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한 장의 사진을 들여다본다. 화초에 둘러싸인 야무진 표정의 어린 아가씨. 당시 나이는 세 살 쯤으로 추정된다.
집에 저렇게 많은 꽃을 키웠을까. 아버지는 20대 후반의 젊은 시절부터 집안 가득 꽃을 키우셨던 모양이다.
가세가 기울어 곁방살이를 꽤 오래 했었다. 그 와중에도 주인집 허락을 얻어 마당 한쪽 켠에 꽃밭을 마련하고 꽃을 키우셨다. 꽃 뿐이 아니고, 그물을 쳐놓고 메추리도 키우신 기억이 난다.
월세, 전세를 전전하다가 드디어 내 집을 마련하게 되었을 때 아버지는 꽤 넓은 텃밭이 딸린 주택을 구입하셨다.
그 텃밭에 채소 보다 더 많이 국화를 키우시던 아버지의 모습이 기억난다. 집 안에도 꽃밭이 있었다. 꽃도 가지가지 꽤 많았던 기억이 난다.
어린 시절의 그런 기억은 귀소 본능처럼, 숨어있다가도 어느 날 스멀스멀 피어올라 내 주변에 비슷한 환경을 조성해버리고 마는 성향이 되어버린 것 같다.
전원주택을 짓고 사는 외할머니를 둔 손녀도, 어른이 되어 바쁘게 살다가 여유가 생기는 어느 날, 나처럼 식물을 키우는 꿈을 꾸고 그것을 실천하려 애쓸지도 모르겠다.
신혼여행을 다녀오면서 가족 선물로 노랑색 넝쿨 장미를 골랐다. 바리바리 식구들 선물을 사서 챙겨 오는 관습이 식상했던 나는 그런 상품 대신 내가 가장 좋아하던 노랑색 장미를 골랐는데, 식구들 반응은 시큰둥했다. 오빠가 나보다 몇 달 늦게 결혼했는데, 그때 실망한 표정을 감추지 않던 오빠는 아파트 살고, 나는 이제 주택에 산다.
새 학기가 되면 학년에 상관없이 꼭 화분을 하나씩 가져오게 했다. 열심히 자신의 화분을 관리하는 아이들이 있는가 하면, 갖다만 놓고 신경을 쓰지 않는 아이들 화분은 전부 내가 관리하였다.
방학이 되면 집으로 보내는데 그것도 귀찮아하는 아이들이 있다. 그런 화분은 집으로 가져와서 키우다가 가을에 되가져가거나 교무실에 내려보내(방학 동안 교무실에서 관리해주기도 했다.) 해를 넘겨 2,3년씩 교실에서 대품이 될 때까지 키운 적도 몇 번 있다.
어느 날 아파트에 있는 화분수를 세어보았더니 큰 것, 작은 것 합해서 50개가 넘었다.
그런데 아파트 환경이란 게 사람에게는 좋지만 식물들에게는 별로 좋지 않은 환경이다. 유리창에 한 번 걸러지고 통과되어 빛이 약한 데다, 통풍 문제가 있다. 또 과습으로 가버리는 경우가 많다.
꽃을 사서 피어있는 동안 즐기고, 죽으면 버리는 일이 많아질수록 아쉬움이 많았다. 주택의 땅에서 키우면 훨씬 잘 크고 꽃도 많이 보여줄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