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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아
"아빠아빠~ 오늘 무슨 일이 있었나면요~"


오늘도 또다시 시작된 주말. 따뜻한 온기와 함께 맺어지지 않은 오늘에 대한 기대감으로 잔뜩 증폭된 어느 아침. 태양의 줄기에 벽과 장판이 새하얀 모습을 드러낸 채 윤기 흐르는 광경을 자아내고 있었다. 솜털을 잔뜩 머금은 듯, 부드러움과 푹신함을 함축한 듯 했다. 나는 소파에 앉아 그 광경을 보고 있었다. 지금 앉고 있는 소파마저 하얀 세상과 하나가 되어 어우러지는게 가히 설국에 있는 듯 했다. 난 주변을 돌아보았다.


'나밖에.. 없나?'


텅 빈 내 공간 한가득 흩뿌려진 채 은은히 풍겨오는 네 흔적으로부터의 예고. 꽃이 저물어간 자리에 또다시 이어진 생명의 씨앗. 어쩐지 무언가 사라진 듯 아닌 듯한 묘한 감정이 들려던 찰나, 천진난만하고도 여린, 그러나 티끌 하나의 먼지도 없는 선한 음성이 날 부른다.


"아빠~~~~"


비몽사몽 중인 상황. 내가 지금 꿈인지 현실인지 분간 안되어 멍때리는 상황. 이에 난 다시 눈을 감았다가 천천히 눈을 뜬다. 그때, 내 눈앞에서 한 어린 여자가 활짝 웃은 채 나를 보고 있다. 마치 누군가, 내 인생 어느 순간을 따스하게 비춰주었던 시절. 그 시절을 연상케 하는 온기. 그 온기를 생각나게 하는 느낌이었다. 나는 그녀를 한동안 바라보았다.


"노아.. 당신은 지금 당신의 미래 속 한 씬을 보고 있으신 데요.. 지금 당신의 눈앞에 누가 보이나요.."

이에 난 내 눈앞에 있는 아이를 보며 나지막하게 대답했다.


"딸..이요.. 제.. 딸..."


너와 나의 순간. 최면으로 말미암아, 과거의 내가 미래의 너에게 닿았던 첫만남이었다.





내가 최면을 받게 된 계기는 신디 때문이었다.


"자기~ 이번주 주말에 잠깐 최면 받는거 어때?"


최면? 갑자기 뜬금없이 최면?


"왜? 싫어."


굳이 최면을 받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그녀를 통해 최면을 받을 수 있었던 기회는 많았으나 번번히 거절해왔던 것이다.


"자기는 전생을 믿지 않아? 내가 어떤 사람하고 관계 안좋잖아~ 그게 실은~ 전생부터~"


그때마다 난 웃으며 말하곤 했다.


"그거는 근거없는 소리야, 신디~ 사람의 일생은 한번 뿐이고. 그렇기에 후회없이 살아야 한다고 생각해. 그래서 내가 드라마 볼 때마다 전생 설정 보면~ 어유~"


그러나 이번만큼은 달랐으니. 신디가 미소 지으며 말했다.


"그.냥.받.고.와"


해맑게 웃는 그 미소 뒤에 숨겨진 발톱을 보게? 만약 안 간다면, 정신적으로 전치 여러 주 타격을 받을만한 일이 일어난다는 예고렸다~ 이에 난 아무렇지 않은 듯 침을 삼키며 말했다.


"그~ 럼 받아야지~~ 나 최면 받아보는 거 좋아해~"


그리고 그길로 바로 서초로 향한 나는 신디가 알려준 상담실로 갔다. 약간은 누추하고도 사무적인, 세월의 흔적이 조금씩 남아있던 빌딩의 외관이었으나 상담실 내부로 들어가니 그러한 외관과 완전히 다른 분위기에 조금은 놀랐다. 한때 사무실이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집과 개인 서재 사이 중간 어디쯤이었달까? 한쪽은 화장실에 조그맣게 구색을 갖춘 부엌. 그리고 내부를 가늠하기 힘들 정도로 어두운 작은 방. 그 방을 경계로 한쪽 벽을 가득 메운 책장에 수많은 책들이 꽂혀 이었고. 그 앞에는 거대한 테이블과 8개 정도의 의자들이 놓여있었고. 다른 쪽 벽에는 거대한 텔레비전이 있었는데, 이 하나하나가 한데 어우러져 신선함을 자아냈다. 어우러지는 듯 따로 노는 듯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이에 한동안 말을 하지 못한채 내부 인테리어를 보고 있을 때 였다.


"오셨어요~ 어서 앉으세요~"


미소로 밝게 맞아주신 상담 선생님. 마치 처갓댁을 방문한 듯한 기분이 들어 기분이 묘했다. 그러나 이내 시작되는 대화가 날 멈칫하게 만들었으니.


