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2

순간을 사는 여자, 그녀 이름은 2인칭

by 김영


2는 소수이다. 소수는 1과 그 자신만으로 나누어 떨어지는 수이다. 예를 들면 2, 3, 5, 7, 11,.... 과 같은 수이다. 소중한 수이며, 우주의 신비를 간직한 고귀한 수이다. 이 소수가 중요한 이유가 있다. 세상의 모든 자연수는 소수만의 한 가지 곱으로만 나타낼 수 있다. 예를 들어 230은 2 × 3 × 5 ×11의 한 가지 곱으로만 나타낼 수 있다. 다른 모든 수도 소수들의 곱으로 나타낼 수 있는 것은 오로지 한 가지밖에 없다. 유일한 한 가지 방법밖에 없는 이유로, 수학자들은 소수에 과도하게 집착을 한다. 그만큼 중요한 수라고 믿기 때문이다. 그들은 '수를 표현하는 근본적인 분할 방법은 없을까?' 하고 고민을 했다. 그래서, 그들은 존재하는 모든 수는 소수들의 곱으로 이뤄진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과학에서도 이와 비슷한 일이 있다. 물리학자는 자연을 설명하면서 다양한 모든 물질은 원자로 되어있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물질은 레고 블록을 결합하듯, 원자 결합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이다. 물질에서 원자의 역할처럼 수에서는 소수가 그 역할을 하고 있다. 소수는 아무것도 보태지 않은 본래의 자신인 것이다. 그리고 그 소수는 무한하다. 사람들 한 명 한 명도 유일하고 소중한 존재이다. 밤하늘에 빛나는 별이든지 아니면 아직도 발견되지 않은 소중한 미지의 별이다.


 지금부턴 소수 2와 같은 소중한 여인에 대해 말하려고 한다. 그녀는 나이와 상관없이 모든 남자들의 주목을 끌었다. 아름다움을 갖추었다는 말이다. 그 아름다움은 사람들로 하여금 어루만지고, 입맞춤을 하고, 곁에 두고 싶은 마음을 자연스레 불러일으킨다. 그냥 도시 한 복판을 지나가는 것만으로도 수컷들의 눈길을 끌고, 심장박동을 빠르게 하고, 가지지 못하는 것에 대한 볼멘소리를 나오게 한다. 나는 적어도 그렇게 보았다. 게다가 다행스러운 것은, 그녀가 자신의 아름다움을 무기로, 정신의 성장을 멈춰버리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한가지 더 다행스러운 것은, 그녀와 나는 같은 학원에 있었기에, 우연히 마주친 아름다운 여자가 미처 말을 걸기도 전에 떠날 일도 없고, 몇 분 후 카페를 나서면 운명의 그녀를 영원히 잃어버릴 염려도 없었다. 단지 학원 내 다른 수컷들의 동향을 관찰하고, 그녀에게 비칠 나의 이미지에 대한 불안한 탐색을 하면서 그녀에게 다가갈 기회만 엿보면 된다. 남자들이란 게 어떤 여자에게 관심을 가지면 그녀와의 인연을 위해 그럴듯한 이야기를 지어내고, 별의별 짓을 다하기 마련이다. 어쨌든 그녀와의 만남과 사랑에 빠지는 과정에는 여러 번의 별의별 짓과 우연이 깃들어 있었다. 내게는 운명처럼 여겨지지만 어찌 보면 수준 낮은 소설일 수도 있다. 삼류소설처럼 보일지라도 그녀는 내 삶의 악보를 내림표에서 올림표로, 다시 올림의 도돌이표로 만든 여인이다. 그녀와의 체험은 풍부한 화음으로 공명을 일으켰다. 그 공명은 한쪽이 한쪽을 완전히 지지해주는 화성법이 아니라 독립된 생명을 가진 선율이 동시에 울리는 대위법의 형태이다. 나의 모든 감각은 그녀를 향해 튀어 오르고, 가슴과 눈에 그녀를 달고 살았다. 그녀로 인해 인생의 배경이 갑작스레 바뀌었다. 같은 재료와 같은 문제로 이루어졌던 나의 삶이 그녀라는 새로운 변수를 만나 변주되었다.


