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역사는 우연히 시작된다..

by 노아
언제나 우리의 역사는 우연히 시작된다.
그러나 늘 지나고 나서야 깨닫게 되는 우리.

그리고 이번에도,
그때의 우린, 알지 못했다.


신디를 알게 되기 이전, 한 인연이 있었다. 서로 사랑하고 이별했었다. 그 이별로 인해 누군가를 알게 되었고. 그 사람으로 인해 많은 과정들을 겪었다. 그러다가 그 끝에 이르러서야 신디를 만날 수 있었다. 당시에는 신디를 만나게 된 순간이 갑자기 하늘에서 툭 떨어진 사건인 줄 알았다. 적어도 그렇게 느꼈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결코 갑자기 발생한 일이 아니었다.


그 이전으로 거슬러 가면, 우연히 한 사람을 만나 사랑을 하고, 이별을 하게 되면서. 우연히 누군가한테 전화를 걸었던, 그 순간으로부터 비롯되었던 게 아니었을까. 그때부터 수많은 사건들이 연쇄적으로 발생했었다. 그 무수히 파생되는 인과 관계 속에서 나는 늘 어딘가를 향해 나아가는 듯했다. 마치 한 시대를 자아내는 것처럼. 아직 만들어지지 않은 그곳을 향해. 그리고 그 시대의 끝에 이르러서야 운명이라고 할 수 있는 무언가를 마주하게 되는 경험.


돌이켜보면, 그때의 이별과 그날의 만남. 그리고 지금의 관계까지 이 모든 과정들은 한 우연으로부터 시작되었던 거 같았다.


갑작스러운 검색과 충동적으로 결정한, 어느 경기도의 아파트 임장. 그 임장이 그러했다. 그 임장으로부터 말미암아 먼 훗날 될 우리 신혼집을 발견하게 될 줄 누가 알았을까..


경기도 서남쪽에 있는 지역이었고, 이름 있는 브랜드가 아닌, 매물이었다. 그곳에 연고지가 있어서 선택했냐? 전혀 아니었다. 그저, 값이 합당하다고 생각했다. 부모님의 지원과 우리 전재산, 그리고 은행의 많은 도움을 받는다면 매매하는데 문제없어 보였다. 그래서 충분히 가능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날로 바로 임장 예약을 했던 것이다.


그러나, 단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곳이었으니, 임장 하기 전 동네를 미리 답사하였다. 우선 우리 집에서는 지구 남방구에서 북반구까지의 거리 같았달까? 지하철과 버스를 타는데 오랜만이었다. 멀미를 느껴본 경험이. 빌라를 전전하는 신세이긴 했으나, 그래도 나름 역세권이었던 내게 버스 타고 어딘가로 간다는 건 오랜만에 느껴보는 경험이었다.


공백 하나 용납 못할 만큼 빼곡히 들어선 빌딩들에서 하천과 산, 그리고 넉넉한 공백을 허용하는 듯한 여백의 미학. 버스 차창 너머로 밀집도가 옅어지는 게 느껴지면서 마음속에서 조금은 답답함이 사라지는 듯했다. 동네에 도착하자마자 걷기 시작한 내 눈앞에 보였던 풍경이란, 세월이 많이 지났음을 짐작 가능하게 할 만큼 낡은 외관이었다. 벤치에는 할머니, 아주머니들이 앉아서 푸른 하늘을 보고 계셨으며, 높지 않은 높이에 세련되지 않은 디자인의 상가 건물들의 모습에서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내 어린 시절에 온 듯한 느낌이 물씬 들었다.

멀리 서는 적당히 솟아있는 산이 있었고, 뒤돌아보면 하천이 있었다. 이를 보며 문득 생각했다.


‘적당한 상가 건물 밀집에 배산임수까지 지리학적으로는 나쁘지 않은 거 같고..
나쁘진 않은데?’


