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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영 Oct 02. 2023

Baby, love never felt so good

<2화> 누나 집사 1

Baby, love never felt so good

그대여, 사랑이 이렇게 기분 좋은 건지 몰랐어


And I doubt if it ever could

이런 사랑을 할 수 있을지 모르겠어


Not like you hold me, hold me

당신처럼 날 안아주는 사람은 없었어


Oh, baby, love never felt so fine

그대여, 사랑이 이렇게 기분 좋은 건지 몰랐어


And I doubt if it's ever mine

이 사랑이 내 것이 맞는지 의심할 정도로 말이야


Not like you hold me, hold me

당신처럼 날 안아주는 사람은 없으니까


Michael Jackson - 'Love Never Felt So Good'


누나집사를 생각하면 자연스레 떠오르는 노래이다. 그래서 기회가 생길 때마다 듣곤 한다. 그 노래 생각만 하면, 느리고 폭넓게 걷던 발걸음은 나도 모르게 빠르게 바뀐다. 음악으로 말하면 라르고에서 알레그로로 바뀐다. "베이비, 러브 네버 팰 소 굳"하고 흥얼거리면 마음속에서 어떤 행복감이 몽글몽글 올라온다. 바다는 햇빛에 반짝이고, 이름 모를 나무는 알록달록한 빛의 무늬를 펼치고, 햇살은 발목을 따스하게 덮고, 가벼운 바람에 커튼은 살랑거리고, 가슴에서는 불꽃놀이가 시작될 거 같다. 이런 표현이 얼마나 과장되게 들릴지는 안다. 그렇지만 이 상황을 적확하게 표현한 것이라 믿는다. 


굳이 솔직히 말을 하자면, 맙소사, 우리는 처음부터 서로에게 빠져들었다. 거짓말처럼 단박에. 세상에는 처음 보자마자 마음이 끌리는 그런 사람이 있는 법이다. 그녀가 그렇다. 이유를 굳이  말하자면, 첫째는 나의 숲 속 작은 집에서 멀리 떨어진 다른 세계로 와서 처음 만난 인간이기도 하고, 둘째는 그녀는 들키고 싶지 않았겠지만 그녀에게서 이 무서운 세상에 적어도 이 사람만은 예전 그대로 나를 사랑해 줄 거라는 감정을 읽을 수 있었다. 그녀의 목소리에는 크리스털잔이 얇게 떨리듯 미세한 파동이 있었고, 나는 거기에 공명을 일으켰다.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 인간들이랑 살다 보니 나 자신이 고양이라는 사실을 점점 망각하는 게 아닐까 하는, 반대로 집사들은 인간이라는 사실을 망각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 


외출 후 돌아온 할머니 집사와 누나 집사에 대한 나의 반응이다. 


할머니 집사 : 말썽 피우지 않았지?

고양이 : 야옹!(어디 갔었어요? 궁금했잖아요!)


누나 집사 : 잘 있었떠요?

고양이 : 야아옹!(왔어? 어떻게 그렇게 오랫동안 날 두고 갈 수가 있어? 정말 보고 싶었어!), 야아옹? (내가 얼마나 찾아 헤맸다고! 제기랄, 대체 뭘 한 거야?)


집사를 대하는 나의 반응은 확연히 다르다. 차별 맞다. 누나집사가 들어오면 다리 사이를 돌아다니며 기분 좋게 목을 울리며 그날 일어난 일을 보고한다. 모처럼 만난 친구처럼 가슴 설렌다. 그런 내 모습에 그녀는 혀 짧은 소리를 내며 입꼬리가 올라간다. 다른 데 가서 혀 짧은 소리를 냈다가는 이상한 사람으로 오해받기 딱 좋다.


내 입장에서 인간을 바라보면 먼저 걷어붙인 종아리가 보이고, 팔다리는 아름드리 고목의 가지처럼 보이고, 얼굴은 막걸리 주전자 같다. 그런 집사들이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모습도 제각각이다. 먼저, 할머니 집사는 두 손을 골반에 느슨하게 올리고 서 있다. 녹아버린 초처럼 매가리가 없다. 뭔가 거슬리는지 고개를 졌곤 한다. 다음으로, 아들 집사는 두 손으로 골반을 짚고 한쪽 발목을 반대쪽 발목에 꼬거나 한쪽 발을 위아래로 까딱까딱 흔들며 지켜본다. 간혹, 네 발 달린 짐승처럼 엎드려 내 눈을 맞춰 어디에 시선을 두어야 할지 모를 때가 있다. 그다음으로, 누나집사는 손으로 나를 얼굴 높이로 '쑤우웅' 들어 올려 코를 맞대거나 온몸을 조물조물 만진다. 아니면 내 어깨에 팔을 두르거나 암탉이 병아리를 제 날개 밑에 모으듯 나를 감싼다. 몸만 감싸는 것이 아니라 내 잘못도 남몰래 감싸준다. 그런 누나 집사에게  다가가 갸르릉거리고 이마로 치대며, 아, 기분 좋아,라고 내 마음을 전달한다. 할머니 집사가 부르면 그러거나 말거나 하지만 누나집사가 부르면 엉덩이는 살짝 치켜들고 언제든 달려간다. 아무리 까무룩 잠들 뻔해도 말이다.