그녀의 포근함의 테두리에서 책에서만 상상했던 희망, 몽상, 감동, 정열, 사랑, 정염, 희열 등의 실질적인 감정의 질감을 느낄 수 있었다. 그것들은 과장된 감정으로 자기 자신도 기만하는 호들갑스러운 감정이라고 이전에 생각했었다. 옛날이야기에 빗대어 말한다면, 죽을 고비를 넘긴 후 모험에 돌아온 그가 예전에 살던 집의 식탁에 둘러앉아 행복한 모습을 짓고 있는 그를 대신한 사람과 가족들의 모습을 보는 것처럼, 상상은 할 수 있어도 다가가지 못하는 그런 것들이었다. 그런 것들이 새로운 의미로 다가온 것은, 크나큰 사건이 실마리가 된 것은 아니다. 그냥, 마주 앉은 편안한 식사, 마주 앉은 들뜬 술자리, 느즈막에 하는 나른한 산책, 학원에서의 둘만의 눈 맞춤, 그녀의 어깨에 내려앉은 햇살, 그녀의 눈동자에 비친 나의 모습, 그리고 그녀가 사랑하는 음악이나 작가라면 나의 가슴을 두근거리게 하는 것은 충분했다. 사랑이 인생에서 어떤 의미인지를 어렴풋이 알게 되었다. 권태로운 도시의 따분한 일은 아름다운 도시의 낭만적인 일로 바뀌었고, 나의 집요한 시선이 그녀에게 닿으면 그녀는 디오니스적 아름다움을 내게 선물했다. 그런 성적 접근은 서로가 사랑의 한 복판에 있었기에 가능했다. 혹시라도 다른 사내와의 비교라는 꺼림칙함도 있었긴 했지만 그 꺼림칙함은 모호함을 불러일으켰고, 모호함은 더 강렬한 흥분을 주었다.


그랬던 사랑이 그렇듯이 언젠가부턴가 그녀를 의심하고 저울질했다. 그녀라는 존재 자체만을 요구하지 않고 다른 무엇도 기대했다. 고만고만한 서른 살짜리 얼간이 같은 수컷의 방식으로 그녀를 이끌려고 했다. 짐짓 지적 인척, 용감한 척, 너그러운 척, 냉소적인 척, 속세에 속하지 않은 척, 여전한 희망이 있는 척, 높은 곳을 바라보는 척. 실은 대부분이 거짓이다. 나는 그녀를 내 뜻대로 하고 싶었을 뿐이다. 소유에 대한 갈구이자 저속함의 갈구였다. 그녀는 반응하지 않았다. 이미 다 안다는 듯이. 그러면서 그녀와 나사이에 일종의 막이 생겼다. 그녀는 다시 추상적 존재가 되었고 의문부호로 남았다. 우리 삶의 중요한 순간은 한 번밖에 없다는 것을 그 당시는 몰랐다.


그녀는 나와는 대조적인 성격이었다. 내가 모든 사항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일어났던 일이나 일어날 일을 두고 골머리를 앓는 체질인데 반해 그녀는 웬만하면 가볍게 보려고 했다. 그녀는 어차피 일회적 삶에서 굳이 진지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무겁고 진지함에 쏟는 에너지를 싫어하고, 인생의 아름다움과 잔혹함 둘 다 무의미하다고 생각했다. 아름다움과 잔혹함을 둘러싼 허위와 가식을 싫어한 것이다. 그녀는 허위와 가식을 버리고 본능적으로 가볍게 살기를 원했다. 마치 '몸은 영혼보다 정직하다'라는 신념을 가진 인간이다. 그리고, 개인의 자유를 위협하는 어떤 행위에 대해서도 반대했다. 여자로서, 선생으로서, 장녀로서 '그래야만 한다는 것'을 혐오하고, 가급적 무리 속에 있는 것을 피했다. 무리는 하나의 생각을 강요하고 진실을 거부한다는 것이다. 설령 누구나 믿는 진실임에도 거짓은 있기 마련이라 생각했다. 더 본질적인 이유는, 자신에게도 자신을 숨기려는 마당에, 무리 속에서 행위의 목격자가 되어 관찰의 대상이 되는 것이 참을 수 없다고 했다. 그녀는 무리 속에서 사회적 동물의 의무를 가급적 이행하지 않는 방향으로 살기로 작정한 것이다.


이런 생각도 지금에서야 추론해본 결과이다. 나는 그녀를 제대로 알지 못했고, 알기 위한 노력도 게을리했다. 그리고, 그녀에게 나 자신을 온전히 드러내는 것도 꺼려했다. 그것은 나의 불완전함과 모호함을 드러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인간의 언어와 관념으로 어떤 인간의 본질을 설명할 수도, 가둘 수도 없다. 다만 부는 바람처럼 볼 수는 없지만 느낄 수 있는 정도이다. 어쨌든, 그녀는 내게 은유이고 추상이었다. 그녀의 그런 모호함은 불안감과 호기심뿐만이 아니라 성애를 불러일으켰다. 모호함의 패티쉬라고 말하겠다. 여하튼, 그녀라는 본질의 윤곽은 그어졌다가도 이내 지워지곤 했다. 그녀의 실제 모습은 보지 못한 채 나에게 향하는 모습만을 통해 그녀를 이해했다. 나를 향한 기능적인 면의 효용성이 달라진다면 그녀 또한 사라지는 것이다.


