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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영 Oct 02. 2023

집은 떠나라고 있는 거다!

<4화> 형아 집사

"여기를 떠나라. 여기는 희망이 없어. 여기에서 계속 살면 여기가 세상 전부라고 생각하고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 것 같지."

'시네마 천국'에 나오는 대사이다. 군대에서 돌아온 토토가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려 하자 알프레도가 담담한 어투로 말한 내용이다.


이런 이야기를 하는 건 뭔가 마음에 걸리는 게 있어서다. 바로 형아집사의 존재다. 뭐, 할 말이 없다고 하기에도, 있다고 하기에도 애매하다. 내가 이곳에 거주할 때는 없었기 때문이다. 집에 형아집사의 방은 있지만 그는 없다. 할머니집사는 자주 형아집사를 보고 싶어 하나 그는 아주 간혹 코빼기를 내밀고는 후딱 가버린다. 아들 집사는 할머니집사에게 무덤덤하게 말한다. 어차피 헤어질 텐데 이젠 떨어져 사는 거에 적응하라고.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지만 형아집사는 가족과 함께 살다가 말 한마디 하고 떠났다. 가족입장에서는 배신이다. 어린 시절부터 어른들은, 배신이란 인간이 생각할 수 있는 가장 추악한 이라고 누차 말했다.


인간은 매 순간 뭔가를 선택하고, 거기에는 책임이 따른다고 한다. 곰곰 생각해 보면 선택하는 것의 대부분은 그저 뭔가를 따라가는 것이 대부분이다. 인간이 자유의지를 갖고 뭔가를 선택하는 건 아주 가끔 있는 일이다.  가끔 있는 일중에서 강렬한 자유의지를 가지고 하는 행위가 배신이다. 첫 번째 배신은 그 연쇄작용으로 또 다른 배신을 야기한다.


배신한다는 것은 행진하는 무리에서 줄 바깥으로 벗어나 미지의 세계로 떠나는 것이다. 한 번뿐인 인생에서 모르는 것을 향해 가는 것이 삶에 충실한 거다. 그렇게 보면 배신할수록 삶에 충실한 것이다. 배신하는 행위를 보고 누군가는 양심을 거론한다. 칸트 선생이 이런 말을 했다. '너의 모든 행동이 보편적인 법칙에 맞을 수 있도록 행동하라.' 양심이라는 말을 거창하게 말한 거다. 말도 안 되는 헛소리라 생각한다. 양심은 사회의 감시도 모자라 스스로를 감시하게 만드는 스파이 같은 놈이다. 꺼떡 하면 '너는 양심도 없니?'라는 말로 상대의 욕망에 철퇴를 내리고, 집단에서 탈출하려는 한 인간을 집단에 묶어두려고 한다. 그들을 놓아주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들은 계속 삶을 연기하면서 나머지 인생을 잃어버릴 것이다.


무리에서 동떨어진 사람에게는 아무런 문제도 없다. 인간의 모든 악행은 무리에서 시작된다. 무리에서는 경쟁을 하고,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그리고 다른 무리를 이기기 위해 어떤 짓도 서슴지 않는다. 뭐, 전쟁 같은 거다. 이런 것을 견디지 못해 도망치는 인간은 미움을 받고, 더 이상한 건 도망치는 인간을 쫓아가 잡는 인간도 있다.


다시 한번 말한다. 집단에서 빠져나와야 한다. 집단 속에 있다는 것, 집단을 염두에 둔다는 것은 거짓말을 해야 하고, 진리라고 말하는 것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행위의 목격자가 있는 그 순간부터 그들은 좋건 싫건 자신을 관찰하는 눈에 그 자신을 맞춘다. 집단이 긍정하는 것에 순응해야만 집단 속에서 자신의 존재를 확고부동하게 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그들이 하는 그 무엇도 더 이상 진실이 될 수 없다. 그래서 군중 속에 있다는 것은 거짓 속에 사는 것이다. '가능한 거짓말'과 '이해 불가능한 진실'에서 가능한 거짓말을 선택한다. 자, 이제, 인간에게 어떤 감정을 유발하는 행진의 대열에서 빠져나오자. 개별성이 아니라 범주화시키는 모든 것으로부터 벗어나자. 자신의 내밀한 개별성을 상실한 자는 모든 것을 잃은 사람이다.


한 가지 더. 가족은 원래 갈등이 있는 거 아닌가? 그런데, 인간은 갈등 있던 가족이 오랜만에 만나 눈물로 화해하는 장면을 상상한다. 배은망덕한 자식이 아버지와 어머니를 품에 껴안고 참회하는 모습이나 행복한 가족이 살고 있는 집이 황혼 속에 반짝이는 것을 보면 두 눈이 촉촉해지는 것을 느낀다. 첫 번째 눈물은 이렇게 말한다. 참회하는 모습이나 황혼 속에 빛나는 행복한 가족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두 번째 눈물은 이렇게 말한다. 참회하는 모습이나 황혼 속에 빛나는 행복한 가족을 보고 모든 인류와 더불어 감동하는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모든 인간사회의 유대감은 두 방울의 눈물을 흘리게 만드는 감수성에 따라 움직인다.


이제 서로 억압하는 세뇌된 감정과 집단적인 눈물샘을 자극하는 감정을 버리면 어떨까? '그래야만 한다'는 억압된 모든 것에 질문을 던져보면, 세상의 답은 이미 정해져 있고, 무의식 속에서 우리를 움직이는 것은 감수성이고, 감정을 이성보다 앞세우다 보면 감정은 폭력을 동반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질문하는 자만이 세상에 드리워진 장막을 찢어버리고 이면을 볼 수 있지만 그들은 이내 세상의 적대자가 될 것이다.




이번 글은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부분 참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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