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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영 Sep 30. 2023

"내 '땅콩'을 어떻게 한 거니?"

<10화> 


세상에는 결코 익숙해질 수 없는 일들이 있다. 그중 하나가 병원 가는 일이다. 오늘은 집사들이 아침부터 서둘러 나를 케이지에 넣었다. 추측해 보건대, 케이지에 넣는다는 건 병원에 간다는 것이다. 아직 예방접종이 끝나지 않았나 생각했다. 근데 생각해 보니 이상한 게 있다. 어젯밤부터 사료와 물을 어딘가에 치워놓았다. 배도 출출하고 갈증도 나서 야옹거렸지만 다들 끔쩍도 하지 않았다. 뭐, 서운했지만 어쩌겠어, 내일은 챙겨주겠지 하고 참았다. 하지만 아침에도 모른 체했다. 밥만 축내는 무능한 고양이라고 여긴 결과라고 생각했다. 


집밖으로 나가는 순간 빛이 눈부셨다. 오, 본다는 건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빛 아래서 세상은 얼마나 밝을 수 있을까? 무수한 가닥의 햇살은 집안에서 본 것과는 확연한 차이가 있다. 유리의 가림막이 없는 차이 만으로 설명하기에는 다른 게 있다. 화창한 날의 빛과 색채의 담대함들. 겨울 햇살은 투명하고 따사로웠다. 하늘은 작은 소리에도 반응하여 나무 위로 날아올랐던 작은 새들이 바람에 떨어지는 낙엽처럼 다시 나무 위로 내려앉았다. 역동성이 선사하는 쾌감이라니. 코를 킁킁거렸다. 공기는 상쾌하고 향기로왔다. 예정된 봄의 풋풋함이 밴 흙냄새, 지난해에 떨어진 낙엽의 냄새, 아침 공기의 촉촉함이 가슴을 적시고 흔들었다.  


병원에 들어가자 기다렸다는 듯이 의사와 간호사가 바삐 움직이더니 나를 직사각형의 탁자에 올려놓았다. 나의 의사와 무관하게 휘뚜루마뚜르 해왔던 것에 비해 오늘은 좀  진지했다. 뭐 이것도 나를 위하는 것이려니. 그까짓 바늘로 찔러대는 것은 참을 만하지만 가족들 얼굴이 떠올랐다. 거기까지 생각할 무렵, 수액을 넣자 잠이 들었다.


'습기 빠진 낙엽과 마른 가지들이 불타오른다. 불꽃들은 물결치듯 돌아다니며 여러 형체를 만들었다. 매운 연기는 피어오르고 낙엽들은 바스락거리고 가지들은 타닥거렸다. 사부작사부작 낙엽 밟는 발소리와 함께 가족들의 모습은 불빛들 사이를 어른거렸다. 슬픔이 여러 겹 겹친 굴이었다. 그리운 얼굴들을 거세게 덮쳐오는 불길 속에서 찾으려 이리저리 뛰어다니다 앞으로 푹 고꾸라졌다.'


짧은 순간이지만 영원처럼 느껴졌던 시간이었다. 마취에 깨고 눈을 떴을 때 나는 스티로폼 같은 무르고 탄력이 있는 직사각형의 탁자에 벌렁 나자빠져 있었다. 한창 더운 날, 베개에서 차가운 곳을 찾아 이리저리 돌아눕듯 탁자에서 몸을 뒤척였다.


수술대 위에서 막 깨어난 후 잠시 몸을 움직여 보았다. 다리를 구부렸다 폈다 하고 싶었지만 마취가 풀리지 않아 실험실의 개구리처럼 다리가 축 늘어졌다. 몸이 오라지게 무거웠다. 내 몸이 아닌 듯싶었다. 다른 시간의 파도에 두둥실 떠올랐던 나는, 거대한 너울에 물마루까지 들어 올려졌다 내팽개쳐진 나는, 과거의 환영과 이곳의 낯선 음영으로 속이 메슥거리고 정신은 어지럽게 헤엄쳤다. 눈을 얄따랗게 뜨자, 사물들이 흐릿하게 보였다. 빛 속에 서 있는 하나의 윤곽이 보였다. 그 옆으로 삐뚜름히 서있는 또 하나, 그리고 서서히 움직이는 또 하나. 식은땀이 났다. 처음에는 꿈인 줄 알았다. 자박자박 구두발소리를 내며 서서히 다가온 생명체는 내 몸을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잠시 여짓거리다가 고개를 까딱이며 말했다. '중성화수술은 잘되었나요?' 누나집사의 목소리였다.


그런데, 그런데 말이다. 갑자기 퍼뜩 지나가는 생각. 중성화수술! 아니, 이게 무슨 소리야? 누나집사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얄팍한 안도감이 생긴 건 사실이지만, 맥이 풀렸다. 몸에서는 소독약 냄새가 진동했다. 넥카라를 씌울 때 보니 아래쪽 털이 깎이고 소중한 나의 생식기가 달라 보였다. 나는 배신을 당한 거다. 나를 먹여주고 재워주고 사랑하여 친구라고 생각했었는데 나를 험한 곳에서 험한 꼴을 당하도록 내버려 둔 거다. 내가 어떤 무시무시한 일을 당했는지 저들은 알고 있었다. 아니, 그 일을 사주한 거다. 나는 예전의 삶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절망감과 믿었던 그들에게 당한 배신감과 완전하지 못한 몸으로 살아야 한다는 두려움과 모든 것이 나의 통제권 밖에 있다는 무력감으로 끙끙 앓았다. 실성한 아이처럼 울어대고 싶을 정도로 충격을 받았다. 나에게 상처와 끔찍한 모욕감을 준 사람들이 믿었던 사람들이라니. 그들은 수컷도 아니고 암컷도 아닌, 어찌 보면 생식기능을 잃어버린 노총각 고양이로 만들어버렸다. 이런 수치심은 당혹스럽다. 지금까지 많은 일을 극복해 왔지만 다시 이겨낼 수 있을는지 장담 못할 거 같다. 정신적으로 이겨낸들 내 땅콩은 되찾을 수 없다.


