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구정 앨리스

by 노아
“그리고 다음 순간, 앨리스는 어떻게 다시 나올지 생각도 하지 않은 채 그 뒤를 따라 아래로 떨어졌다.”
“토끼 굴은 한동안 터널처럼 곧게 이어지다가 갑자기 아래로 뚝 떨어졌다…”

-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중에서


서울의 대표적인 부촌 중 한 곳으로, 강남구 내 최대 부촌인 곳. 한남동과 청담동, 그리고 반포동과 함께 대한민국에서 가장 집값이 비싼 동네, 압구정. 그곳을 결혼 준비 시작부터 끝까지 줄곧 통근하듯 했던 신디와 나.


우리가 이곳에 제집 드나들듯 했던 이유는 드레스와 결혼반지, 그리고 슈트 때문이었다.


마치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결혼식 드레스와 반지, 슈트 샵 전부 압구정에 몰려있었으니. 이에 우린 주말마다, 가끔 평일에 몇 달에 걸려 갈 수밖에 없었다.

가는 거 자체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다만, 문제가 되는 건 나였다.


"노아~ 나 결혼반지는 브랜드 있는 걸로 하고 싶어~ 반지 브랜드로는 티파니 앤 코~~ 쇼메~~"


"콘소메? 응~ 나 콘소메 좋아해~"


내 썩은 개그에 표정이 일그러진 신디. 그리고 이어진 눈초리에 나는 바로 고개를 돌려 애써 애꿎은 곳만 보고 있었다. 그때, 우리 눈에 보인 백화점이 거대하고도 화려히 우리를 내려다보는 듯했고. 그 위용에 우린 자연스레 금으로 수놓은 듯한 그 굴 안으로 떨어져듯이 들어갔다.


그리고 그곳에 입성한 우리 앞에 보인 건, 거센 물결 밀려오듯 쏟아지는 향수. 우리에게로 한가득 쏟아지는 향기에 그만 나는 정신을 못 차리고 있었다. 폐쇄되고도 거대한 공간 전체를 자리 잡고 가득 메운 인공적인 냄새. 금빛과 흰색 스테인리스와 타일 등으로 수놓은 듯 짜여진 벽들. 먼지 한 톨 안 보이는 새하얀 타일로 덮인 바닥. 제각각 양복과 짙은 향수, 화장으로 땀과 온기를 감춘 사람들. 이곳 하나하나 전부에서, 나는 왠지 모를 멀미를 느끼기 시작하였다.


"노아~ 이제 한 곳 한 곳 상담받아보자~"


반지 업체들 한 곳 한 곳 상담을 받아보기 시작한 우리. 그때 내가 놀랐던 건, 상담받기 위해서는 번호표를 뽑고 대기를 해야 했던 것이었다.


"신디? 근데 왜 번호표를 뽑고 대기해?"


"원래 주얼리는 그런 거야~~"


더 이상의 질문은 흔적도 없이 증발하여 저 하늘 위로. 왜 그런지는 끝내 답변을 얻지 못한 채 바로 쇼핑 전환. 이후 여러 곳에서 번호표 뽑고 대기하고 쇼핑하다가 업체 한 곳 씩 상담 시작.


그런데, 상담할 때마다 열거되는 반지 가격에 나는 내 인생 전체 통틀어 처음 들어보는 화폐 단위를 들었으니.

"이 반지 가격은 ~~~ 만원 되겠습니다~"


뭐라구요? ~~~ 만원이요? 와..


"노아, 이 반지는 조금 디자인이 별로인 거 같아. 스타일이 조금 올드해~"


이에 슬쩍 가격표를 보면, 그나마 가격 수준이 들숨 날숨을 스타카토 식으로 끊어 숨 쉴 수 있을 정도.


"노아~ 이 반지는 정말 마음에 들어~ 디자인도 그렇구~ 뭔가 느낌이 좋아~"


신디가 픽한 반지 가격표를 보면, 어김없이 가격대가 어나 더 레벨의 금액이었으니. 아, 정말 신디 너는 유독 안목이 좋아서 매번 비싼 것만 감지한단 말이냐~ 이후 패턴은 신디가 반지를 보면, 슬쩍 가격표를 보고 놀라고 경악하는 씬의 연속이었다.


정말.. 가격대가.. 향수 냄새마저도 날려버릴 어마어마함이었달까. 그런데 더 문화 충격이었던 따로 있었으니..


"노아~ 이 반지는 플래티넘, 골드의 구조적·조각적 요소가 있는 게 조금 딱딱해 보여서 나랑 안 맞는 거 같은데 어때?"


이에 벙찐 나는 그저 신디를 멍하니 보며.


"플래티넘? 뭐? 내가 아는 플래티넘은 게임 선수 카드 등급인데.. "


내 대답에 신디는 말했다.