"다름이 아니라, 제가 노아를 상담해주고 싶었던 게 땀이에요~ 그때도 잠깐 뵈었지만, 제가 느끼기에 노아가 땀이 많으신 거 같더라구요~ 그래서 최면으로 조금이나마 땀을 덜 흘리도록 해주고 싶어서요~"


이거였구나.. 그래. 필자는 땀이 좀 많은 편이다. 겨울에도, 땀을 흘리는 편이니. 물론, 그래서 불편했던 순간들은 많았다. 자칫 부끄러웠을 순간들도 많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 때문에 힘들지는 않았었다. 이런 날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준 사람들이 많았기에 컴플렉스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었다. 그렇기에 그걸 컴플렉스이자 PTSD라고 생각해 최면으로 해결해주겠다고 생각하신 선생님의 말씀이 이해가 가지 않았었다.


그러나 일단은 받아보기로 하였다. 어찌 되었든 신디의 당부가 있으니. 이대로 가는건 도리가 아니기도 하고.

상담 선생님은 날 암실로 데려가셨고. 난 1인용 패브릭 빈백 소파에 앉아 눈을 감고 있었다. 어두운 방 내부에 조용한 분위기가 날 압도하고 있었고. 그 기류에 자연스레 피로가 한꺼번에 밀려오면서 졸린 듯한 기분이 들 때였다. 그때 선생님이 나지막하게 조용조용히 말씀하셨다.


"최면으로 땀 흘리는걸 없애볼 건데요~ 지금까지 노아가 살아오시면서 느끼기에 땀을 많이 흘리신 걸로 상처 받으셨던 순간들을 떠올려 볼까요?"


음.. 생각해보자.. 뭐가 있.. 으려나.


"떠오르시는 순간이 있으실까요?"


그러나 오로지 보이는 건 암흑뿐이요. 떠오르는 건 적막 뿐이었다. 이때부터 마음 속에서 갈등이 동요하고 있었으니.


있다고 연기를 해야 할 것인가? 없다고 솔직하게 말할 것인가?


그러나, 연기하는 건 그분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 생각해서 솔직하게 대답하였다.


"아니요.."


미안해요.. 그런데 진짜 1도 없었어요. 이때부터 나는 나대로~ 선생님은 선생님대로 난감해하시는 등 어색한 분위기가 이 암실을 감쌌으니. 이 암흑 속으로 빨려 들어가 이 기류에서 빨리 벗어나고픈 마음 뿐이었다. 괜히 새어나오는 웃음을 참느라 슬픈 생각만 가득 하고 있는 나였으니..


이에 최종적으로는 선생님께서 너털한 웃음을 지으시고는 말씀하셨다.


"내가 혼자 자의적으로 해석했었네.. 땀 흘려서 힘들게 느낀다고.. 허허.."


이곤(더킹 영원의 군주 주인공)이 왔다간건가.. 얼른 이 정적을 깨줘요. 제발..


"혹시 받고 싶은 상담 있어요? 아니면 전생을 본다거나~"


전생을 보겠다고 한 나. 그러나 그녀의 수난은 여기서부터 시작이었으니..


"자.. 노아.. 지금 눈앞에 블랙홀이 있는데요~ 블랙홀이 느껴지시나요?"


...


"아니요..."


"안느껴지나요?"


네.. 제발 느꼈으면 좋겠어요..


"노아~ 문이 보일텐데요~ 문이 보이시나요?"


...


"안보여요.."


그리고 이어진 침묵의 시간. 그 찰나에 서로 많은 생각이 교차했던 서로. 이윽고 선생님께선 말씀하셨다.


"노아가 가고 싶었던 순간이 있어요? 아니면 보고 싶었던 모습이라던가요.."


가고 싶었던 순간이라.. 순간, 많은 그리웠던 씬들이 밀려오고 있었다.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세요.. 간절히 원하는.. 당신의 진심을.. 그 목소리에 귀기울여보세요.."


지금 내가 간절히 보고 싶은 순간. 그때 내가 마주하고 싶은 사람.. 바로 가족이었다. 아버지와 어머니로부터 분기한, 우리 가족. 그 모습을 보고 싶었다.


"미래..요.. 미래 내.. 가족.."


이에 조용하고도 천천히.. 상담 선생님의 음성이 스며시 내 귓가를 따라 흐르다가 이내 스르르 소산하는 듯 했다.


"그럼 노아의 머지않은 미래의 어느 날로 가볼께요.."


그리고 희미해진 그녀의 음성과 함께 내 무의식은 짙어져만 갔고. 점점 천천히 깊은 어둠으로 가고만 있었다. 조그마한 소음도.. 내가 존재한다는 의식도, 시공간 감각도.. 그 어느 감각도 느껴지지 않는 머나먼 곳 경계를 지나 깊은 내 내면 어딘가로.


"무엇이 보이시나요.."


어느새 환한 태양의 온기에 씻겨진 어둠. 그 흔적 하나 없이 새하얗고도 부드러운 솜털 이불 속에 파묻혀있는 듯한 아늑함이었다. 갓 핀 기지개에 지난 기억들이 하룻밤 꿈처럼 날아가버린 느낌이 드는 듯했다. 천인지 가죽인지 분간이 안될 정도로 새하얬으나 느낌만은 편안했다. 오로지 푹신하다는 감각 밖에 느껴지는 게 없었다. 그때였다.