이런 생각을 하면서 부동산에 도착하자마자 공인중개사 아주머니께서 나를 VIP 맞이하는 듯 환대를 한가득 하시며 임장 할 매물로 가는 내내 나에게 말씀하셨다.


“오늘 급매로 나온 매물이요~ 원래는 6억이었는데, 3억 6000까지 내렸어요~ 지금 이 매물을 원하시는 분들이 너무 많아서요~~ 빨리 결정해주셔야 해요~ 이 정도 집에 이 정도 가격으로 나온 매물 없어요 없어~”

막상 매물을 보니, 진짜 괜찮긴 했다.


재건축 호재가 있고. 3억 6천 원 가격대의 18평 매물. 괜찮았다. 그러나, 이후 대출 관련 절차부터 집 계약 절차까지 일사천리로 진행하려 하는 부동산 측의 적극성과 어떻게든 팔려는 집주인의 태도가 부담스러웠을까. 갑자기 의심이 들기 시작했다.


“왜 이렇게 수월하게 진행돼? 이러면 보통 문제가 발생하던데..”


내 특유의 감은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판단을 보류하고 다른 부동산과 잡은 임장 일정을 위해 다른 부동산인 Y 부동산으로 바로 향했다. 그런데 지금 향하는 Y 부동산 아주머니가 대단하신 게, 원래 오후 4시 정도에 임장 일정을 잡았었으나, 급히 회사로부터 작업 요청이 와서 시간을 내가 일방적으로 앞당기자고 통보했었고. 이에 그 부동산 아주머니께서 잠시 당황해하시더니 이내 바로 내 일정에 맞춰서 임장 일정을 새로 다시 잡아주셨던 게 아닌가. 갑작스럽고도 일방적인 고객의 일정 조율이란 재난 상황 속에서도 침착함을 잃지 않고 신속하게 일정을 조율하는 그 일처리에 나는 그저 감탄과 감탄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무튼, 나를 보자마자 그 아주머니는 서두르자며 임장 할 곳을 6곳이나 선정해 주셨다고 하셨다. 난 이에 놀라며,


“네?? 6곳이 나요?? 그.. 그렇게나 많이요??”


이 사람.. 보통이 아니다.. 잘못 걸린 건가.. 싶은 생각이 잠시 들던 찰나, 매물 리스트 중 내가 조금 전에 봤던 매물과 동일한 듯한 느낌이 들어서 물었다.


“그런데요.. 여기 OO동 OO호요. 제가 조금 전에 다른 부동산에서 임장 한 거 같아요...”


내 말에 그분께서 순간 표정을 바꾸시더니, 약간 차가운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네? 다른 곳에서 보셨다고요? 제가 다 알아봐 준다고 하셨잖아요.”

그리고 그녀와 나 사이에 이어진 차가운 공기.

왜 날 그런 눈빛으로 보세요..

숨 막히는 순간이 이어졌고. 난 그분의 눈치를 살피다가 웃으며 말했다.


“아직 계약 안 했잖아요~ 선배님~~(직전에 잠깐 대화를 나눴었는데, 내가 지금 다니는 회사에 다녔었다가 퇴사했다고 하셨다)”


30대에 접어들면서 생기기 시작한 내 위기관리 대응과 상황 모면 능력 덕분에 그분이 조금 마음이 괜찮아지셨는지, 바로 말씀하셨다.


“어서 따라오세요~ 오늘 봐야 할 매물은 많아요~”


그렇게 그분의 리드로 리스트에 나온 모든 매물들을 보았고, 그때마다 따로 기록을 해두었다.

어떤 집은 수리가 전혀 되어있지 않았고.

다른 집은 집 면적이 넓었다.

또 다른 집은 뷰가 트여있었고, 내부가 깔끔했다.