"자기~ 그러지 말구~~~ 자세히 좀 봐봐~~~ 좀 전에 봤던 브랜드 꺼 반지와 비교해서 어떤 거 같아??"


신디의 봇물 터지는 질문 세례와 침묵과 멀미의 향연 속에서 점점 기화되는 듯한 내 멘탈.

내 눈에는 브랜드별 여러 반지들 간 어떠한 차이가 있는지 전혀 알 수 없었으며, 그저 비싸고 비싸고 비싸다는 거밖에 보이는 게 없었다. 지금 육안에 날 비추는 다이아몬드 빛이 마치 레이저처럼 내 머리를 매 초마다 쏘아대는 느낌이었으니, 나는 그저 정신 못 차리고 있었다.


드레스와 슈트 샵 투어도 다를 바가 없었다.


그래도 다행히 드레스, 슈트 샵 같은 경우, 우리 경제적 형편에 맞게 플래너 분이 리스트로 그 후보들을 추려주셔서 한결 나았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싼 건 비쌌다..


또한, 비싼 거와 별개로, 반지와 마찬가지로 그 드레스와 슈트가 그 드레스, 슈트였다..


이러하니 문득 든 생각은..


결혼이란, 있는 사람들이 하는 건가?


그러나, 돈 신경 쓸 거였으면 이 결혼은 시작도 하지 않았다. 한정된 자원으로 최대치의 수확을 이끌어하지 않겠나. 모른다고 투정 부리지 않기로 결심. 끝도 없이 상승세였던 그사세 가격대에 수차례 어퍼컷 당한 현실 인식 위에 자리 잡은 내 이성. 이때부터 나는 ChatGPT에 빙의되어 나와 신디가 최대한 끌어모을 수 있는 자금력을 기준으로 계산하기 시작했다.


"노아~ 이 반지 어때?"


신디가 이 말을 하기 전에, 미리 가격표를 스캔. 신디가 말하기도 전에 미리 정리함으로써 우리 예산대에서 오버되는 건 사전 차단하였다.


"신디~ 저건 우리 예산대에 안 맞는 거 같은데? 다른 거 찾아보자"


신디가 반지 고르는 거 관련 내 의견을 물을 때, 격렬히 내려가려 하는 내 눈을 부릅뜨는 사투를 벌이며 쌍꺼풀 생긴 눈으로 내 창작 스킬과 눈썰미 등 내 모든 잠재력을 총동원하여 한 편의 대서사시를 서술하였으니.


"신디, 그 반지는 말이지~ 어디서 본 짐 한? 그런 흔한 디자인 아니야? 우리 자기가 디자인했던 거보다 창의력이나 독창성 등이 떨어지지 않을까?"


브랜드 공부는 하지 않더라도, 평소 신디가 말해왔던 것들을 한 귀로 흘리지 않고 간직해 두었다가 심어놓은 떡밥을 풀어놓듯이 풀어두는 활약의 향연을 펼치고, 이후 계속해서 모든 반지마다 내 의견을 묻는 신디의 질문은 끊임없이 계속되었다.. 아, 끝이 보이지 않는 질문들이여.. 이걸 바란 건 아닌데.. 허허허..


그리고 드레스의 경우에는 우선 온라인상에서 봤을 때는 전혀 알 길이 없었다. 그래서 전적으로 플래너 분에게 물어봐가면서 드레스 샵 리스트에서 일부 드레스 샵 투어를 진행하기로 하였다. 아무래도, 샵에 직접 가서 드레스를 입어보는 수밖에 없었다. 이는 슈트 샵도 동일하였다.


이때, 드레스 샵 투어 때 인생에 한번뿐인 경험을 하였으니..


드레스 샵 피팅룸. 벽 한편에 길게 늘어서 있는 소파. 그 소파에 앉아 있으면, 그 앞에는 원형의 단상과 그 뒤에 거울. 그리고 소파와 그곳 사이에는 커튼이 드리워 있었다. 그리고 길게 늘어서 있던 소파 옆 작은 의자에는 플래너님이 앉아 있으셨고. 이윽고 플래너님과 내가 신디가 커튼 너머로 드레스 입는 걸 기다리는데, 그때의 기분이란 내가 드라마나 영화 속 주인공이 된 듯, 간질간질하고도 쑥스러운 기분이었다.


신디를 기다리며 문득 든 생각은..


영화나 드라마 속 남자 주인공이 이런 기분이었겠구나..


찰나의 공백, 그 사이에 많은 생각들이 교차했다.


"신랑님~ 무조건 리액션~!! 아시죠? 리액션 안 좋으면 평생 신부님으로부터 한소리 들으실 거게요~"


"아.. 네네!!!"


리액션! 무조건 오버스럽고도 진심을 담은 듯한 리액션으로!!! 스스로에게 되뇌고 있을 때였다.