복잡한 마음으로 집에 돌아왔다. 돌아오자 근심 어리게 보긴 더라. 집사들은 병원에서 씌웠던 플라스틱 넥카라를 벗기고 부드러운 재질의 호랑이넥카라를 씌워 주면서 진짜 호랑이 같다며 어흥거리더라. 뭐, 이왕 이렇게 된 거 마음대로 해라. 머리에서 이 생각 저 생각이 들락날락거렸다. 나는 이 집에서 즐거운 추억도 있고 즐겁지 않은 추억도 있지만 대체적으로는 행복을 누리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 생각이 순진했던 거다. 어떻게 나의 소중한 가치, 심지어 자존감을 빼앗아 갈 수 있을까? 그들은 나에게 비참함을 안겨주었다. 애정과 신뢰와 기대의 자리를 분노와 수치심과 불안감이 자리를 대신했다. 물론, 이 집은 매력적인 동시에 치유 기능도 가졌지만 다른 어딘가로 가고 싶다. 한 곳을 떠나 다른 곳으로 옮긴다는 것은 정서적 유대관계가 단절된다는 것이지만 믿음이 없는 곳보다는 낫다. 설령 또 다른 계절을 여기서 보낼지라도 경계의 눈초리를 거두면 안 된다. 나는 그들에게 폭넓은 이해를 구했는데 고작 나를 위한다는 것이 나의 땅콩을 없애버리는 거라니. 하늘은 창백했다.


그들은 중성화수술한 고양이가 자연상태의 고양이보다 수명이 길고, 다른 고양이와 영역다툼으로 싸움을 벌이다 다치는 확률도 줄어들고, 질병이 줄어든다고 한다. 아니면 그밖에 뭐가 됐든, 그거 증명된 거 맞냐? 한번 솔직해보자. 자본주의의 논리로 의사의 돈벌이를 위한 건지, 발정 난 모습이 보기 흉한 건지, 중성화수술을 옹호하는 주장들이 확대 재생산한 건지, 발정기 고양이들의 울음소리가 귀찮아서 그런 건지를. 너희들은 우리를 위하는 일이라고 억지 주장을 하며 마지막 남아있는 죄책감마저 아름답게 포장했다. 어쩌면 인간은 그토록 자기중심적인지, 나는 자존심은 짓밟히고 품위도 잃어버렸다. 기억하는지 모르지만, 앞서 '품위'에 대해 말한 것 같다. 고양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행동하는 것이 내가 생각하는 품위라고. 품위를 지키기 위해서는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스스로 실존적 존재를 잊지 않는 것이라고 말했었다. 실존적 존재인 내가 몸을 당당히 여기고, 몸의 욕구를 아름답게 받아들이는 것이 삶의 선물인데, 이제 다 끝난 거다. 갑자기 덮쳐오는 강렬한 욕구, 아름다운 누군가를 유혹할 생각(그것이 사랑이든 아름다움이든 음탕함이든)도 사라졌다. 꿈속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가장 예민한 기관이 잠자는 사이 사라짐은 세상의 아름다움에 무감각해지는 거다. 굴욕적인 그 기분 너희들 상상이나 해봤니? 너희들이 잠자는 사이 누군가가 소중한 기관을 떼어버리거나 사랑하는 자식을 데려간다면 온전히 여생을 살 수 있겠니?


인간의 뻔뻔함은 타고난 것일까, 훈련의 결과일까, 아무튼 놀랄 '노'자다. 너희들은 '거세'라는 말을 순화해서 '중성화 수술'이니 '땅콩수확'이라고 한다. 말장난 그만하고 원론적인 얘기를 해보자. 인간이 다른 동물의 생식기를 제거할 권리가 있는 거냐? 있다면 누구에게 부여받은 권리냐? 너희들이 믿는 신이 그러라고 하더냐? 너희들이 잘못생각하는 게 있다. 연어가 생식을 하고 죽는 거 정도는 너희들도 알고 있을 거다. 연어뿐만이 아니라 많은 동물에게 생식기능은 자신의 생명보다 중요하다는 걸 알아주었으면 한다. 너희들 친구인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라는 책에서 그가 한 얘기를 잠깐 생각해 봐. 비정하게 들릴 수 있지만, 그의 말에 따르면 생물은 어떤 고귀한 목적을 이루려고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거다. 생물은 그저 존재하기 위해 존재할 뿐이라는 거야. 너희들이 말하는 소명의식 같은 건 아예 없어. 동물은 이기적인 유전자를 보존하도록 맹목적으로 프로그램된 생존 기계이자, 운반자로서의 기계에 불과하다는 거다. 단지 유전자를 다음 세대에 넘기는 것만으로도 이미 주어진 소임을 다했다는 것이다. 이 말에 동의를 하든 동의를 안 한 든, 그렇다는 거야. 그런 의미에서 나는 존재할 의미가 없는 게 되지. 한마디로 끝장난 거다. 앞으로 깊은 우울에 잠겨 외로운 여정을 해야 한다. 이제, 나는 너희들과 성장 가능한 관계를 이어갈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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