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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영 Oct 02.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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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화> 수수께끼의 시작


나쁜 일은 일어나기 마련이야, 그가 한동안 들었던 말이다. 이젠 그런 말을 건네줄 사람이 없다. 이유는 '히키코모리'이기 때문이다. 대략 인구대비 1% 정도라고 하니 한 번은 1% 안에 속한 셈이다.


지금은 어린 시절 숨바꼭질을 할 때 한 번쯤은 갇혀봤을 좁은 벽장 같은 방이 그의 세상이다. 그의 피난처이자 감옥이다. 현실의 길거리에 버려진 것보다는 혼자 무방비로 놓여있는 게 낫다. 참으로 작아진 느낌이다. 그를 가둔 것이 그였으니 그는 죄수이자 간수이다. 짤랑거리는 열쇠를 가진 죄수.


지금 몇 시쯤 되었지? 오전 5시 20분. 그는 얼떨떨한 상태로 잠에서 깬다. 이유를 알 수 없는 불쾌한 기운이 얼굴에 깃들어있다. 마음속 깊은 곳에서 미지의 힘들이 엎치락뒤치락 뒤엉켜 보이지 않는 살육을 벌이고 있다. 그의 영혼은 보이지 않는 것들의 전쟁터이다. 그는 방 안에서 왔다 갔다 서성이다 한동안 붙박인 듯 창가에 선다. 새벽의 유리창, 그의 모습이 흐리게 떠 있다. 문득 시야가 뿌옇게 흐릿해지며 불안감을 느낀다. 뭔가가 잘못되었어,라고 거울에 비친 자신에게 소리친다. 친애하는 세상은 그를 가만 놔두지 않았다. 그의 머릿속을 비집고 들어오는 쓸모없는 감정의 수하물들. 실현 불가능한 생각들, 이루어졌을 뻔한 일들, 체념해 버린 생각들, 원했으나 행하지 않은 일들, 한 번도 충족되지 않는 그리움들, 희망도 목적도 없는 생각들,  그리고 살아야 한다는 이유들.


한때는 막연하게 시간에 기대었지만 그를 짓이기는 건 마찬가지였다. 하루는 희망을 품고, 하루는 망설였고, 하루는 머뭇거리고, 하루는 미적거리고, 하루는 주저주저하고, 하루는 엉거주춤하고, 하루는 희망을 잃었다. 하루종일, 삶은 그에게 짐이다. 돌이켜보면 그가 어떤 종류의 고통도 겪지 않고 지내던 날은 하루도 없었다. 삶에게 말해본다. 내가 너를 느끼기 전에 그냥 스쳐 지나갈 수 없냐고. 다시, 내면 깊숙한 곳에서부터 피로감이 치밀어 오른다. 한 때는 평온함과 안정감을 주던 것들도 피로감으로 다가온다. 좁은 방 안에서 이리저리 걸음을 옮겨보고 침대에 한참을 앉아 얼굴을 손으로 쓸어본다. 그의 시선은 다시 지나간 추억을 찾듯 허공에 머무른다. 나는 그에게 다가가, 불안해하지 말라고, 두려워하지 말라고, 절망할 필요 없다고, 갸르릉 거리며 그의 얼굴에 내 얼굴을 부빈다. 그는 나의 머리를 살살 긁어준다. 그러다가 방을 나선다. 아마 산책을 할 거다. 그의 감정은 오래된 집의 낡은 배관처럼 고장 나기 쉽지만 오늘은 별 무리 없이 작동되는 듯하다. 산책은 존재를 위해 스스로 무장하는 시간이다. 나가는 모습은 숨어 지내던 이교도인양 보인다.


주변사람들은 그에게 심리상담을 받아보라고 한다. 자신의 마음을 어떻게 처리할지를 남들에게 부탁하란다. 깊이 있는 책 한 권 읽지 않은 다른 이에게 자신을 맡기라는, 젊은 그들에게 살아온 인생을 얘기하며 울고불고할 것까진 없지만 스스로 자기감정에 취해 눈물, 콧물 쏟아내서 처방전을 받고, 약 타러 가는 순간에도 달려가는 차에 뛰어들까 봐 정신을 차리는 기분, 약을 타고나서도 다음번 약을 탈 때까지는 이상한 생각을 하지 않겠지 하고 안심하는 씁쓸함을 경험하라고 한다. 생각을 고쳐먹을까도 했다. 외로움은 처음이자 마지막 맛본 인생의 쓴맛이라, 여기에도 사람 있다고, 그들에게라도 말해 볼까도 생각했다.


젊은 시절의 외로움이 다른 사람의 만족감을 상상하고, 가지지 못한 질투심과 엿보는 관음증과 관련이 있다면 나이 들어 느끼는 외로움은 결국에는 자기 파괴본능을 끄집어낸다. 그럴 때는 여러 가지 이유를 대며 그래서는 안된다고 자신을 설득한다. 그의 얘기를 듣는 그들도 처음에는 사적인 얘기에 관음적인 흥미를 보일 거다. 그러다 구구절절 늘어놓는 비참함에 지루해하고 귀가 귀찮을 거다. 그리고는 다른 이의 불행을 볼 때 반사적으로 느끼는, 측량할 수 없을 정도의 희미한 악의적인 기쁨과 자신은 비껴 나 있다는 묘한 안도감을 느낄 것이다. 누군가의 존엄을 희생시켜 기쁨을 얻는 자들을 그도 숨겨진 형태로 경멸할 것이다.


그가 처음부터 사람들과 접촉을 꺼려한 것은 아니었다. 한때는 주변사람과 좋은 관계를 유지할 뿐만이 아니라 분위기를 이끌어갔다. 자신의 일에 대한 성공과 자부심 덕분이다. 지금은 무엇을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모를 때가 많고, 설령 말한다 할지라도, 상대의 얼굴을 바라보며 마음을 열고 사람 좋게 말하는 방식이 부자연스럽고, 낯설고 어색함을 버티기 위한 유머도 사라졌다. 한때는 친분이 있던 사람들에게 '나도 이렇게 되고 싶지 않았어. 날 도와줘'라고 말하고 싶었다. 누군가에게 이해를 구한다는 것은 현재의 내가 아닌 다른 자로 알아달라는 것이다. 그런 주변머리도 없지만 막상 그런 상황이 되면 '아니, 괜찮아!' 하면서 사양했을 거다. 솔직히 말하면, 그들이 그의 처지를 미루어 짐작하여 그의 손을 잡아주기를 기대했었다. 그렇지만 그도 알고 있다. 그의 엉켜버린 인생은, '힘내'라고 말하는 다른 이들에게 또 다른 삶의 용기를 주는 것을, 적어도 나는 저 정도는 아니라는 묘한 만족감을 주는 것을 알았다. 그 친구들은 슬픔을 약간 흉내 내보며 "딱하기도 하지, 끝이 좋아야 하는데"라고 위로했다. 됐다 그래, 누구의 인생도 끝이 좋을 수는 없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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