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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영 Oct 02. 2023

그녀의 비망록

<3화> 누나 집사 2



서서히 바람이 불어 구름은 사라지고 햇살은 쏟아져 선명한 풍경과 색감들로 세상이 들뜨기 시작한다. 황색 꽃가루는 바람에 실려 메마른 입술에 붙어 간지럽지만 메마른 입술은 달콤해진다. 


랑하는 사람들은 서로 스쳐 지나가던 장소를 말하면서 조금은 더 일찍 만날 수도 있지 않았나에 대해 한숨짓지만 결국에 만난 우연에 경탄을 금치 못한다. 그리고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사랑하고 있음을 고백한다. 우리도 이런 사랑놀이를 하고 있다.




그는 간혹 편지를 건넨다. 사랑한다는 편지를 읽는 건 언제라도 기분이 들뜨는 일이다. 누가 그런 낭만적인 일을 뿌리칠 수 있는가? 오랜만에 공들여 화장을 하였다. 피어난 장미꽃 봉오리 뒤로 또 한 봉오리가 피어나려고 한다. 행복하다.




여름은 여름이다. 소란스럽던 한낮이 지나고 도시의 거리에 긴 여름 저녁의 고요가 다가온다. 이즈음이면 저녁의 어스름 속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해방감을 느낀다. 내 의식은 부드럽게 탈선을 시도한다. 


사랑하는 이들의 과장과 유치함은 남들도 하는 사랑놀이의 모조품을 붙여 넣기 하는 것이다. 실제보다 부풀려진 것을 갈망하는 것은 현실을 잊게 한다. 희망을 지어 올리고 소꿉장난 같은 꿈을 버리지 못하지만 희망은 사라지고 꿈같은 소꿉장난은 끝나기 마련이다. 땡볕아래 건포도처럼 말라비틀어져 간다. 




비가 온종일 내리는 일요일이다. 한적한 따분함 속에 왠지 모를 불안감이 있다.


그는 사랑에 완전히 빠져드는 것에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 나도 마찬가지다. 둘 다 미숙함인지 비겁한 건지, 아니면 다른 이유인지 모르겠다.




나를 사랑한다는 것에 대해 우쭐댄다. 허영심인지 동정심인지 아직은 모르겠다.




낮에는 여전히 덮다가 밤이 되면 가을이 내려앉는다. 이럴 때 여름은 환상처럼 느껴진다.


다가가면 다가가는 만큼 멀어지고, 멀어지면 멀어지는 만큼 다가온다. 그러는 동안에는 관계는 유지된다.




사내들은 보수적이다. 그러다 보니 그들의 제한된 상상력은 유치할 때가 있다.




단풍잎이 한 장씩, 어쩌다 두세 장이 팔랑이며 떨어진다.


인생에서 무서운 게 있다. 처음 사는 낯선 삶이지만 인생의 얼마나 많은 시간을 자신이 누군지, 무엇을 원하는지 모른 채 살아왔다는 것이다. 이렇게 말하는 순간에라도 알고 있는 게 맞는 것일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흔히들 '너 자신을 알라'라고 철학자의 말을 인용하지만 가당한 일인지 의심스럽다. 자신을 알기 위해서는 아이러니하게도 자신의 모름을 인정하고 자신을 참을성 있게 기록해야 한다. 기록하는 과정에 자신에게 정나미가 떨어질 수 있다. 


그럼에도 알 수 없다면 삶은 나를 알아가는 여정이 아니라 나를 망각하는 과정일지 모른다. 나를 알아가든 망각하든 나의 영원한 적수는 나다. 나를 의기소침하게 하는 것도 '나'이고, 희망을 가지라고 달콤하게 유혹하는 것도 '나'이고, 불가능한 것을 할 수 있다고 북돋우는 것도 내 안의 적수, '나'이다. 




어떤 이들은 상대방의 지나간 애인에 대해 알고 싶어 한다. 아무렇지도 않은 듯 말하지만 실은 진지하고 조금은 경멸적으로 이야기한다. 시도 때도 없이 내밀한 사항의 납품을 요구한다. 납품을 요구하는 표정에는 성적 호기심이 깔려 있다. 일방적인 요구가 미안했던지 그들도 지나간 연인들에 대해 스스로 이야기한다. 허영심이 깔려 있는 우쭐함이다. 더 나아가서 자신을 이해시키기 위해 자신의 모든 비밀을 몽땅 털어놓는 찌질이들도 있다. 그리고는 자신을 모조리 알아버린 연인을 증오한다. 어쩌란 말인가?


이슬비로 세상이 흐릿하다.




그는 사랑하기 어려운 구석이 있는 사람이다. 따뜻함 속의 냉담함이 있다.




나뭇잎들은 거센 바람에 힘겹게 매달려 신음소리를 내고 있다.


그와 싸웠다. 나를 위해서라면 아예 싸우지 않았을 것이다. 단지 그를 위해서 싸웠다.