그녀의 침대까지 달려가는 과정도 재밌다. 책상, 침대, 카펫 위, 어디나 어지럽지만 내겐 흥미롭다. 책상 위는 무언가를 급하게 찾은 듯 손가방의 내용물이 쏟아져있고, 카펫 위는 옷가지, 종이봉투, 택배상자, 몇 권의 책과 쿠션이 널려 있다. 옷에 숨어있다가 종이봉투를 터널 삼기도 하고 택배상자에서 몸을 숨기기도 하고 책 모서리를 이빨로 갉고 쿠션을 물어뜯어 흰 털이 솟구치게 한다. 그런 후, 침대에 올라가면 멀대같이 비스듬히 서있는 곰인형과 널브러져 있는 기린이 있다. 슬렁슬렁 다가가다 나도 모르게 그녀의 발치에 드러눕는다.


짐작 건데 그녀는 애인이 없다.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면 얼굴이 한층 아름다워 보일 텐데 안 만드는 건지 못 만드는 건지 알 수 없다. 그녀는 차 안에서 백미러로 입술의 립스틱을 확인하거나 귓불에 귀걸이를 꽂아 넣거나 머리칼을 그러모아 한쪽 어깨로 내리거나 손가락으로 머리카락을 부풀어 오르게 하지 않는다. 이쁘게 보일만한 사람이 없다는 말이다. 그것보다 확실한 건 정해진 시간에 집에 돌아오고, 그녀 이외에 다른 냄새가 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외로워한다. 외롭거나 우울할 때는 초콜릿이나 아이스크림을 남김없이 먹어치우고, 그냥 잔다. 그녀의 감정을 좀 더 알아보고 싶어 무릎에 올라가 자리를 잡는다. 짐작대로 뒤숭숭한 마음이고, 감정은 많이 다운되어 있었다. 그래서 '걱정 마!'라고 갸르릉거리면서 메시지를 보내면 떨리듯 소리를 내며 나를 꼭 안는다. 나 원, 이렇게 나약해서야.


그녀도 어떤 남자를 사랑했고, 실연에 가슴이 아팠던 경험이 있을 거다. 미지의 결혼생활도 생각대로 흘러가지 않을 공산이 크다. 어쩌면 지긋지긋하게 싸울 수도 있다. 그러면서 어떤 부분에 대해서는 서로가 포기하고, 말수가 줄어들고, 틈이 생기고, 다정함은 줄어들고, 그 상태로 남은 인생을 살아야 한다. 그러다 사물들이 달리 보이는 순간이 찾아올 것이다. 남아있는 날이 지나온 날보다 적어질 무렵이다. 어쩌면 당연한 결과일지 모른다. 모든 사람에게 가장 주된 관심사는 자기 자신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어디에나 갈등과 배신과 기만이 있고, 일상적인 대화에서도 서늘한 날이 서있다. 단순하지만 이런 사실들을 그녀는 나이 들어 알아차렸다. 마치, 바람에 문이 갑자기 열려 봐서는 안될 것(인간관계의 어두운 면)을 들여다본 기분이었다.


사람들은 많은 것을 끌어안고 살아간다. 개중에는 평생 끌어안고 가는 나쁜 기억 한두 개 정도는 누구나 있다. 그녀도 길지 않은 인생에서 경험하지 않아도 될 것을 경험하긴 했다. 그녀에게 중고등학교시절은 그녀의 엄마가 입원한 병원이 세계의 전부였다. 그녀는 아픈 엄마라는 현실과 미래의 가능성사이에 끼여 있었다. 학교생활은 정상적이지 못했다. 친구관계는 말할 것도 없다. 


간혹 학교에 가면 주의를 쏠리게 하지 않으려고 꼼짝을 안 했다. 마치 수업 중에 화장실이 급한데도 아이들의 쏠리는 시선 때문에 참는 거와 같다. 언젠가 등굣길에 친구들이 그녀를 앞서 걸어가는 것이 눈에 띄었다. 무슨 일인지 그들은 소리 내어 웃으며 서로 밀치면서 기분이 좋은 듯했다. 그녀도 달려가 그들 앞에 "짜잔!"하고 외치며 나타나는 상상을 해보았지만 혹시나 말이 끊기고 자신에게 어색한 눈길을 던질까 봐 천천히 걸으며 간격을 넓혔다. 설령, 누군가 "안녕"하고 인사를 건네면 어설프게 "어, 안녕" 하고 짤막짤막하게 대꾸할 정도밖에 안 됐다. 학창 시절도, 친구들도, 엄마와 함께 사라져 버렸다. 엄마가 돌아가셨을 때는 배심감도 느꼈고 뭔가 단단히 어긋나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같이 버텨 왔었는데 그녀만 남겨진 거다. 곁에 있어야 할 엄마는 사라져 버렸다. 어쩐지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럴 순 없지, 배신감에 눈물조차 나지 않을 거라 생각했지만 그냥 눈물이 쏟아졌고, 그 모든 것을 받아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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