"아빠아빠~ 오늘 무슨 일이 있었나면요~"


시공간을 넘어 찰나에 맺어진 인연의 끈. 그로 인해 잉태된 그 무언가. 오랫동안 알았던, 늘 그리운 듯한 이의 아우라였지만, 처음 듣는 소리. 누굴까.. 천진난만하고도 여린, 그러나 티끌 하나의 먼지도 없는 선한 음성이 날 부른다.


"아빠~~~~"


내가 지금 꿈인지 현실인지 분간 안되어 멍 때리는 상황. 이에 난 천천히 눈을 뜬다. 그때, 내 눈앞에서 한 어린 여자가 활짝 웃은 채 나를 보고 있다. 마치 언젠가 내 인생 어느 순간을 누군가가 따스하게 비춰주었던 시절. 그 시절을 연상케 하는 온기. 그 온기를 생각나게 하는 느낌이었다. 나는 그녀를 한동안 바라보았다.


"노아.. 당신은 지금 당신의 미래 속 한 씬을 보고 있으신대요.. 지금 당신의 눈앞에는 누가 보이나요.."


이에 난 나지막하게 대답했다.


"딸..이요.. 제.. 딸..."


그녀는 다시 말을 하였다.


"좋아요.. 그럼 그로부터 10년후인 미래로 가볼건대요~"


장면은 바로 바뀌어. 같은 장소이지만, 내 눈앞에 보였던 건 어린 여자아이가 아니라 교복을 입고 서있는 소녀였다. 질끈 뒤로 머리를 묶어 이마를 보이고 있었다. 그리고선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양손은 중앙으로 모아 포갠채, 다소 주눅든 모습으로 내 앞에 서있었다. 나는 소파에 앉아 어떤 종이를 손에 쥔채 보고 있었으니.. 성적표인 듯 하였다.


"뭐가 보이나요?"


어린 소녀.. 여리고도 여린, 그 시절 나와 같은 시련을 겪는, 앞으로 내가 걸어왔던 길을 다른 방식으로 걷게 될 내 분신.. 과도 같은 존재.


꿈을 이루기 위해 달려온 지난 나의 여정. 사랑을 찾아나선 모든 시간. 이 머나먼 길의 끝에 마주하게 된 건 오로지 너였구나..


그리고 장면은 빠르게 지나가고 있었고.. 점점 어둠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무의식의 세계가 빠른 속도로 무너져가 어둠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그때, 그 암흑 속에서 어린 남자아이의 웃는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블랙홀에 빨려 들어가 사라지려 하기 직전, 들려온 음성. 또다시 이어져 올 생명이 한 생명 다하려 하기 직전 나타난 것이다.


"노아~ 방금.. 잠시 저흰 노아의 미래를 보고 왔는데요.. 어떠셨나요?"


멍했다.. 난생 처음 겪은 경험이었다. 내 의지로 움직이지 않은 채 그저 내가 숨쉬는 공기와 하나가 되어있는 몸과 잠들어있는 감각뿐이었으며, 내 의식은 아직도 꿈을 꾼 듯 한, 증발해버린 그 세계에 계속 머무르는 듯했다.


뭐였을까..


"사람 내면에 귀를 기울여 보세요.. 누군가는 말해요. 미래, 전생.. 그건 보이지 않는 거고. 거짓말이라고. 그런데, 노아. 사람의 내면 속에 자리잡은 어떠한 무언가는 힘이 있구요. 무한한 잠재력이 있어요. 그렇기에 미래도 볼 수 있는 거구요. 간혹 미래 예지력을 가진 사람을 보잖아요. 이런 이유에서에요~"


사이비 같아요~ 그러나 아직도 그런 상담 선생님의 말씀이 사이비처럼 들렸던 나. 사이비 같은데..


이에 상담 선생님이 웃으며 말했다.


"사이비 같죠?ㅎㅎ 그런데 진짜로 있어요~"


그러나 이와 별개로 확실히 몸이 이완되는 효과는 있었다. 의식이 있는 채로 깊은 잠을 잔 듯 한 느낌이었다. 오랜 긴장과 스트레스로 뭉쳤던 혈이 스트레칭과 함께 피로를 쫙 푼 기분. 수도 없이 마사지를 받으면서도 끝내 양어깨와 등에 뭉쳐있던 피로를 풀 수 없었던 나로선, 정말 그거 하나만으로도 좋았던 경험이었다.

"그래도, 확실히 선생님 말씀대로 피로가 확 풀리는 거 같아요~ 잠을 안잤는데 잔 거 같은 기분이에요~"

"그렇죠? 그래서 그거 때문에 상담 받는 분들도 많아요~"


그 후 선생님과 대화를 하다가 상담실을 나온 나는 허공을 잠시 멍하니 바라보다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푸른 하늘이었다. 여느 때처럼의 일상이었다. 그러나, 아직도 마음 속에 남아있던 온기와 잔상이 계속 아른거려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늘 보던 상가 건물과 거리의 모든 일상이, 지나가 버렸으면 하는 과거처럼 느껴졌다. 빨리 이 시간이 지나갔으면 마음만 드는 겨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