그는 내가 다른 여성과는 다르다고 한다. 여성스러움이 부족하다고 들린다. 내가 그를 좋아하는 이유는 대다수의 남성이랑 다른 면이 있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의 호의가 두렵다. 자격지심이라도 어쩔 수 없고, 속 좁은 사람이라고 생각해도 할 수 없다. 내가 허위에 찬 연민의 감정이나 호의를 피하는 이유는 연민과 호의가 믿을 만하지 않아서다. 감사하다고 생각하기 무섭게 그들은 상의도 없이 베푼 것을 걷어가 버렸다. 뭐, 유효기간은 베푸는 쪽이 가지고 있으니 할 말은 없다.




무엇을 할지 안 할지에 대해 늘 마음속 투쟁이 있다. 막상 하게 되면 계획이 틀어질 것이 눈에 보인다. 게다가 많은 것 중에 고르는 것보다 두 개중에 고르는 게 힘이 더 든다. 두 개중에 나답게 살려는 것을 선택하면 사람들은 좋아하지 않는다. 어차피 다른 사람을 충족시켜 줄 수는 없는 것이라, 제 자신으로 사는 게 맞다고 마음을 애써 고쳐먹는다. 그나마 이거냐, 저거냐를 고르기 전에 상황이 종결되지 않는 것이 다행이다. 




오롯하고 둥근 창백한 달과 냉랭한 별은 어디에서 튀어나오는 것일까?


한심하고 뻔뻔한 인간들이 있다. 만나면서 노골적으로 연봉이나 모아둔 돈을 물어본다. 그의 표정이나 말투는 불쌍한 사람에게 말을 거는 거 같다. 비참한 기분이다. 개인의 프라이버시는 온데간데없고 상대방에 대한 예의라곤 전혀 없다. 자신은 어느 정도 내세울만하니 묻는 거다. 일종의 계급의식도 내재되어 있다. 세상은 항상 엉망이고 미쳐 돌아가니 그 만을 탓할 수는 없다.


순간 그 자리에서 일어설까 말까 고민하다 일어섰고, 그의 시선이 나의 얼굴에서 아래로 내려갔다 다시 얼굴로 올라오는 것을 보았다. '너는 인간을 그런 식으로 대하니?'라는 말이 혀끝에 걸렸지만 참았다. 얘기를 꺼내고 나면 나만 후회할 거 같아서다. 아 뭐, 이런 게 한두 번인가. 내가 고귀한 계급 태생이 아니라도 그와 동등한 관계라면 슬그머니 중산층 계급임을 은연중에 말했을까 의심이 들기는 하다.


스피노자는 '모든 한정은 부정이다'라고 했다. 말하자면 '나는 네가 말만 잘 들으면 너를 사랑해'라든지 '나는 네가 공부만 잘하면 너를 사랑해"라든지 "게임만 덜 하면 사랑해" 그런 얘기다. 이것은, 사실, 사랑하지 않는다는 거다. 한정하지 않아야 부정하지 않는 것이다. 조건 때문에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 충분히 사랑하는 것이 사랑이다.




빙산의 일각. 인생이란 그저 겉으로 드러나 보이는 것 전부가 아니지만 간혹 그 사실을 잊을 때가 있다.




비는 온종일 내린다. 사나운 빗물에 잎들은 떨어져 웅덩이 여기저기를 떠다닌다.


그는 사람들을 사랑하고, 항상 정의로운 쪽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자신이 착하다는 환상을 가지고 있다. 스스로에 대해 환상을 가지는 것을 알기나 하는지 진실의 오류와 진실의 상대성을 알기나 하는지 모르겠다.




본능대로 사는 것이 나이 들어 손톱 물어뜯는 습관보다 낫다고 본다. 적어도 그들처럼 손톱 물어뜯으면서 다른 사람의 뒤통수를 쳐본 적은 없다.




사내들은 일단 자기 사람이다 싶으면 말투부터 바뀌고, 다른 사람에게는 절대 하지 않는 이야기를 자진 고백한다. 그리고는 아무 때나 만날 권리가 있다고 믿는다. 그리고 여자는 그 권리를  인정한다.




그는 자신의 새로운 영토를 확인해 주려는 듯 으스대며 다닌다. 그렇지 않으면 불안해 견디지 못하는 겁 많은 동물과도 같다.




그는 말로만 여행을 가고 싶어 한다. 여행이라는 관념과 여행의 기억만을 좋아한다. 그에게 가장 확실한 쾌락은 경험하지 않은 기대의 쾌락이다.




나는 말을 하려고 했지만 그는 들으려고 하지 않는다. 그는 나의 고통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러면서 나를 포용하려고 한다. 그건 자기기만이다. 


다른 사람을 이해한다는 것, 그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겠다.




옥신각신하는 것도 없이 헤어졌다. 결론은 정해져 있듯이 헤어졌다. 어쨌든 사람들은 늘 떠났다. 당분간은 겉으로는 정상인 척하고 살아가야 한다. 


이건 중요하지 않다. 중요하지가. 시계는 밤 12시 20분을 가리키고 있다. 




12월 3일. 눈이 내린다.




내가 이루고자 의도했던 것들을 이룬 것은 별로 없다. 따지고 보면 그리 대단한 것도 아닌데 말이다.




