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대 같은 당신께

대학일반부 은상 - 박혜균

by 편지한줄

등대 같은 당신께


이른 새벽, 당신이 집을 나서는 발걸음 소리를 들으면 가슴이 먹먹해집니다. 제가 깰까 봐 뒤꿈치를 들고 조심스레 움직이는 당신의 그림자가 한지창을 통해 방으로 들어오거든요. 처음에는 당신이 일어난 것을 아는 순간에 멋모르고 깨어났었죠. 그때 당신은 제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푹 자야지. 당신이 깰까 봐 무척 조심하는데도 깨웠나 보네. 더 살살 움직여야 하는 거였구나, 미안해"


그 이후로는 당신이 일어났음을 알면서도 잠든 척하고 있습니다. 당신이 출항을 하고 나면, 집안에는 당신이 어제 신었던 장화만이 당신의 체취로 저를 반겨줍니다. 당신에 대한 미안함과, 살아야 할 희망을 주면서요.


5년 전, 제가 혈액투석을 위해 혈관수술을 하면서 당신의 삶은 완전히 바뀌어버렸습니다.


"투석의 후유증과 이식의 합병증에 대한 공부를 했는데, 어떻게든 둘 다 하지 않는 것이 최선인 것 같아. 내가 어떻게든 당신이 투석이나 이식을 않고도 건강한 사람처럼 살 수 있도록 해줄게"


그렇게 당신은 저를 데리고 바다가 있는 이곳으로 들어왔습니다. 당신이 했던 이 말에 사람들은 그랬죠.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투석이나 이식은 무조건 하게 되어 있어. 신장병은 다른 병과 달리 유지만 해도 성공이라고 하잖아'


지금까지의 결과로 보면 당신의 말이 맞습니다. 여전히 환자이긴 하지만, 5년이 지난 지금까지 저는 투석이나 이식 없이 건강한 사람처럼 잘 지내고 있으니까요. 작년에는 '투석은 아직......'이라는 진단까지 받아 수술한 혈관을 복원까지 하여 많은 사람들로부터 '남편의 사랑 덕분'이라는 부러움도 받게 되었죠. 그러나 제가 건강해지는 것과 달리, 도시 생활만 했던 당신의 손은 아주 거칠어져 버렸습니다. 저를 위해 키보드 대신 어선의 운전대를 잡았고, 늦은 출근의 느긋함을 포기하고 새벽 출항을 해야 했으니까요. 힘든 바다일에 더하여 제 건강을 위해 황토로 군불 방도 만들고, 마당에는 자갈과 모래를 몇 번이나 덮어서 깔아주는 정성도 보여주었습니다. 등짐을 너무 많이 져서 어깨뼈가 상하는 정도가 되었음에도 '당신이 지금만큼만 산다면'으로 웃어넘기는 당신을 보면, 정말 미안하고 건강하게 살아야겠다는 결심을 한 번 더 다져먹게 됩니다.


태어나서 처음 해보는 바닷일임에도 힘들다는 내색도 하지 않는 당신. 그러나 저는 압니다. 당신이 얼마나 힘들게 뱃멀미에 적응해야 했으며, 당신이 느끼는 삶의 무게도 무겁다는 것을요. 바다로 나서면 죽음의 순간과 맞닥뜨리는 일도 있지만, '괜찮다'며 저를 안심시켜주는 것도 당신이 해주는 배려임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힘든 와중에도 매일 저와 함께 산책길에 나서 주는 당신을 옆에서 보면 더 씩씩하게 걷게 됩니다. 그때마다 당신과 제가 보내는 지금 이 시간들이 우리의 삶에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느끼지 못하는 행복함을 주는지를 항상 느끼고 있습니다.


저는 또 알고 있습니다. 힘든 바다일로 거칠고 검게 변한 얼굴이 되었어도 당신이 세상의 어떤 사람보다 멋지고 좋은 남자라는 것을요. 어부로 사는 일이 힘들지만, 늘 웃는 얼굴인 당신 덕분에 낯가림이 심한 제가 마을 사람들과도 잘 지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에게 인정도 받고 즐겁게 어울릴 수 있으니, 저도 당신 말처럼 '시골로 잘 왔구나'하면서 살게 된 것이죠. 물론 앞으로도 힘든 일이 많겠지만, 우리가 지금처럼만 지낼 수 있다면 얼마든지 참고 견딜 수 있을 거예요.


사랑하는 당신! 매일 장화를 바꿔 신어야 할 만큼 힘든 출항이지만, 오늘도 안전하게 조업하고 웃는 얼굴로 저 문을 들어서겠지요. '당신이라는 등대 덕분에 돌아오는 건 잘하지'하면서요. 그런데 당신, 이건 아세요? 당신이야말로 제 삶의 등대라는 것을요. 제가 아침이면 당신의 발자국 소리에 잠을 깨고, 저녁이면 당신이 돌아오는 발자국 소리로 하루의 평온을 느끼며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요. 그러니 만선의 욕심일랑 버리고, 안전하게 귀항만 하시면 돼요. 그래야 현관에서 교대를 기다리는 저 장화도 제 몫을 할 수 있고, 날마다 조금씩 건강해지는 저도 지켜볼 수 있잖아요.


여보!

오늘도 힘든 하루겠지만 잘하리라 믿어요.

꺼지지 않는 등대가 당신을 기다린다는 것을 늘 기억해주세요.


당신의 아내 드림




2016 대한민국 편지쓰기 공모전 수상작

대학일반부 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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