뒤틀린 욕망의 이기심이든 젖내 나는 미숙함이든, 그녀와의 이별 후 내상을 입기는 했다. 마구 내던져 버린 구겨진 휴지 같았다. 학원도 그만두었다. 그녀를 오랜 기간 그리워한 것도 맞다. 그렇다면 그리운 그녀를 다시 만나면 나의 태도는 어떨까. 더 이상 예전의 그녀가 아닌 상태에서 만나게 될 텐데 그녀에게 눈을 뗄 수 없는 순간은 얼마나 지속할 수 있을까. 바래진 그녀의 이미지는 감당할 수 있을까. 그런 상태에서도 그녀와의 끊어진 인연을 다시 이으려고 노력할까.


좀 더 냉정해보자. 아니, 처음부터 다시 생각하자. 사랑하는 두 남녀가 있다. 그녀가 나를 사랑하고, 나는 그녀를 사랑한다. 사랑은 그녀와 나를 행복하게 만들었다. 그 후 사랑으로 행복한 때도 있고 불행한 때가 있다. 아니, 하루는 행복하고, 다른 하루는 불행하다. 그리고는 시간이 지나 아무리 부싯돌을 아무리 문질러대도 불꽃이 일어나지 않는다. 관능은 산산이 흩어진 지 오래되었고 회한에 사로잡힌 서로를 지켜본다. 그 감정을 격정적으로 토로해도 습관 속에 감정은 질식한다. 꺼져가는 잔불을 헤집어보아도 불을 돋을 수 없다면 그녀가 좋아하는 노래의 가사대로 되는대로 내버려 두는 것도 선택이다.


I can't take my mind off you

'Til I find somebody new

.....

당신에게 눈을 뗄 수가 없어요... 새로운 사랑이 나타나기 전까지만.



부기(附記)


지금에서야 그녀를 설명하는 말들을 생각해 본다. 아름다운 여자, 데미안 라이스를 좋아하는 여자,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을 하는 여자, 똑똑한 여자, 술과 담배를 좋아하는 여자, '스탕달', '서머싯 몸', '쿤데라'를 사랑하는 여자, 파스타를 좋아하는 여자, 욕망을 자극하는 여자, 문학을 사랑하는 여자, 자기가 원하는 것을 아는 여자, 순간에 충실한 여자, 위험한 여자, 자신만의 원칙이 있는 여자, 아버지와 심하게 다투었던 여자, 아버지와 오빠를 극도로 싫어하는 여자, 휘파람을 불 수 있는 여자, 자기의 결정을 받아들이는 여자, 가끔씩 뒤를 돌아보는 여자, 세운 무릎에 둘러싸며 손깍지를 끼는 여자, 매력적인 여자, 신성불가침의 상징이나 담백함을 없애는 형용사를 싫어하는 여자, 사회성이 없는 여자, 본능에 충실한 여자, 형용사적 표현보다는 동사적 표현을 좋아한 여자, 빨간 말보로 담배를 좋아하는 여자, 술안주로 초콜릿과 신선한 겨울 향이 배어있는 귤을 좋아한 여자, 만지고 싶은 여자, 술잔에 희미한 입술 자국이 남는 여자, 그리고 커피의 향을 좋아하는 여자.


그런데, 그녀가 커피를 사랑하는 것만 알지 커피의 향이 그녀의 코끝을 어떻게 간질이고 그녀의 몸에 어떻게 스미는지 첫 한 모금은 그녀의 혀를 어떻게 물들이는지 모른다면, 누군가 커피를 사랑한다는 사실을 아는 것은 굳이 그녀일 필요는 없다. 그녀를 감싸고 관통하는 느낌을 모르면서 감히 사랑했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 그녀가 '데미안 라이스'의 음악을 들을 때 무슨 생각을 하는지 사랑의 기쁨을 느끼는지 사랑의 한계를 느끼는지, '스탕달'의 소설에서 섬세한 연애심리를 좋아하는지 아니면 그 시대의 정치, 사회적 현실의 문제점의 부각이라는 리얼리즘을 좋아하는지, '서머싯 몸'의 소설에서 세속 세계에 대한 풍자를 좋아하는지 아니면 예술의 욕망에 대한 집착을 좋아하는지, '쿤데라'의 글을 읽을 때 그의 섬세함을 좋아하는지 비아냥을 좋아하는지를 모르면서 그녀를 안다고 말할 수 있을까? 나는 결국에는 달의 뒷면처럼 그녀의 마음을 알지 못했다. 나의 이런 부분이 두렵기는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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