하나님이 나를 더욱 강건하게 만들기 위해 그들을 도구로 사용하셨다 생각하고, 내 등에 칼을 꽂은 자는 그에게 돌아올 업보를 생각하며 불쌍히 여기고 그를 위해 기도하자.


이럴 때 우리는 진정한 자유를 누릴 수 있을 것이다.


Put Down의 의미

과거를 내려놓으라는 것은 과거를 잊으라는 말이 아니다.

과거를 외면하라는 말은 더더욱 아니다.

과거를 직시하되 과거의 족쇄에서 벗어나 자유로워지라는 말이다.

어제의 짐을 내려놓아야만 오늘을 온전히 살아낼 힘이 생긴다.

과거의 영광은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겨두고, 후회와 한은 삶의 교훈으로 승화시킨 채

지금, 이 순간의 공기와 햇살에 집중해야 한다.


불후의 명작들은 어떻게 탄생했는가? 그저 풍족하고 행복한 상태에서 만들어졌던가?

아니다. 그들 대부분은 예술가의 고통과 절망 속에서 태어났고, 그들은 그 고통을, 그 절망을, 예술로 승화시켰다.


그런 과거가 있었기에 오늘의 내가 있다.

그러기에 내 인생길에서 마주한 모든 인물과 사건은 나름대로 다 의미가 있다.

그 의미를 어떻게 해석하고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떻게 승화시키느냐는 오롯이 나의 몫이다.


과거의 족쇄에 묶여 과거의 음침한 감옥에 갇혀 살 것인가? 아니면, 얼룩진 과거의 조각보들을 아름답게 채색하여 멋진 작품으로 만들어가며 살 것인가? 이것 역시 나의 선택에 달렸다.



※ 사진 출처: 2015-03-20 불영사에서 촬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