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존경합니다.

대학일반부 금상 - 서덕주

by 편지한줄

존경하는 아버지께


서울에도 봄꽃이 피어 세상이 환하게 빛나고 있습니다. 어머니께 아버지의 건강이 많이 회복되었다는 말씀 전해 들었습니다. 여전히 불면증에 시달리시는지 걱정입니다.


지난달에 아버지를 뵈러 마산역에 내렸을 때가 문득 떠오릅니다. 불과 몇 년 전에만 해도 저희 가족을 위해 불편한 몸 이끌고 역에 나오셔서 환하게 맞이해 주셨는데, 이제 그런 기쁨을 누리기는 어렵겠지요. 마산역 앞에는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빛나고 있었지만 저는 왠지 모를 서글픔을 느꼈답니다. 종종걸음으로 집에 도착했을 때 아버지께서는 말없이 절 보고 눈물을 지으셨지요. 저 역시 따뜻하게 손 한 번 잡지 못하고, 이리 맞이해주셔서 고맙다는 말도 전하지 못하고, 그저 눈물로 답을 하고 말았습니다.


지난겨울, 아버지께서 쓰러지셨다는 소식을 듣고 병원으로 갔을 때, 아버지께서는 흐려지는 정신을 붙들고 아들을 기다리고 계셨지요. 전 아무것도 모른 채 또 한 번의 뇌경색이 아버지를 허물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멀리 떨어져 산다는 이유로, 바쁘다는 핑계로 서울로 떠나온 이후로 아버지와 단 둘만의 시간을 가진 적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병실에 누워 계신 아버지와의 시간이 조금은 즐겁기도 했습니다. 초췌한 얼굴, 바짝 메마른 왼쪽 다리를 살피며 보낸 시간 속에서 아버지의 평범한 삶이 지닌 고단함과 위대함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한 달 후, 저는 아버지가 쓰러지신 이유를 알게 되었습니다. 바로 저 때문이었다는 것을. 못난 아들이 직장에서 해직된 것을 아시고 그 충격으로 지병이 악화된 것을 알게 되었지요. 집사람도 모르는 사실을 아버지가 제일 먼저 알게 되신 것이었습니다. 아버지는 매일 아들과 손자 사는 모습이 궁금하고 걱정되셔서 인터넷을 살펴보신다고 합니다. 그런데 어느 날 직장에서 아들의 이름이 사라지고, 깜짝 놀라 인터넷 기사를 찾아보고는 이 부족한 아들이 직장에서 쫓겨난 사실을 알고는 낙담이 너무 크셨던 거지요.


사랑하는 아버지,

그러나 아버지께서는 그 놀라움을, 그 고통을 홀로 감당하다가 그리 되셨던 겁니다. 의식을 차리고 제게 주셨던 그 아픈 말씀을 또렷이 기억하고 있습니다.


"내는 인생에서 아들이란 존재가 이리 큰 줄 몰랐데이. 니가 그리 어이없이 되니 내사 마 허물어지더라. 내가 새끼 건사를 잘못 했데이. 애비도 직장 생활한다꼬 얼매나 속을 끓였겠나, 낸들 자존심이 얼매나 상하는 일이 많았건야. 하지만서도 이 애비는 윗사람한테 얼매나 잘 보일라꼬 애를 썼는지 모른데이. 그래서 삼십 년 세월을, 쓰지도 못하는 다리 가꼬도 잘 버틴 거 아이가. 니는 자식이고, 가장인데 우찌 그런 결정을 하면서도 애비도 아내도 새끼도 생각하지 않는단 말이고. 하지만 이미 내디딘 발걸음 아이가, 길이 보이모 가야한데이. 희망을 잃지 말거라. 절대 집에서 놀지 말거라. 더 움직거리라."


아버지께서는 죽음의 공간으로 떨어져 앉는 그 순간에서도 아들의 속을 꿰뚫어 보고 촌철살인의 말씀을 해 주시기 위해 감사하게도 깨어나셨습니다. 저는 어눌하지만 단호한 말씀을 듣고 가슴속의 돌덩어리가 쩍 갈라지는 것을 알았습니다. 좌절과 분노가 싸락눈처럼 녹아내리는 것을 느꼈습니다. 아무리 지고한 이념인들 아버지의 사랑 앞에서는 사족에 불과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서울로 올라와 복직을 위해 법원으로, 국회로 바쁘게 움직였고, 여러 사람의 도움으로 안정을 조금씩 찾아갔습니다. 그러다가 아버지께서 다시 입원하셨다는 소식을 듣고 지난달에 뵈러 갔었지요. 여전히 해결이 되지 않아 마음이 무거웠는데, 아버지께서는 제가 온다는 말씀을 듣고는 역시나 정신을 가다듬고 기다리고 계셨지요. 못난 아들이 뭐라고, 아들에게는 흐트러진 모습을 보이기 싫어 정신을 가다듬고 가다듬는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직장에서 그리 쫓기날 수는 없는기라. 우쨌든 이기서 니 발로 걸어 나와야 한데이. 남자는 명예가 생명이라. 알것제. 내는 니를 믿는데이. 아부지 방 서랍장에 사진첩 찾거래이. 니 에미한테 말해두었데이. 빨리 올라가래이. 여서 어정거릴 꺼 없데이."


저는 그날 밤, 건장한 청년이었던 아버지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대학생 아버지, 군인 아버지, 교사 아버지, 삼 남매의 아버지. 그리고 지금의 저를 만났습니다. 언제까지나 평탄하게 살 줄 알고 교만했던 저의 모습, 마치 사회 정의의 구현자인 것처럼 싸움만을 해대었던 모습, 너무 부끄러워 얼굴을 들 수 없었습니다. 불편한 다리를 끌고 가족을 책임지기 위해 동분서주했던 아버지, 거나하게 취하면 노래 한가락으로 울분을 토하시던 내 아버지의 그 평범한 삶이 얼마나 고단하게 만들어진 것인가를 이제 알 것 같았습니다. 아버지는 그 평범하고도 위대한 가장의 발자취를 직접 보여주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아버지의 빛났던 모습 사이로 통장 하나가 있었습니다. 아들의 빈손 생활이 너무 걱정되셔서 적금을 헐어 만든 통장이었지요. 어머니께서는 내일 은행에 가서 처리하자고 하셨지만, 전 도저히 그럴 수는 없었답니다. 그 크고 높은 사랑만으로도 충분했습니다.


내 안에 유유히 흐르시는 아버지,

다음 주에 복직을 위한 중요한 재판이 있습니다. 반드시 좋은 결과가 있을 것입니다. 좋은 소식 들고 조금은 가벼운 마음으로 아버지를 보러 가겠습니다. 저도 아버지를 닮아 속마음을 잘 표현하지 못하지만 이 편지를 계기로 마구마구 아버지에 대한 존경과 사랑을 표현하려고 합니다. 지난번 뵈었을 때 우리 아버지가 한 마리 고고한 학 같다는 생각을 가졌습니다. 천 년의 학처럼 큰 나무에 앉아 늘 저를 보살펴주시기 바랍니다. 아버지 나날이 쾌유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2016. 5. 8.

부족한 아들 올림




2016 대한민국 편지쓰기 공모전 수상작

대학일반부 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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