섬약한 할머니는 세상이 지루하기 그지없다고 한다. 누군가는 자유를 억압하는 감옥을 견딜 수 없지만 그녀는 새로이 밝아오는 하루의 지루함을 견디지 못한다. 


아직 젊어서 늙고 혼자라는 게 뭔지 모른다, 전혀. 기력이 날로 쇠약해져 어쩔 수 없이 도움의 손길이 더 필요할 텐데 두렵다.




가족들의 처지는 간수가 없는 열린 감방에서 탈출도 못하는 죄수 같다. 괜찮냐고 물어보면 늘 괜찮다고 얘기하지만 상황은 늘 괜찮지 않다. 




사람들은 스스로 늙었다고 생각하기 전까지는 언제나 그를 기다리는 미지의 연인이 있을 거라 생각한다. 사거리 길모퉁이만 돌면 어떤 근사한 사람과의 근사한 모험 같은 거 말이다. 그들이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있다. 사랑을 경험하지 못하고 죽을 수도 있다는 아쉬움 때문이다. 그들에게 기다림은 익숙함이다. 그러다 자신 몸의 노화의 깊이에 눈길이 닿으면 그제사 자기도 일정한 부피와 중량을 지닌 쓸모없는 유물에 지나지 않음에 탄식한다.




남녀가 만나서 반드시 그 사람이어야만 하는 이유는 없다. 육체적 위무와 사랑은 엄연히 다르다. 육체적 위무는, 별 이렇다 할 감정을 느끼지 않더라도, 때마침 있는 이성이 누구일지라도, 상관없는 감정이다. 구부러 구부러 휘감겨 올라가는 넝쿨은 그 나무가 어떤 나무인지가 중요하지 않다. 다만 거기에 나무가 있다는 것이 중요할 뿐이다. 거기에 고상한 인간의 정신적 가치와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위선이자 허영이다. 동물에게 동물이 아닌 것처럼 행동하라는 것이 말이 될 소리인가.




출근하고, 퇴근하고, 월급 받고, 승진에 매달리고.




욕망을 이겨내라는 소리가 말이 된다고 생각하는지. 관능은 정상적이고 건강한 사람들에게 찾아오는 축복이다. 욕망이 있을 때는 욕망을 해소할 방법을 찾고, 그러고 나서 나의 일에 온 마음을 쏟고 사는 거지. 아, 여행 가고 싶다. 




누군가가 말했다. "나는 내가 볼 수 있는 것만큼 크다!"




사랑은 사라지기 마련인가? '그들은 그 후에도 만남을 가지면서 노년을 함께 보내었다. 욕망의 오르막길과 내리막길을 함께했다. 그렇게 모든 게 끝나버렸다.' 이런 꿈은 불가능한 것인가?


두 사람이 진정한 공동체로 연결되고, 남은 여생을 진심 어린 다정함으로 바라볼 수는 진정 없을까? 




왠지 모르게 슬퍼진다. 슬픔을 이성적으로 참아내려 한다. 슬픔은 외로움에서 시작되었다. 외로움은 처음이자 마지막 맛본 인생의 쓴맛이다. 그것은 상대적이지만 그 맛은 강렬하다. 외로워도 먼저 손 내미는 게 두려운 사람들이 있다. 내 처지이다. 질식할 거 같다. 언제쯤 흘러내리는 비눗물처럼 씻겨질 것인지. 



누군가에 대한 사랑의 기억은 언제까지나 남는 것일까? 엄마에 대한 그리움은 언제쯤 털어낼 수 있을까?




아버지는 회사에 나가지 않는다. 이십여 년을 함께한 아내와 작별했고, 그렇게나 좋아하던 친구들도 만나지 않는다. 집안에서도 자기 방에서 나오지 않으려고 한다. 거리의 동상처럼 혼자만 있다. 홀로 있는 것에 익숙해 보이고, 고독은 습관이 된 듯하다. 당혹감과 의구심이 든다. 그는 오랫동안 집안의 가장이었기 때문이다. 무엇이 그를 무력하게 만든 것일까?




고통을 피하는 게 맞을까, 부딪히는 게 맞을까. 인생은 자전거처럼 뒤로 갈 수 없다. 속되게 후퇴 없는 전진을 말하려는 게 아니다. 자전거처럼 넘어지지 않으려면 넘어지는 쪽으로 핸들을 꺾어야 한다는 것이다. 뭐 그냥 그렇다는 얘기다. 




해 질 녘, 여행을 떠나는 공항의 대합실보다 더 멋진 것이 있을까? 공항버스, 비행기의 이착륙 소음, 머리 위로 착륙등를 요란하게 번쩍이며 지나가는 비행기, 달과 별들 아래를 느릿느릿하게 나아가는 비행기, 그리고 일찌감치 비행기를 기다리는 사람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흥분된다하늘에서는 빛이 물러나, 저 멀리 도시와 도로는 아름다운 불빛을 반짝인다. 하늘에서 내려다본 도시와 산과 들과 바다는 자그맣고 순진해 보이고, 저 먼 곳에서 있던 일들은 잠시 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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