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전반전이 '성취'를 향한 빠른 질주였다면, 후반전은 '방향'과 '깊이'를 음미하는 시간이다.
우리는 평생 앞질러 가기 위해, 혹은 뒤처지지 않기 위해 가속 페달을 밟으며 살아왔다. 그러나 노년에 이르러서도 여전히 그 속도감을 유지하려 한다면 몸과 마음에는 과부하가 걸리고, 삶의 참모습은 뿌연 안개처럼 지나가 버리고 말 것이다.
‘Slow Down'이란 단순히 물리적인 움직임을 둔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삶의 주도권을 외부의 조급함으로부터 되찾아와 나만의 리듬을 회복하겠다는 선언이자 가속 페달에 내주었던 우선권을 핸들로 되돌려주는 방향의 전환이다.
삶의 속도를 줄여라
나이가 들면 삶의 전반적인 속도를 줄여야 한다.
속도를 줄인다는 것은 내가 '바로, 지금, 여기'에 온전히 존재함을 의미한다.
젊은 시절의 우리는 내일을 위해 오늘을 기꺼이 희생하며 살았다.
하지만 오늘을 즐기지 못하는 노년의 내일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속도를 늦추는 순간, 비로소 '현재'라는 보석의 진가가 보이기 시작하며 우리의 일상은 하나의 예술이 된다.
새벽어둠을 뚫고 떠오르는 여명의 눈동자.
한낮의 바다 위에 구슬처럼 반짝이는 빛나는 태양의 얼굴.
저녁노을이 끌고 가는 마지막 옷자락의 잔상….
이런 아름다움은 서두르는 이들은 결코 맛볼 수 없는 인생의 진미다.
천천히 먹어라
식사를 천천히 한다는 것은 건강으로 나아가는 '첫걸음'이자 그 자체로 건강을 지키는 파수꾼이 된다.
'속이 편해야 몸이 편하다'라는 말이 그냥 나온 말이 아니다.
한 숟갈 입에 넣고 최소한 '70번'은 씹고, 한 끼 먹는데 최소한 '20분'은 투자하고, 딱 한 숟가락만 더 먹고 싶다 할 때 그 숟가락 딱 내려놓아라. 그리하면 소화는 '쑥쑥', 흡수는 '좍좍', 대변은 '술술', 활기는 '철철'. 뱃살은 솔솔. 세상 어디에도 이보다 더 좋은 보약은 없다(한상석, 『아무튼 사는 동안 안 아프게』, 더블엔, p. 17-23). 필자는 이 방법으로 먹을 것 다 먹어가며 1년에 걸쳐 10kg을 감량하였다.
이처럼 천천히 오래 씹는 행위는 건강을 지킬 뿐 아니라 우리를 '맛의 진수'로도 인도한다. 천천히 오래 씹다 보면 음식 덩어리가 잘게 부서지고, 침 또한 샘솟듯 흘러나와 그것들을 분해하며 음식의 깊은 속 맛까지 즐길 수 있게 해준다
세상에 식도락만 한 낙도 없다. 순간적 쾌감의 강도로 따지자면 섹스만 한 게 어디 있겠냐마는, 횟수로 따지자면 먹는 낙에 비할 바가 못 된다.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하루 세 번 따박땨박 다 챙기고 가는 낙은 세상천지 어디에도 없다. 이런 즐거움을 급한 성질이나 식탐 때문에 제대로 음미하지도 못한 채 배만 잔뜩 채우다 배불뚝이가 되어 관 속에 들어가는 사람이야말로 참으로 가여운 사람이다.
음식을 대하는 태도는 '생명에 대한 경외심'과도 맞닿아 있다.
밥 한 그릇이 식탁에 오르기까지 거쳐 온 자연의 시간과 인간의 정성을 감사하며 즐겁게 식사하는 모습은 곁에서 지켜보는 이들에게조차 한 편의 '경건한 의식'을 보는 듯한 감동을 준다.
밥 먹는 태도는 그 사람의 '품격'을 투영하는 일종의 '리트머스 시험지'와도 같다.
아무리 화려한 옷과 교양 있는 말로 치장했을지라도, 식탐이라는 본능 앞에서는 그 허물이 벗겨지기 마련이다.
입가에 밥알과 양념이 묻은 줄도 모른 채 허겁지겁 떠 넣기 바쁜 사람.
입안 가득 음식을 머금은 채 말을 해대는 바람에, 언제 발사될지 모르는 밥알이라는 미사일로 맞은편 사람을 긴장케 만드는 사람.
급하게 먹으면서 "꺼억 꺼억" 하며 트림하는 사람.
밥 먹고 테이블에서 바로 이쑤시개로 이빨 쑤시는 사람.
이들에게서 과연 어떤 품격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인간의 진정한 품격은 화려한 겉모습이 아니라, 감사의 마음을 담아 정갈한 몸가짐으로 '천천히, 그리고 즐겁게' 음식을 대하는 여유로운 태도에서 비로소 완성되는 법이다.
천천히 움직여라.
노년의 삶을 단번에 무너뜨리는 가장 무서운 복병은 떨어지거나 넘어져서 다치는 ‘낙상 落傷’이다. 나이 들어 부러진 뼈나 끊어진 인대는 쉬 회복되지 않을뿐더러 장애로 이어지기 쉽고, 자칫 나머지 생을 요양병원에서 지내야 하는 비극으로 끝날 수도 있다.
그러니 천천히 걷는 것을 부끄러워하거나 조급해 하지 말라.
걸을 때는 바닥을 잘 살피고, 시각과 청각이라는 안테나로 앞과 옆을 스캔하며 한 걸음 한 걸음 신중히 내디뎌라. 이 느린 발걸음이야말로 노년의 존엄성을 지켜줄 가장 강력한 방패가 될 것이다.
섣불리 판단하지 마라
나이가 들어서는 사람을 판단함에 있어 더욱 신중하고 정확해야 한다.
섣부른 편견으로 소중한 인연을 밀어내거나, 검증되지 않은 호의에 쉽게 마음을 열어 상처받는 일을 경계해야 한다. 시간을 두고 상대의 말과 행동을 지켜보며 천천히 판단하는 태도야말로 타인에게는 공정함을, 자신에게는 인간관계의 안정을 선사한다.
Slow Life의 미학
'Slow Life'는 단순히 속도를 늦추는 기술이 아니라 우주와 조화를 이루며 삶을 관조하고 음미하는 마음의 여백이다.
조급함을 덜어낸 자리에는 평온이 깃들고, 그 온화한 기운은 주변 사람들의 마음을 따스하게 데우는 모닥불이 된다.
삶의 마지막 장에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서둘러 마침표를 찍는 것이 아니라, 곳곳에 쉼표를 넣으며 아름다운 선율의 악보를 완성해 가는 것이다.
인생의 저녁노을은 서둘러 지나가는 자에게는 그저 어둠의 전조일 뿐이지만, 멈춰 서서 바라보는 자에게는 세상을 황금빛으로 물들이는 경이로운 예술 작품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