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일반부 은상 - 김준길
오늘도 거제도 바닷물 몇 되가 어머니의 용돈일 겁니다. 수평선에 널린 주홍빛 노을이 어머니의 옷이며, 닮고 닮아 새까매진 몽돌이 어머니의 끼니일 겁니다.
툭하면 술에 취해 밥상 엎던 아버지는 사흘들이 집을 나가버리고, 어머니 혼자 채소 과일 머리에 잔뜩 이어 시장으로 장사하러 나갔었지요. 저 백사장에 떠밀려온 미역줄기만도 못한 팔자, 새끼 자식 다 버리고 도망이나 갈까, 그래도 열 달 배 아파 낳은 이 어린 내 새끼들... 뚜우뚜웅 뱃고동 소리에 버선코까지 눈물만 적시다가, 아무리 서러워도 여자의 운명(運命)이고 아무리 고달파도 어미의 숙명(宿命)이라 울며 눌러 삭혔다던 어머니.
20여 년 전, 경찰시험에 합격하자마자 어머니께 제일 먼저 전화를 했었지요.
'아이고 장하다, 우리 아들 장하다. 밥 잘 챙겨 묵고 몸 안 상하게 하그라. 나는 그저 느그만 잘 되면 그걸로 된다.'
옆에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술 취해 주정하는 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오늘 같은 날마저 고주망태가 된 아버지를 자식에게 들키지 않으려 어머니는 서둘러 전화를 끊었습니다.
저는 결혼을 했고 아이를 연년생으로 낳았지요. 남들처럼 그냥 그렇게 크거나 별다른 일 없이 시간은 흘러갔습니다. 하지만 생각지도 않았던 날벼락같은 일이 벌어졌습니다. 친구에게 보증을 선 일이 잘못되어 내가 그만 한순간에 빚더미로 올라앉게 되었습니다. 친구는 철저하게 종적을 감추었고 채권자들이 찾아와 내게 대신 갚으라며 으르렁 독촉을 해댔습니다. 경찰서 내에는 파다하게 소문이 퍼졌습니다.
빌고 갚고 미루고 버렸으나 월급까지 고스란히 차압되는 지경에 이르고 나니, 더는 경찰서에 얼굴 들고 다닐 수 없었습니다. 한바탕 서장실에 불려 가 채근을 들은 그날, 나는 수없이 쓰다 지우기를 반복하던 사직서를 냈습니다. 얼마 후 애들 엄마가 이혼장을 내밀었습니다. 직장과 가정이 있던 울산에서 최대한 멀어지고 싶었습니다. 하여 아는 이 하나 없는 낯선 곳으로 갔지요. 그리고 이 일 저 일 닥치는 대로 했습니다.
그 해 추석을 며칠 앞둔 날, 전화기에 어머니 휴대폰 번호가 떴습니다. 추석 쉴 돈 몇 푼도 어머니 앞으로 보내지 못하는 몰염치라 선뜻 전화받기가 주저되었습니다. 그렇다고 안 받으면 온갖 걱정 다 하며 당신 속만 태울 게 뻔했습니다.
'네, 어머니.'
'밥은 먹었냐? 어디 아픈 데는 없냐?'
'네. 어머니도 건강하시죠?'
'나는 걱정 말그라. 니 통장 계좌번호 불러봐라.'
'네? 계좌번호요? 그건 왜요?'
'지금 장사 나가야 하니까 엄마 바쁘다. 얼른 불러봐라.'
차 기름 넣을 돈도 간당 거리던 저는, 대충 뻔히 짐작을 하면서도 영문 몰라하는 듯 과장된 연기를 하며 냉큼 계좌번호를 댔습니다. 잠시 후통장으로 돈 백만 원이 들어왔더군요. 어머니의 그 눈물겨운 이름 석자가 내 통장에 찍혀있었습니다. 그리고 바로 어머니로부터 오타 투성의 문자가 왔지요.
- 넬모레가추석인데 어디에이뜬 배는골지말라야지 엄마는걱정마라 돈도엄쓸틴데 와따가믄 돈만든다 그래서 이번추석은 안와도된다 그래도 느그 아부지 제사떼는 꼭 오니라-
천하에 못난 놈, 천지에 몹쓸 나란 놈. 어머니는 밤이 되도록 내 전화를 받지 않으셨습니다. 아들의 눈물 메인 목소리를 차마 들을 수 없어서 그랬다는 걸 저는 압니다. 구부러진 허리로 과일 판 이 젖은 돈을, 내 아무리 불효 막심한 놈이라도 어찌 감히 쓸 수가 있겠나. 그러나 돈백만 원은 며칠 만에 이래저래 없어져 버렸습니다.
낼모레 쉰이라는 내 나이가 사정없이 종아리를 때렸습니다. 이 나이나 되도록 늙은 어머니의 피고름만 빼 먹고 있는 극심한 불효(不孝)가 시퍼렇게 멍이 들도록 말입니다. 어머니가 시장 좌판에서 파는 과일들은 닦고 또 닦아 늘 반지르르했습니다. 비록 집 한 채 없이 좌판 같은 곁방에 살지만 주눅 들지 말라고 삼 남매 매매 닦아준 것처럼.
자식들 모두 커 객지로 나왔어도 어머니는 사과 이고 수박 끌고 장사를 나갔습니다. 그리고 더욱더 닦고 닦았습니다. 혹시 탁한 물이라도 튀길세라, 행여 몹쓸 때라도 묻을세라, 우리 장남 우리 딸 우리 막내 한결같이 닦았습니다.
너무 비싸네요, 좀 깎아줘요... 자식들 어디 가서 체신 체면 깎일까 봐 이렇게 좋은 과일 어디 가면 있다고 손사래 쳤습니다. 인심도 고약하네... 어미 하나 고약해서 너희들일랑 제값 하고 산다면.
어머니의 튼 손 한 번 닦아주지 않았는데, 어머니의 동상 입은 발 한번 닦아주지 않았는데, 반지르르 잘도 닦아진 과일들 구석자리 닦이지 못한 어머니의 늙은 여생(餘生)만 한 소쿠리 떨이로 담겨 있을 겁니다.
먼 질 돌아와 변호사 사무실 사무장으로 있게 된 지금, 모든 사람들이 나의 등에서 야멸치게 몸을 돌려 멀어질 때, 섬이 방황하는 갈매기를 제 터에 보듬듯 언제나 품을 내어 안아주던 어머니, 눈물 뚝뚝이며 거제도 바다 한 복판에서 팔 벌린 채 늙어있는 어머니.
어머니! 다시는, 정말 두 번 다시는 어머니의 가슴에 대못질하는 아들이 되지 않겠습니다. 그 어떤 일이 있더라도 어머니의 눈에 피눈물 나게 하는 장남은 되지 않겠습니다.
아무 걱정 없이 거제도 푸른 앞바다를 어머니와 나란히 앉아 편안하게 바라보는 꿈을 가끔 꿉니다. 반드시 그런 날이 올 거라 믿지만, 인생이 여생으로 이미 바뀐 어머니여서 제 마음만 급해집니다.
건강하셔야 합니다. 꼭 건강히 늘 그렇듯 저를 기다려 주셔야 합니다.
못난 아들 올림.
2016 대한민국 편지쓰기 공모전 수상작
대학일반부 은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