임장 했던 매물들 하나같이 공통적이었던 특징으로는, 그 지역 매물들마다 에어컨이나 선풍기가 일절 없는 특징이 있었다. 임장 당시 여름이 오기 직전, 더위가 조금은 있었던 편이었는데도 말이다. 금이 갔다거나 하자는 없었고, 단지 외형이 다소 허름했고 세월의 흔적이 물씬 풍겨진 편이었다.


그래도 아무래도 가격 면에서 우리로서는 나쁘지 않았다. 동네도 편안한 마음이 드는 게 좋았고. 다만, 간혹 단지에 붙어있었던 안내 문구들이 가슴에 걸렸었다.


“구토 금지”
“택배 도난 금지”


또한 다른 날에 임장 했을 때, 이런 일도 있었다. Y 부동산 아주머니 따라서 신디와 내가 한 매물에 갔을 때였다. Y 부동산 아주머니가 초인종을 여러 번 눌렀는데도 인기척이 없자, 아주머니께서 문이 안 열려서 그런가? 싶어서 문을 열려고 하시는 등 사람이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을 때였다. 그때, 문이 열리는데 웬 중년 남자가 금방이라도 폭력을 쓰려는 기세로 눈을 부릅뜬 채 Y 부동산 아주머니에게 쏘아붙였다.


“왜 함부로 문을 열려고 해. 왜! 누군데 함부로 남의 집 문을 열려고 한 거야.”


그 아저씨의 기세에 Y 부동산 아주머니는 떨리는 음성으로 말씀하셨다.


“함부로 문을 열려고 한건 죄송해요. 저는 문이 안 열리는 줄 알고.. 매물 보러 왔는데요.. 매물로 내놓으셨다고 하셔서..”


“누가? 누가 내놔? 우린 연장한다고 했는데 왜? 누가 판다고 했어? 어? 난 그런 기억이 전혀 없는데. 어?”

금방이라도 사람 하나 때릴 듯한 분위기 속에서 아주머니와 아저씨 사이에 긴장감이 흐르고 있었고. 이때, 그 아저씨의 부인 분으로 추정된 분이 중재하셔서 Y 부동산 아주머니와 우릴 보내시면서 말씀하셨다.


“이런 식으로 나오시면 곤란해요~ 우린 몇 번이나 안 나간다고 말씀드렸는데. 너무 무례하시잖아요.”


사연인즉슨, 집주인은 팔겠다고 내놓은 입장이었으나, 그 집을 전세로 살고 있었던 아저씨와 아주머니께서는 이를 거절하면서 계속 살겠다는 입장이었던 것이었다. 그래서 중간에서..


나와 신디는 이 모든 과정을 겪으며 이런 생각을 했었다.

‘하늘이 경고하는 거 같아.. 여긴 아닌거 같지??’


그러나 또 다른 단지에 가보면 마치 무릉도원처럼 평화롭고 여유로 원 풍경이 펼쳐져 있었고. 이웃들이나 경비원 아저씨들 전부 친절함이 기본으로 탑재되어 있었다.


뭔가, 복불복인가..

마음에 드는 듯 그러나 가슴 한편에 조금의 찝찝함이 드는 그러한 곳이었다.


그렇다면 더 볼 것인가? 말 것인가? 다른 곳을 볼 것인가? 말 것인가? 그 선택의 기로에 선 채 놀이터에 신디와 같이 있었을 때였다.


그때, 우리 눈에 보인 건 벤치에 나란히 앉아있던 할머니들이었고. 그 옆으로 유모차를 끈 채 걷고 있던 부부였다.


푸른 하늘과 초록 나무, 산. 그리고 그 앞에 멀리 보이는 하천. 그 하천 너머 보이는, 밀집한 빌딩들. 그 사이를 이어주는 다리까지. 그 모습을 한참 바라보았다.


평화로워 보였다.


그날 이후 우린 다시 그 일대 다른 매물을 찾기 시작했다.

아무 이유 없이.


아니, 어쩌면 이미 시작되어 버린 하나의 우연에 이끌려,

아직은 보이지 않는 우리의 역사를 시작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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