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아름다운 노년을 위한 열두 가지 화두 '6 Up 6 Down' 가운데, 우리가 능동적으로 지향해야 할 '6 Up' 의 여섯 가지 태도를 살펴보았다. 이제부터는 비움으로써 오히려 충만해지는 '6 Down' 의 지혜 — 내려놓음의 미학 속으로 들어가 보자.
젊음 vs 노년
젊음의 시기가 목표를 향해 열정적으로 돌진하며 때론 불꽃 같은 성정을 드러내야 하는 때였다면, 노년은 그 뜨거운 에너지를 내면의 고요함으로 치환해야 할 시기이다. 이 고요함이야말로 노년의 품격을 완성하는 단단한 주춧돌이며, 세상으로부터 진정한 환대와 존경을 이끌어내는 묘약이다.
그러나 현실은 정반대인 경우가 많다.
나이 들수록 ‘성질 죽이는 것’이 더 어려워지고, 참을성은 얇은 유리잔처럼 깨지기 쉬워진다. 점잖던 사람도 노년이 되면 사소한 일에도 불같이 화를 내는 모습을 종종 본다. 도대체 왜 우리는 나이 들수록 평정심을 잃고 흔들리는 것일까?
나이 들어 화가 더 잘 나는 이유
이러한 변화를 단순히 노화에 따른 '성격 변화'로만 치부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생물학적으로 들여다보면, 이는 감정을 조절하는 뇌의 전두엽 기능이 약화되어 충동을 억제하는 ‘브레이크’가 헐거워진 탓이다. 게다가 에스트로젠이나 테스토스테론 같은 호르몬이 줄어들고, 행복을 느끼게 하는 세로토닌 같은 신경 전달 물질의 균형이 깨지면서 감정의 기복이 보다 심해진다.
여기에 더해 마음대로 움직여주지 않는 육체가 가져다주는 답답함과 울화, 관절염이나 만성 질환으로 인한 여러 가지 고통과 통증, 요실금과 변실금에 동반하는 인간의 존엄성에 난 상처, 불면증으로 인한 피로감 등은 그 자체로 신경을 곤두서게 만든다.
사회적 상실감 또한 간과할 수 없는 요인이다.
은퇴와 함께 찾아오는 지위 상실과 혼자되어가는 고립감, 경제적 위축에 따른 미래에 대한 불안감은 노년의 어깨를 짓누른다. 여기에 더해 잊을만하면 날아오는 동창생들의 부고장에 배우자와의 죽음까지 맞이하면 그 상실감은 형언하기 어려울 정도다.
이처럼 스스로 통제할 수 없는 환경과 무력해진 자신에 대한 좌절감이 해소되지 못한 채 쌓이다가, 결국 '화(火)'라는 방어 기제를 통해 분출되는 것이다.
화를 다스리는 세 가지 방법
어떻게 하면 화(火, anger)가 불러올 화(禍, disaster)를 최소화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감정의 노예가 되는 대신 감정의 주인 노릇을 할 수 있을까?
첫 번째 비결은 ‘반응 속도의 지연’에 있다.
화가 문제를 일으키는 순간을 들여다보면 공통점이 있다. 뭔가가 '빨리' 튀어나온다는 것이다. 먼저 얼굴이 굳어지고, 눈꼬리가 올라가고, 호흡이 가빠지며, 말이 생각보다 앞서 나간다. 그러므로 화가 치밀어 오를 때, 딱 3초간 멈추는 훈련이 필요하다.
순간적으로 성질을 죽이고 화를 가라앉히는 힘은 자극과 반응 사이의 이 짧은 ‘빈칸’에서 나온다. 누군가 내 속을 긁는 말을 했을 때, 가슴이 뜨거워지는 순간 심호흡을 하며 숨을 고르자. 깊게 들이마시고 내쉬는 단순한 호흡만으로도 흥분된 신경계를 진정시키고, 감정이 이성을 집어삼키는 것을 어느 정도 막을 수 있다.
그다음 단계는 ‘헤아림’이다. 상대방의 입장이 되어 한 번만 더 생각해 보는 것이다.
하나님이 사람 얼굴을 만들 때, 하나면 충분할 눈을 왜 둘씩이나 주셨겠는가? 하나로는 내 입장에서, 다른 하나로는 상대의 입장에서 바라보라고 그런 것 아니겠나. 이 생각만으로도 터질 것만 같이 팽팽한 감정의 풍선에 어느 정도 바람을 빼는 효과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보다 근본적인 해결책은 평소에 마음 다스리는 훈련을 하는 것이다.
나의 마음을 비워내는 명상(瞑想)과, 나의 마음속을 말씀으로 채우고 반추하는 묵상(黙想).
둘 중 어느 것을 하든, 그 습관이 몸에 배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게 매일 내 마음의 찌꺼기를 걸러내고 마음 근육을 단련하다 보면 내가 지핀 '화(火)'라는 불에 화상을 입는 빈도는 줄어들 것이고, 비록 입었다 하더라도 재빨리 평정심으로 돌아가는 회복 탄성력(recovery resilience)은 확실히 증가할 것이다.
Calm Down이 주는 세 가지 선물
이유야 어찌 되었든, 끓어오르는 화를 그대로 쏟아내는 것은 독을 삼키는 것이나 다름없고 노년의 삶을 더더욱 외롭고 황폐하게 만들 뿐이다. 나이 들어 '성질을 죽이라’는 것은 언뜻 보기에 남을 위한 배려 같지만, 실은 자신을 지키는 가장 강력한 방패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잦은 분노는 코르티솔을 분비해 혈압을 높이고 심장에 무리를 준다. 이미 약해진 노년의 몸에 감정적 폭발은 치명적인 독이다. 반면, 평온한 마음은 신체의 항상성(恒常性, homeostasis)을 유지하여 면역력을 높이고 건강 수명을 늘려주는 보약이 된다.
관계를 지키는 생명줄
가뜩이나 좁아지는 노년의 인간관계 속에서 까다롭고 성마른 노인 곁에는 아무도 남지 않는다. 가족도 친구도 점차 멀어진다. 하지만 온화하고 너그러운 태도를 지닌 노인 곁에는 사람들이 모인다. 그가 주는 편안함이 사람들에게 심리적 안식처가 되어주기 때문이다
감정을 다스리는 것은 인간만이 할 수 있다. 그러므로 감정을 다스린다는 것은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는 일이나 마찬가지다. 감정의 파도에 휩쓸리지 않고 그 파도를 타고 넘는 서퍼(surfer)가 되는 것, 그것이야말로 오랜 세월의 풍파를 견뎌온 노년만이 보여줄 수 있는 노련함이자 품격의 절정이다.
바다처럼 고요한 노년
‘성질을 죽여라’는 말은 무조건 참고 억누르라는 말이 아니다. 이는 감정과 성정의 노예가 되는 대신 컨트롤러가 되라는 뜻이다. 나의 거친 성정을 다스려야 내 마음을 깨끗이 비울 수 있고(Clean Up), 그 빈 공간에서 나오는 긍정의 에너지로 주변을 격려할 수 있다(Cheer Up).
스스로 평온해진 바다와 같은 노인. 자신의 성정을 잘 다스려 고요한 미소를 머금은 그 사람이야말로 주변 사람들이 진심으로 다가와 곁에 머물고 싶어 하는 진정한 어른이다. 이제 뜨거운 불꽃은 내려놓고, 깊고 푸른 바다처럼 차분해지자(Calm Down). 그 고요함 속에 당신의 진짜 아름다움이 피어오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