"첫 번째 드레스예요~"


직원분의 말씀과 함께 가려져 있던 커튼이 양 옆으로 스르르 물러나면서 새하얀 빛과 함께 보여지는 신디의 모습. 드레스를 입은 신디의 모습을 본 순간, 유콜잇 러브 노래가 내 귓가에 울리고 있었다.


You call it love

There are things I need to say

about the way I feel when your arms

are all around me


당신이 사랑이라 부르는 그것

당신이 날 감싸 안을 때

내가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

말해 주고 싶어요


You call it love

Words I'd heard that sound so fine

Meaningless each time

till you came and found me


당신을 그걸 사랑이라 부르죠

내가 들어왔던 말은 그럴듯했지만

당신이 다가와 날 발견하기 전까지는

언제나 의미 없는 말에 불과했어요


See the ground is slowly turning

dizzily, easily

Feel the way my heart is burning

secretly inside of me


보세요, 땅이 서서히 어지럽게

돌아가는 것 같아요

내 안에서 은밀히 불타오르는

마음을 느껴 봐요


난생처음 보는 신디의 모습에 넋이 나가 순간, 내 시간은 슬로우 컷. 천천히 신디의 모습을 줌 인하여 찬찬히 내 눈에 담고 있었다. 그렇게 한동안 바라보다가 내 머리를 강타한 이성의 두뇌가 나를 깨우고.


정신 차려! 순간의 기분으로 판단을 하면 안 돼!!


나는 신디의 체형과 외모, 분위기에 어울릴만한 드레스. 그런 드레스들을 많이 가지고 있을 듯한 샵을 고르는 데 집중하였다. 샵마다, 3~4벌의 드레스를 입어볼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이것도 돈이었다.. ), 샵을 픽하는데 어려움이 있었다. 그래서 플래너님의 조언을 참고해 가면서 선택에 집중을 하였다. 그러나, 뭐니 뭐니 해도 드레스 픽은 신부의 선호를 최우선시할 수밖에 없었으므로 신디의 의견을 전적으로 반영하되 그녀가 판단을 하기 어려워할 때 의견을 내는 식으로 접근하였다.


슈트는 의외로 간단히 선택할 수 있었다. 그날, 슈트 샵 직원분들의 서비스를 보고 선택하였다. 슈트 샵은 두 곳 추천받았는데 한 곳은 마치 우리들의 선택을 샵에 전적으로 맡기라는 식으로 진행되었다. 그러나 그래도 여러 슈트들을 입어보고 결정하고 싶었던 우리로서는 그 슈트 샵은 조금 마음에 들지 않았다.


반면, 나머지 한 곳은 여러 슈트들을 입어볼 수 있었다. 친절히 직원 한 분께서 피팅하는 내내 미소를 잃지 않은 채, 우리를 응대하였으며 적극적으로 나서서 5벌이 넘는 슈트를 피팅해 주셨다. 그 직원 상사가 그 직원을 눈치 주는 게 보일 정도였으나, 아랑곳하지 않고 오로지 나의 피팅에만 전념해 주시는 그 서비스 정신에 감동한 나머지 바로 그 슈트 샵과 계약을 결정하였다.


몇 백만 원이 넘는 가격대를 기본 디폴트로 갖춘 럭셔리함으로 가득했던 세계. 이제야 드레스 샵과 슈트 샵을 픽했을 뿐. 아직 신디의 픽을 받지 못한 절대 반지를 찾아 나서야 하며, 이후 스튜디오 촬영 때 입을 드레스와 슈트 픽을 해야 한다.


또, 본식 때 입을 드레스와 슈트를 픽해야 하는 등 많은 과제들이 산재해 있었으니. 그 과제들이 끝나지 않는 한, 우린, 특히 나는 이 세계를 벗어날 수 없다. 익숙하지 않고, 아직도 조금은 낯설고 거리감을 느끼게 하는 세상이었지만, 그 세상 속에서도 나름대로의 기준과 규칙이 있었고. 향수로 가득 채워진 공기 틈 사이에 피어있는 인정도 또한 있었으니.


여러 달 며칠 정도 통근을 하며, 직접 부딪히고 나서야
조금은 이곳의 생태계를 알 것도 같았다.


토끼굴에 떨어졌던 앨리스는 결국 잠에서 깨어나 현실로 돌아온다.

그런데, 이 여정을 이어온 나와 신디는 과연 이 세계를 벗어나면, 우리가 알던 그 세계로 돌아올 수 있을까?

압구정역 한가운데에 우뚝 서있는 백화점 건물을 바라보다가, 다시 발걸음을 돌렸다.

그래도 아직 우리의 여정은 이제 시작이니까.


조금 더 이 세계를 즐겨보기로 하였다.

그 첫 번째 시작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우린 그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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